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사과하든 말든 우리는 기억하자 2016

며칠 전 내가 속한 한 비영리 단체 월례 모임에서 공적인 일에 대한 토론외에 사적인 일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실상 나는 답답하게 한 달을 보낸 터였다. 조선 말기 역사를 읽고 있었고, 그 동안 역사와 관련된 경험을 자그만치 여덟 개나 했던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세계인이 놀라는 한국사 7장면’이라는 책을 선물 받아 읽고 있었고,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한 영화 ‘귀향’의 시사회에 갔다. 가주 교육국이 추진 중인 일본군 위안부의 교과서 서술에 지지 서명을 했다. KBS의 다큐멘터리 ‘조선총독부 최후의 25일’을 봤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일본이 위안부 강제 연행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는 뉴스를 봤다.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라는 책이 있음도 알게 됐다. 독일의 양면성을 알게됐다. 독일은 홀로코스트 기념일에 유대인 생존자를 그들의 연방의회에 초청해 연설을 하게하는 통례를 만들고 매년 행하여 오고 있었는데 대학살을 자행했던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나미비아에는 100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사죄했다 사실이다. 그것도 국가 차원이 아니었다한다.

일본이 ‘문화정책’의 미명 아래 조선인들을 세뇌해 지식인 친일파를 만드는 과정과 친일파가 일본에게 충성하게 되는 부분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많은 갈등이 왔다. 조선인은 일본의 ‘황국신민’이 되었다. 그래서 조선의 젊은이들이 학도병으로 징병되는 것도, 어린 소녀들이 일본 군인들의 성적 욕구를 풀어 주는 위안부로 유린당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이상할 게 없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일본이 한국민이 바라는 정치적, 외교적, 도덕적 차원의 사과 또는 참회를 하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살아있는 증거가 있지 않은가? 일본이 사과를 하든 말든 우리는 생존해 있는 소수의 산증인들을 가슴에 안아드리고 남은 여생을 잘 지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일본이 사과하지 않는 것을 대통령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우리 안의 분열을 없애야 한다. 독일이 유대인에게는 사죄했지만 나미비아에게는 사죄하지 않았던 양면성을 보며 우리는 세계평화의 유지라는 그럴듯한 슬로건과 힘의 균형이 무엇을 뜻하는지 묵상해 보고 그 진실을 알아야 한다.

생각해 보자. ‘귀향’의 제작을 간접적으로 반대했던 우리 한국사람들이다. 엘에이에서는 시사회를 영화관에서 하지 못했다. 그 뿐이랴. ‘일본국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라는 책을 두고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서평을 한 한국 교수도 있다. 위안소 관리인은 자신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지 위안부들에 대한 관찰 기록을 남기려고 쓴 일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 교수는 잊은 듯하다.

소녀상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 우리도 위안부와 학병 희생자들을 포함한 일제 강점기의 사실을 주제로 하는 박물관을 세우고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정치인들이 꼭 방문해야 하는 코스로 정하면 좋겠다. 이 곳은 영원히 역사의 왜곡을 지탄해 줄 것이다.

다큐멘터리 ‘조선 총독부 최후의 25일’에 담긴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가 독립을 환호하던 모습을 잊지 않을 때 우리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함께 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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