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앙일보 오피니언 면에서 ‘아직도 이런 의사가 한인타운에 있다니’라는 제목으로 밸리에 사는 한 독자가 쓰신 글을 읽었다. 글의 내용으로 보아 그 독자는 시니어이고 한국어를 구사하는 의사를 주로 찾으시는 것 같았다.
한 시간이나 걸리는 한인타운까지 가서 전문의사를 찾았는데 의사는 환자의 질문에는 대답하지도 않았고 면박을 주었으며 의사의 말이 거의 반말에 가까웠다고 했다. 또 그 글을 보낸 환자의 의견으로는 병원도 일종의 서비스 업종이니까 환자가 ‘갑’이 되고 의사는 ‘을’이 돼야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어서 의사가 ‘갑’의 입장에 서는 것을 허용한다고했다.
독자의 의견은 의사로서의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천직(vocation)과 직업(occupation)의 차이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됐다. 천직은 타고난 직업이나 신분을 뜻한다. 천직에는 봉사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반면 직업은 소위 살아가는 수단으로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뜻이 더 강하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의 신념에 따라 직업이 천직이 될 수도 있다.
의사, 간호사, 변호사, 선생, 종교인 등은 대표적으로 천직의 사명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이다. 생명을 다루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돕고 교육을 하며,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명감을 갖고 일 할 수 없다면 생계를 위한 직업이 될 수밖에 없다.
보통 직업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일 한다면 사회는 더욱 발전하고 건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 ‘천직’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물질주의를 기본으로 한 사회 체제안에서 업종별 경쟁은 불가피하게 됐다. 이 치열한 경쟁과정에서 천직이어야 할 직업들이 비즈니스로 전락하고 있다. 진실한 의미의 ‘천직’이 도태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3년전 오피니언 칼럼으로 동료의사들을 설문조사해 ‘의사가 싫어하는 환자’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요약해 보면 ‘자신의 병을 의사의 잘못인 양 몰고 가거나, 불평이 많으면서도 의사의 처방을 안 듣는 환자, 내용도 모르고 질문을 위한 질문하거나, 인터넷 정보를 잘못 알고 줄줄이 나열하는 환자, 중요한 일이 아닌데 수시로 전화하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여 시간을 빼앗는 환자 또 버릇없는 사람’ 등이었다.
이번에 독자의 의견을 참고로 ‘환자가 싫어하는 의사’를 써 본다면 ‘친절하지 않고 잘 난 척하고 버릇이 없으며 환자의 질문을 무시하고, 환자가 무식하다고 단정하는’ 의사들일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환자들의 의사에 대한 불평 내용도 의사가 환자에게 갖는 불만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는 병을 치료받고 치료하는 그 이상의 관계가 존재한다. 의술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환자와 의사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효력을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