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에게 묻는다 2013

뮤지칼 영화로 다시 탄생한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을 보았다. 이 뮤지칼은 ‘올리버!’, ‘•팬톰 오•브 오페라’, ‘고양이들’과 함께 오랫동안 재생되어 새 세대들에게 보여지고 사랑받아 왔다.
프랑스 판 ‘올리•버 트위스트’라고도 보여지는 이 소설을 쓴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는 ‘비갯 덩어리’를 쓴 모파상(Guy de Maupassant), ‘보•바리 부인’의 •플로베르(Flaubert) 그리고 ‘데이비드 커퍼•필드’를 쓴 영국의 챨스 디킨스와 버금가게 부당한 사회체제와 인간의 부조리함을 글로써 고발 했던 사람이다.

‘레 미제라블’이 소설로만 남아있지 않고 뮤지컬로 다시 태어 난 것은 참 반가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전을 가까이 하기 어려운 새로운 세대에 맞게 위고가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사회정의에 대한 우리들의 의무 또 사랑, 우정, 연민 등을 노래를 통해 쉽게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레미제라블’을 뮤지컬로 태어나게 한 공로자 중의 하나는 알라 부빌 (Alain Boubil)이라는 송 라이터 (작사가)인데 챨스 디킨스의 작품 ‘올리버 트위스트’를 주제로 만든 뮤지컬 ‘올리버!’가 런던에서 공연 될 당시 고용돼 일하다가 거기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일이라고 한다. 그와 그의 친구 세명이 소설안의 인물들이 되어 2년 동안 가슴으로 가사를 쓰고, 곡을 붙여 1980년에 음반으로 발표했다. 당시 음반은 26만부나 팔렸다.
이후1987년 부터 2003년까지 브로드웨이에서6680번이나 공연되어 뮤지컬 역사상 네번째로 장수한 작품에 랭크됐다. 이번에는 전 세계에 영화로 발표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위고나 디킨스는 고아를 무대에 올려 우리를 깨우쳤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사건들중에 빼어 놓아서는 안 될 사건이 있다면 ‘여인들의 행진’이다. 위고가 태어나기 전인 1789년 10월, 6000명의 프랑스 주부들은 ‘빵 값을 내려라! 우리에게 빵을 달라!’고 외치며 파리 중심부의 시장에서 출발해 •루이 16세와 마리 앙토와넷이 살고 있는 •벨사이유 (Versailles)궁전으로 행진했다. 그 경로에서 더 많은 주부들이 합세했다고 한다. 그들은 갈쿠리, 창꼬치 또는 불발탄이 잦은 구식 총기를 들고 행진했다고 역사책은 말한다.
놀랍게도 철통같은 문을 밀어 저치고 여인들은 궁전 안으로 밀려 들어갔고, 루이 16세는 여인들에게 빵을 내어주라고 했다고 한다.
‘여인들의 행진’이 계기가 되어 루이 16세는 벨사이유에서 파리로 도망가다시피 거처를 옮겼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계기로 남성으로만 구성돼 있던 국민의회에 대해 여성의 동등한 참정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레 미제라블’을 영화를 보면서 내가 젊었을 때 느낀 것과는 달리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장•발장(Jean Valjean)은 죽어가는 창녀에게 딸 코제트를 거두어 주고 가난과 학대에서 코제트를 보호하고 그녀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부어주겠다고 약속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물질의 풍요함과 안이한 삶 속으로 코제트를 시집 보내는 것에서 코제트의 삶을 마무리 시킨 것이 어쩐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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