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산록에서 띄운 편지 2015

직장에서 반쯤 물러나 있는 ‘반은퇴’의 삶이 싫지는 않다. 이전의 날들을 멀찌감치에서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나이가 허락하는 정신적, 정서적인 혜택인가 보다. 반쯤 은퇴를 했지만 일정은 예전과 다름 없이 빼꼭히 차 있다.

지금도 환자들의 삶에 어느 정도 관련돼 있는 나에게 가끔 환자들은 관심을 보내온다. 여행은 다니는지, 과외활동은 하는지, 진료 외에 음악이나 미술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사실 나는 여행을 잘 다니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여러군데를 다녀오고 앞으로도 갈 계획을 세운다. 최근에는 알프스와 그 산을 둘러 싼 나라들을 여행하고 왔다. 내가 진료하는 환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이 생겼다.

알프스 산맥은 웅장한 모습으로 백년설을 고깔모자처럼 쓰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었다. 가슴을 펴고 산을 바라 보았다. 올라갈 때 진눈깨비로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산에 눈보라가 그치니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산 중턱부터 걸어서 하행을 하는데 강추위에도 살아 남은 흰색, 보라색, 분홍색의 이름 모를 꽃들이 땅 바닥에 몸을 낮추고 피어 있었다.

‘빈사의 사자상’을 보기 위해 들른 곳은 스위스 루체른이었다. 죽어가는 사자상을 조각한 작품이다. ‘빈사의 사자상’은 거대했고 고통의 표현이 보는 사람들에게 아픔으로 다가올 정도로 걸작이었다. 조각은 자연석을 이용해 절벽에 만들어져 있었고 머리를 반쯤 숙인 사자는 마지막 숨을 거두고 있는 듯 보였다. 사자의 오른쪽 앞발은 프랑스 왕가를 나타내는 백합이 그려진 방패 위에 놓여 있고, 발톱은 웅크리고 있다. 아파서 일까 아니면 누구를 할퀴기 위한 최후 동작이었을까. 스위스의 문장이 그려진 또 다른 방패에 사자는 머리를 기대고 있다. 그리고 사자의 옆구리에는 부러진 창이 꽂혀 있다.

스위스가 잘 살지 못했을 때 용병들이 외국으로 팔려 갔는데 ‘빈사의 사자상’은 프랑스 혁명 때 희생된 약 760명의 용병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이다. 국가와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군인들을 포함한 우리에게 어떤 보호를 해 줄 수 있는 것일까?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루체른을 뒤로 하고 대학의 도시 하이델베르그에 갔다. 19세기 말 ‘오래된 하이델베르그’라고 쓰여진 원작이 그후 희곡, 오페라, 무성영화, 뮤지컬 영화 등으로 재탄생했는데 그 무대가 됐던 도시다. 그곳의 대학은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이나 미국 대학보다 좁았다. 도서관에는 꽤 많은 학생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들도 13세기부터 유럽에서 전통으로 내려오는 ‘축제의 노래’를 뮤지컬 영화 ‘황태자의 첫 사랑(원명: 학생 황태자)’에서처럼 지금도 부를 것이다. 미국에서도 부르는 이 노래는 브람스가 편집해서 편곡한 것이라고 한다.

‘기뻐하자, 그러므로(라틴어, gaudeamus igitur•가우데아무스 이기투르)/ 우리가 젊은 동안/ 즐거웠던 소년시절이 가고/ 문제투성이 늙음도 가고 나면/ 흙은 우리를 받아주리.’ 젊음이 가고 나면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까지도 노래해 주어 고맙기만 하다.

웅장한 자연은 인간의 한계와 무상을 재확인해 주었다. 역사적 작품들은 부귀영화의 쟁탈전에서 노고를 강요받았던 숨겨진 희생과, 부귀영화의 무상함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젊음이 허락하는 삶이 얼마나 싱그러운지 다시 보게 했다. 나도 그런 세월을 지냈었겠구나 하면서..

나의 여행기가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의 삶에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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