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못하는 환자

“아버지는 다섯 번이나 병원에 왔는데 어떻게 폐암 4기를 이제야 찾아냈단 말입니까?”

환자의 아들은 화를 참으면서 침착하게 나에게 대들고 있었다. 나를 찾은 중국 본토 출신 70대의 환자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그날 통역 역할을 하던 아들 외에도 아내, 딸, 사위 그리고 또 다른 아들이 함께 왔다. 분노와 근심이 팽팽하게 엇갈리는 진료실 분위기를 환자 자신은 초월한 것 같이 보였다.

환자는 두 달 전 허리가 아파서 응급실을 방문했던 것을 시작으로 여러 테스트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폐에 종양으로 보이는 덩어리, 척추뼈와 척추뼈 주위의 신경을 누르고 있는 전이된 암이 발견됐다. 이 환자는 언제나 그랬듯이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아내를 대동했고 영어를 약간 하는 부인이 통역을 하곤 했다. 지병인 고혈압 당뇨 관리에 부인의 통역은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환자가 겪는 미묘한 아픔의 증상에 대한 표현이 의사에게 잘 전달됐는지에 대해서 의심이 간다.

이 환자의 경우처럼 캘리포니아 주민들 중 약 40%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한다. 질병 치료과정에서 언어 불소통은 불행한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병에 관련된 환자와 의사의 불확실한 이해, 이로 인한 진단의 지연, 환자 안전 보장의 오해 때문에 질적으로 우수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고 환자의 만족도와 의료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기 쉽다. 따라서 병의 치료가 더 힘들고 완치를 향한 길이 험해지기도 한다.

오랫동안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다양한 언어에 통역을 제공해야 하는 책임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에 대해서는 실상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이 약점은 곧 만회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혜택을 받고 있는 큰 병원들에게 환자와의 소통을 위해 자발적으로 방도를 마련하고 실천에 옮기도록 지침을 준 것이다. 이 지침이 큰 병원을 평가 감사하는 기관들의 실천 항목 중의 하나가 되었다. 참고로 미국 내 큰 병원들은 몇 년에 한번씩 이런 기관의 방문을 받는다. 쉽게 말해 성적표를 받는 시스템이다.

통역 서비스는 주 7일 하루 24시간 가능하다. 통역이라는 과정을 공정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대동한 사람이나 어린이를 활용하는 것은 응급 상황이 아니면 하지 않아야 한다. 또 가족 친구도 피하는 것이 좋다. 각 언어에 대해 통역 면허를 가진 전화 통역 서비스 이외에도 병원 내에는 특수언어 이해력 시험을 통과한 이중언어 스태•프들이 있다.

환자의 미묘한 증상을 자격있는 통역관이 의사에게 잘 설명해 줄 때 비록 의사가 소비하는 시간이 두 배가 드는 불편은 있지만 빠르고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지고 좋은 치료를 향한 목표도 이룰 수 있다. 또 미래가 암울한 상황을 토론해야 할 때 가족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통역관은 해낼 수 있다. 영어를 못하는 환자는 통역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다.

얼마 전 LA카운티 지방법원에서도 무료 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양한 언어를 쓰고 있는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미국이 비로소 그 구성원의 ‘웰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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