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얻은 나의 딸 2012

오늘 나는 셋째 딸을 얻었다. 이 아이에 대한 생각은 주말 내내 나를 혼잡스럽게 했다.

나는 이 아이를 만난 적이 없고 사진을 본 적도 없다. 미국 중부 백인들이 밀집해 사는 곳에 한국에서 입양되어 온 열 살 가까이 된 아이다. 오늘 기도 중에 이 아이를 내 아이처럼 영적으로 거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연은 이랬다. 몇 년 전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은 이 아이의 행동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주위에 대한 반응이 정상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지금 알게된 것이지만 입양아를 관리하는 기관은 입양 첫 해엔 몇 번 입양가족을 방문하지만 장기 계획에 따른 확인방문은 1년 후에 한 번 하는 것으로 마친다고 한다.

소셜서비스국에서 이 아이가 입양된 가정을 급습했을 때 아이는 장난감은 커녕 책상도, 침대도 없이 방바닥에 깔린 매트레스 뿐인 공간에서 감금되다시피 살고 있었다고 한다. 또 아이의 양아버지는 성적(性的) 해소의 도구로 아이를 학대해 왔고 양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것이 더 충격을 주었다.

놀랍게도 법은 이 양부모들에게 너무 관대해 양부모는 겨우 3년의 감옥형을 받았을 뿐이다. 이야말로 미국판 ‘도가니’가 아니고 무엇이랴. 더욱 한심했고 분노스런 일은 파양해도 된다는 법의 해석이었다. 이 아이를 다시 한국으로 돌려 보내도 된다는 것이었다. 한국 누구에게로? 도대체 입양아가 물건이란 말인가.

이런 아픈 사례와 달리 세상에는 성공적인 입양 사례도 많다. 그들이 만들어 온 삶의 이야기는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얼마 전 프랑스 대선에서 승리한 집권당이 한국 입양아 출신 여성 •플뢰르 펠르랭 (Fleur Pellerin 한국명 김종숙)을 중소기업 디지털 경제장관으로 발탁했다는 이야기가 그랬다.

고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었지만 대다수의 고아를 만든 것은 전쟁이었다. 현대 역사에서는 두 번의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 전쟁, 크로아티아 전쟁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뢰르 펠르랭은 나이로 보았을 때 전쟁고아는 아니었던 것 같다.

2000년 미국 센서스에 의하면 18세 미만의 어린이 중에 2.5%에 달하는 200만명이 입양된 아이들이었고 이것의 두 배 정도되는 440만 명이 양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한국은 6•25 전쟁이 휴전 된 1953년 부터 2001년 사이에 15만명의 고아를 외국으로 입양시켰고 이 숫자의 반이 채 못되는 6만 2000명의 어린이가 자국민에게 입양되었다고 한다. 미군 병사들과의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들은 거의 대다수가 미국으로 왔다. 1953년 전후에 입양된 입양아라면 지금 55세에서 59세가 되었을 것이다.

•플뢰르 펠르랭의 성장과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아시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별히 한국에 대한 감정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 말은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녀도 아마 아픔의 시기가 있었을 것이고 치유의 시기를 지났을 것이다. 그 녀와 그 녀의 부모님들에게 참 잘 해 내었다고 박수쳐 주고 싶다.

이제 나의 셋째 딸도 아픔을 이기고 치유의 날에 꽃처럼 활짝 피어나고 세계를 향한 성공한 여성으로 ‘나는 세계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 바란다.

또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각자의 신(神)에게 이 아이를 위해서, 아니 이런 이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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