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콘서트와 음악 교육의 추억 2016

나는 모든 계절을 좋아한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그 아름다움이 깊다. 향기가 다르다. 빛도 다르다. 사계절이 분명하지 않은 엘에이라지만 빛으로 말하면 초겨울 엘에이 빛이 제일 오랫동안 생각을 멈추게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초여름이다. 엘에이 기후가 화씨 110도를 오르내리고 잔인스런 열풍이 불어도 이를 견뎌주는 여름은 역시 풍성해서 고맙다. 폭염을 견딘 연약해 보이는 잎새들이 파릇파릇 살아 반짝이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여름이 되면 참외의 향기로움을 생각하게 된다. 어린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친구들은 여행을 가거나 과외공부 중이라 바쁘고 홀로 남은 나의 나날은 무료하기만 했다. 이럴 때 엄마가 깍아 주던 참외는 달고 향기로왔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또 생각나는 일이 있다.처음 보았던 야외 음악회이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던 엄마는 클래식을 들으며 살던 분이 아니었다. 그런 엄마가 나를 야외 음악회에 데리고 갔던 일이 있다. 내 희미한 기억에는 그 곳이 덕수궁이었고 연주자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후손인 스트라우스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의 다른 부분은 기억나지 않고 그가 연주한 곡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여름 저녁이 덥고 후덥지근 했고 모기가 성가셨다는 것이 기억에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에 갔었던 또 다른 음악회가 기억난다. 신동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한동일씨는 13세에 미국에 유학 갔다. 4년 후 처음으로 귀국해서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다. 그 당시 한국에는 이화여대 대강당이 제일 큰 연주회장이었다. 엄마는 나를 그 음악회에 또 데리고 갔다. 내가 몇 살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인터넷을 찾아 한동일씨의 개인 역사를 찾아 보고 거꾸로 계산 해 보니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였다. 그는 무늬 사이로 맨살이 비쳐 보이는 까만 명주 양말에 반짝이는 까만 에나멜 구두를 신고 피아노 패달을 바삐 밟으며 모짜르트의 터키 행진곡을 연주 했다. 정말 터키 행진곡을 연주 했는지 누가 묻는다면 장담 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 후에 ‘딴딴 딴 딴딴 딴딴 딴딴 딴딴 딴 딴딴!!!’ 터키 행진곡을 노래하면서 집안을 돌아 다녔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행진곡이 들리는 듯 할 때가 있다.

그랬던 엄마이였지만 나는 실상 아무 악기도 다룰 줄 모른다. 집안 형편상 내가 받은 교육의 범위는 학교에서 배푸는 학과목이 전부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중고교 때 받은 한국의 음악교육은 광범위했고 음악은 많은 이야기를 갖고 나에게 머물었던 것 같다. 한국의 음악교육은 내가 살아가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이 삶의 기본을 이해시켜 주었던 것이다.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들, 끈임없이 고쳐지며 완성된 복잡한 곡들, 그들이 남겨 놓은 난해한 악보를 보면서 감탄하던 순간들. 인간의 ‘영’을 흔들는 신비스런 곡이 있는가 하면 가슴을 멍들게 하는 아픈 곡들도 있다.

올해는 운 좋게 지인이 가정집에서 주최한 컨서트를 다녀왔다. 바하의 첼로 스윗 일 번 전곡(全曲)을 들으며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시대가 발달해서 컴퓨터와, 전화기를 통해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 들으며 살수 있다해도 나에게 음악의 변두리에서 무한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 준 엄마처럼, 나도 올 여름에는 세살박이 부터 여덟살이 되는 손주들과 함께 할리우드 볼에 가야 할까 보다. 불꽃놀이도 볼 수 있는 밤을 골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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