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극복한 사람들: 에드워드 케네디 쥬니어 이야기

사년 전 방사선 학회 컨•벤션이 보스턴에서 열렸다. 당시 허리케인 샌디의 영향으로 행사기간 내내 춥고 흐리거나 비바람이 불었다. 며칠은 보스턴 시가 마비되어 컨•벤션이 계획되로 진행되지 못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암 치료에 관련된 논문이 발표됐고 새 테크놀로지로 개발된 최첨단 치료기구들도 전시됐다. 의학의 발전을 실감하게 하는 커다란 컨•벤션이었다.

이번 컨•벤션에 2~3명의 주요 연설자들이 초청됐다. 이들 중에 한 과학자는 남들이 가지 않는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던 자신의 삶을 참석자들과 함께 나누었다. 다섯살 때부터 ‘기발하고 엉뚱한’ 생각을 했다는 그는 주위 사람들의 우려와는 상관없이 묵묵히 그의 아이디어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 결과 그의 엉뚱한 생각이 지금은 우리들에게 두개골을 열지 않고 뇌종양을 치료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를 제공해 주었다.

컨•벤션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순서는 암을 이겨내고 생존한 사람의 강의였다. 그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나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이고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이었던 에드워드 케네디(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은 최장수 상원의원 중의 한 명으로 47년간 의원직에 있었다)의원의 아들입니다. 나는 이렇게 연설하는 것이 당황스럽거나 떨리지 않지만 오늘 연설에 대해 특별히 염려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저의 어머니 조운입니다. 어머니는 저와 함께 이 자리에 참석하셨습니다. 엄마!(그는 어머니라고 하지 않고 엄마라고 불렀다) 한 번 일어나 보세요.”

에드워드 케네디 주니어는 열두 살 때 오른 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악성골수암에 걸려 당시 거의 실험적인 새로 나온 항암제를 쓰고 나서 다리절단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그때의 기억을 이렇게 표현했다.

“의사들은 나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회진을 들어 올 때마다 내 다리에 있는 혹덩어리가 얼마나 작아졌는지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할 때 그냥 혹만 도려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무릎 밑 부분 오른쪽 다리와 오른 발이 없어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했던 그였지만 수술후 5개월 만에 외다리로 스키를 탔다. 나는 외다리로 스키 슬로프를 내려오던 에드워드 케네디 주니어의 사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기억이 나의 깊은 감명으로 각색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진을 보면서 했던 생각들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눈이 하얗게 덮인 산등성,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틴에이저가 스키를 타고 내려오고 있다니…. 그 모습이 숭고할 만큼 아름다웠다. 무엇보다도 그를 장애자라고 멸시하지 않고 보호해 주는 사회가 부럽고 존경스러웠었다.

그로부터 40년 동안 그는 대학을 가고, 변호사가 되고, 결혼해서 남편으로 또 두 아이의 아버지로 활동적인 삶을 유지해 왔다. 예일대학 임상정신과 의사이자 교수인 아내를 두고 있으며 4년 전에는 의료재정 전문 마우드 그룹 회장으로 있었다. 그 후 코네티컷 상원의원으로 활동중이고 미국 장애인협회 이사로서 사회를 계몽하고 있다.

그의 강의는 훌륭했다. 의족으로 걷는 그의 걸음걸이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그는 멋있었다. 암을 이겨내고 불구라 하더라도 활발히 잘 살아가는 용기있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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