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싫어 하는 환자

“이게 뭐야. 세상에 이렇게 캔텅커러스한 늙은이가 있어!” 동료의사가 회의실에 들어오며 내뱉다시피 한 말이다. 이 말을 듣던 한 레지던트가 ‘아 SAT 단어다!’ 하며 큰 소리로 웃었다.

‘캔텅커러스(cantankerous)’라는 단어는 잘 쓰여지지 않는 어려운 말로 ‘못 돼먹은’ 이라고 번역하면 아주 잘 맞는다.

의사들도 싫어하는 환자가 있을까? 환자들이 대놓고 의사를 비판하기 쉬운 것이 미국이다. 불평의 편지를 과장이나 공공기관에 보낼 수 있다. 인터넷 서비스로 의사를 점수 매기는 곳도 있어 내용이 공정하던 않던 간에 세상과 공유한다. 하지만 의사들은 무례하고 부당하게 행동하는 환자가 있어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그런 환자에 대한 보고를 할 기관도 없다.

이야기가 잠깐 빗나가지만 의료소송의 20%만 의료과실과 관련이 있고 80%는 무관하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특정기간 동안 치료받은 3만여명의 환자를 리뷰하였는데 이중 치료 부작용은 3.7%였고 과실에 의한 부작용은 1%에 지나지 않았다. 또 47건의 의료소송이 있었는데 의사의 부주의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생긴 의료소송은 3%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 동료 의사들과 회의를 하기전 짧은 설문조사를 해 보았다. ‘ 환자를 증오한 적이 있나’ ‘있었다면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것이 질문이었다. 아무도 환자를 ‘증오’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싫어 한 적은 여러번 있었다’고 했다. 이유가 여러가지였다.

자신의 병을 의사의 잘못인 양 몰고 가는 환자, 불평은 많으면서 의사의 처방을 안 듣는 환자, 내용도 모르고 질문하는 환자, 인터넷 정보를 잘못 알고 줄줄이 나열하는 환자, 별 일이 아닌데도 수시로 전화해서 메시지를 남기는 환자, 의사나 간호사를 자기 소유물인 양 행동하는 환자가 그것이다.

또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환자, 현재 질병과 관련이 없는 옛날 이야기를 시시때때로 되풀이하는 환자, 시간을 안 지키는 환자, 의심 많은 성격의 환자 그리고 ‘못 돼먹은’ 성품의 소유자들도 싫어하는 환자들이었다.

이 내용들을 들여다 보면 의사에게 좌절감을 주는 경우는 환자들의 몰이해 즉 자신의 병과 처방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외 상식 이하의 사고 방식과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태도도 의사들에게는 오랫동안 불쾌한 기억으로 남는다.

의사는 환자들보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해결책을 찾고 싶어한다. 그러나 환자들은 때론 걸림돌이 되는 요소들을 의사들에게 던짐으로써 의사의 판단을 흐리게 하거나 분석 과정을 혼탁하게 만들수 있다.

문제가 있어 찾아 온 병원이라면 그곳에서 퍼즐을 풀어 가는 의사의 눈을 가리지 말고 해결책을 찾는데 도움이 되게 처신하는 것이 환자들의 기본 예의이고 의무다.

동료 의사들과의 짧은 설문조사 결과 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사람들은 대체로 너그럽다는 사실이었다. 누구를 특별히 증오한다거나 싫어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일시적으로 환자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불쾌했던 순간은 쉽게 잊는다. 그래서 의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의사라는 직업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