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을 때 하는 ‘장례잔치’

환자 미치코는 서양식 성(姓)을 가진 도전적인 성격의 괴짜 할머니였다. 그녀가 괴짜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담대한 모습 뿐 아니라 그녀의 과거사였다. 70대 후반인 할머니가 살아왔던 젊은 시절을 생각해 볼 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지금이야 흔한 일이지만 그 당시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마음 먹었던 것, 같은 일본 사람과 결혼하지 않고 타인종과 결혼했던 것, 그 때만 해도 남자들만 흔히 피우던 담배를 피웠던 것 등이 그것이다. 5년 전 폐암 수술 후에도 부수적 약물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거부했던 것도 내 느낌을 뒷받침해 주었다.

미치코 할머니는 폐암이 뼈로 전이되어 나에게 보내졌다. 나를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의료계에서는 뭐가 문제가 되어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기는 이렇게 아프니 지금 당장이라도 누가 안락사를 시켜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진통제는 먹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우울해지고 정신이 흐릿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타당성 있는 불평이었다.

치료의 목적이 뼈에 있는 암세포를 방사선으로 죽여서 통증을 없애주고 그렇게 되면 진통제를 안 먹고도 평소대로 활동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부작용의 가능성 또한 설명해야 했다. 그녀 모르게 그녀가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 중요했다. 의외로 쉽게 치료의 목표를 이해했다.

치료가 끝난 며칠 후 출근 길 오피스 입구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날 보고 활짝 웃는 미치코 할머니가 예뻐 보였다.

그녀는 “방사선 치료가 끝나기도 전에 허리가 아주 좋아졌어요. 엊그제 주말엔 ‘삶의 잔치’를 했답니다. 150명이나 왔어요. 내가 죽은 후에 남들이 나의 생에 대해서 지껄여 댈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거든요”하고 말했다. ‘삶의 잔치’. 그녀다운 일이었다.

지난 몇 십년 동안 내가 만난 환자들은 어린 아이에서부터 연로한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실로 다양했다. 그들이 나를 만난 시점이 생의 종말에 가까운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들은 여러가지 양상으로 생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고 종말에 대한 표현도 모두 달랐다.

여러가지 색깔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또 여러가지 비율로 섞어 아주 특이한 자기 나름대로의 그림을 그려 왔던 환자들, 아니 사람들. 어른들은 많은 경우 그들이 마지막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구름 속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그리기도 하고 동생이랑 포옹하는 그림도 그렸다. 이별을 암시하는 그림을 실제 화폭에 담아냈다. 마지막 날을 준비하던 어떤 이는 장례식에 쓸 꽃의 종류와 꽃의 색깔, 음악 그리고 초대 할 사람 명단, 심지어 장례식에 절대로 참석해서는 안 되는 사람의 이름까지 정리해 놓기도 했다.

현대 의료계는 환자들에게 ‘미래의료 지침서 (Advanced Medical Directive)’를 만들어 놓기를 추천한다. 이것은 자신이 무능해졌을 때 필요한 질병치료에 대한 명시로 본인을 대신해서 행정적인 결정을 할 수 있는 대리인을 임명해 두는 문서다. 말하자면 살아서 쓰는 행정지침 유언서와 같은데 대리인은 나를 잘 아는 사람으로 사심이 없는 사람이 좋을 것이다.

‘미래의료 지침서’ 외에도 유언장을 써 두는 것도 중요한데 유산 분배에 대한 것만 명시하지 말고 나의 환자들처럼 다른 개인적인 요구사항을 써 놓는 것도 좋겠다.

그렇다면 나의 요구 사항은 무엇인가? 신문에 부고 내지 말 것, ‘뷰잉’ 없음, 장례 미사만 하되 가족들만 참석 할 것, 꽃이나 음악 필요 없음, 화장(cremation)할 것 정도이다. 이만하면 내 요구사항은 무척 간단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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