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박장은(朴長恩)

내 이름은 박장은 (朴長恩)
2008

“가정의 병력은 어떻게 됩니까?” “저는 입양되었기 때문에 친 부모나 혈연의 병력을 모릅니다.”

지난 주 휠체어를 타고 온 50대 남자 환자는 어디서 발생한지 모르는 암이 뼈에 전이되어 골절교정 수술을 받은 후 나에게 의뢰됐다. 미국 이름이지만 얼굴은 동양인 그것도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깊은 주름과 시름이 감도는 얼굴은 평탄치 않았던 과거를 말해주는 듯 했다. 차트를 보니 담배와 알코올 중독의 경력이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 진찰을 하기 전에 자세히 병력을 검토한다. 특히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미국이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에 대해 알아야 할 사항이 많다. 환자의 진짜(!) 나이를 비롯해 복용하는 약 약에 대한 부작용, 수술의 여부 같은 기본적인 것 외에도 살아 온 환경, 습관, 약물이나 담배 술 중독의 여부, 혈연의 병력을 검토하고 기록하는데 이러한 내용이 의사로서는 환자가 현재 겪고 있는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도움이 된다. 어떤 경우는 본인에겐 도움이 안돼도 가족과 친척에게 중요한 정보가 되기도한다.

어린이에게 있는 망막암, 신장암, 동양인에게 드물고 일부 유럽에서 온 유대인 혈통에 많은 유방암과 난소암이 좋은 예다.

간단히 설명하면 유전인자로 인한 어린이의 망막암은 맹인이 되게 할 수 있기때문에 가족 병력을 알 경우 자주 정밀 검사를 통해 조기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수술과 적절한 항암 약물치료로 안구를 제거 하지 않고도 완치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의 남성 환자처럼 입양된 경우는 암 발생률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고 보면 된다. 열흘 정도 치료기간이 지났을 때 그가 우울하고 힘들어 보여 이런 제안을 했다.

그의 이름은 Keane이고 성은 P로 시작됐다. 우울한 그에게 지금의 이름을 근본으로 해서 한국 이름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나의 엉뚱한 제안에 처음엔 황당해 했다.

Keane을 한국 발음으로 소리내면 ‘킨~’이 되니까 길 장(長)을 쓰고 한국 이름은 한 글자가 더 필요하니 풍성하다는 의미에서 풍(豊)자를 쓰는 것이 어떠냐고 했더니 풍의 발음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은혜(恩惠)의 은(恩)이 었다. 라스트 네임이 P로 시작되니 한국식 성은 박, 피, 변, 표 씨(氏)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 했다. 그는 박을 골랐다. 박(朴)은 후박나무 또는 순박하다 라는 뜻이다. “자 Keane 이제부터 당신의 한국이름은 박장은(朴長恩)입니다”고 했더니 새 이름의 의미가 마음에 든다며 좋아했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온 삶과는 반대되는 이름”이라고 했다. “이름은 부르기 위한 것으로 짓지만 부르다보면 이름의 뜻대로 삶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내 나름대로 작명 증명서를 만들어 간호사를 통해 그 환자에게 전해 주었다. 한국의 태극 마크가 화려하게 색칠 된 연(kite)을 그림으로 그리고 “Keane P의 한국 이름은 박장은(朴長恩)” 이라고 썼다. 영어로 jang=long eun=blessed by Most High라는 주석과 함께. 너무 늦었지만, 입양아로 어린시절을 보내고, 많은 사연을 가슴에 뭍고 살아온 것 같은 이 환자에게 한국식 이름을 갖게 해 주어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다. 얼마 안 있어 세상을 하직한 박장은(朴長恩)씨에게 과연 위로가 되었는지 알지 못한채 세월은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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