미주 LA 중앙일보 2016년 11월 24일 목요일, 추수감사절
삼 주간 오피스를 비우고 돌아오니 동료 의사들이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아니, 콧수염은 왠 일?” “모벰버 운동의 달이니까! 어때, 우리 멋있지?” 내가 일하고 있는 카이저 병원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11월이 ‘남성 건강의식 고취의 달’ 운동에 동조하는 의미에서 남자 의사들이 콧수염(또는 턱수염까지도) 을 기르고 11월 말에는 투표로 가장 멋진 수염쟁이(!) 의사를 선정한다고 이멜이 돌았다.
새로 생긴 합성단어 ‘모벰버(movember)’ 란 모스타쉬(moustache 오스트리아 영어. 미국 철자는 mustache ) 에서 따 온 “mo” 에 November(11월) 에서 가져온 “vember” 가 합쳐진 단어이다. 1999년 남 오스트렐리아에서 시작됬고 2004년에 ‘모벰버 자선단체’가 생겼다. 여러나라에서 동참하는 이 운동은 전립선암, 고환암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고 일반적인 남성건강에 대해서도 올바른 태도를 고무하기 위한 것이 목표이다.
소수의 뜻이 있는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만든 동아리 활동이 세계적인 운동으로 퍼지는 것을 보면서 이번 여행에서 감명을 받았던 어쩌면 일맥상통 할 지도 모르는, 내가 새로이 알게 된 두가지 역사적 사건을 나누고 싶다.
네델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항거리, 체코 공화국 어디를 가도 예술품들이 널려있었다. 예술품을 전쟁에서 보호하기 위해 만든 ‘예술품 저장 창고’를 독일 뉴렘베르그 성(城) 지하에서 구경했다. 사암층을 까고 중세기 때 24 미터 지하에 만든 맥주 저장 창고를 이차대전이 터진 지 일 년 후 1940년 부터 과학기구, 조각품, 예술품,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들을 옮겨 공습을 피했던 곳이다.
몇몇 사람의 아이디어가 역사적인 일을 해 냈다는 점에서 존경스러웠다. 그렇지만 대학살이 저지러 지고 있을 때 생명을 구하는 작업에 손대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대 성당 앞 성모와 아기예수 상이 있는 바로크식 분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은 나무로 집을 짓고 시멘트 지붕을 덮어서 이 예술품도 살렸던 사람들이 아닌가?
어느 날 황금색, 붉은색으로 물든 낙엽들이 너부러져 비 맞고 있는 길을 걸었다. 구르몽 (Remy de Gourmont 1858-1915) 의 ‘낙엽’이라는 시를 기억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축축히 어둡게 젖은 코블스톤 작약길에 ‘스텀블링 블럭(stumbling block)’이라 불리우는 작은 동철판이 비에 씻기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허리를 굽혀 동판에 쓰인 글을 읽는다. ‘ 이곳에 (아무개) 살다….생년월일…(날짜)끌려나가다…학살당하다(캠프이름)’
‘스텀블링 블럭’이라는 말의 일반적인 의미는 우리가 하고저 하는 일을 방해하여 멈추게 하는 일이나 사물을 뜻하는데 이 경우도 아마 그런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그저 무심코 제 갈 길을 걸어가고 있다가 우연히 발에 밟히는 작은 동판이 우리가 가던 길을 멈추게 하니까.
독일은 국가차원에서 유대인과 세계에 대학살의 만행을 이미 사죄했다. ‘스텀블링 블럭’은 일반 시민들이 만들어 개인적인 사죄를 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자는 운동이다. 끌려나갈 당시 살았던 집 앞 길에 가로, 세로 10센티 동판을 작약돌위에 얹어 작약돌을 대치한다. 건터 뎀닉(Gunter Demnig)이라는 독일 미술가가 1992년 시작한 일이 지금은 유럽 18 나라에 약 5만 개의 블럭들이 코블스톤을 대치한 바 있다고 한다.
내가 ‘예술품 저장고’에 이견을 갖고 있듯이 ‘스텀블링 블럭’에 대한 이견도 있지만 어떤 작은 희망과 용기가 커다란 물결이 되어 우리를 변화시킨다. ‘모벰버’이다.
추수감사절에 감사할 일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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