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 버린 삼일절

‘오리(duck)들은 레이시스트(인종차별주의자) 들이예요!’ 소년이 말했다. 연못이 있고 오리와 거위들이 살고 있어 우리식구들이 ‘오리 공원’이라 부르는 곳에서 만난 소년의 말이었다. 나는 며칠 전 두살짜리 막내 손주와 그곳으로 나들이를 갔었다.

무슨 뜻이냐고 소년에게 물으니까 먹이가 연못 근방에 떨어지면 오리들은 비둘기들이 먹이를 차지하지 못하게 떼로 달려들어 쫓아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단다. 소년은 이어서 비둘기떼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이나 마찬가지라고 덧 붙였다. 그럼 오리들은? 유럽인들이란다. 그런대로 이 아홉살이라는 소년은 제법 비교, 분석을 할 줄 아는 것 같았다. 교육의 힘이 크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 이 연못에서만 먹이 갈취 싸움이 일어나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네 인간들의 역사는 땅싸움, 먹이싸움, 권력다툼의 사건들로 점철됐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세계 곳곳에는 아메리칸 인디언 같은 민족들이 제 땅을 지키지 못하고 빼앗긴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자신들의 땅을 새 지배자에게서 분할 받고 고마워하며 살아가야만다. 내가 이번에 다녀온 뉴질랜드, 호주와 피지도 역시 그런 역사를 갖고 있었다.

남반구로 가기 위해 이 월의 마지막 날 엘에이를 떠났다. 비행기로 열 시간도 더 걸려 적도를 지나 뉴질랜드에 있는 오클랜드에 도착하니 3월 2일이었다. 날짜 변경선을 지나 온 터라 3월 1일을 뛰어 넘어 버렸다. 멀리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듯 하루를 잃거나 얻는 것이 생소한 일이 아닌데 올해는 그 잃어 버린 날이 삼일절이어서 그런지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여운을 갖고 나에게 닥아왔다. 어쩌면 정치적, 사회적 분란이 일고 있는 조국 한국에 대한 그늘진 염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삼일절에 생각이 머물었다.

삼일절이라고 하면 부끄럽게도 나에게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유관순 언니’가 선두에 서서 무폭력 독립 만세운동을 했고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는 정도로 밖에 기억되지 않는 터였다. 다시 알고 지나가야 할 것 같아 정보를 찾아보니 1919년 3월 1일(음력이 안닌가 생각된다: 저자 주)은 급서한 고종황제의 인산일(國葬)이었고 이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비폭력 만세운동과 함께 조선독립선언문이 발표된 날이었다. 그 때 조선은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 원칙주의에 큰 희망을 걸었고 파리 평화강화회의에 대표를 보내는 준비로 이 시위운동을 주문했다는 뒷 이야기도 있다.

당시 조선 인구 약 1천 7백 만 명 중 3% (어떤 통계는 6%)에 달하는 조선인들이 만세를 불렀고 7천 5백명이 사망하고 4만 7천명이 구속되었다고 한다.

삶의 거센 물결은 우리들을 어디론가로 밀고 가나 보다. 조선은 거센 물결에 휩쓸려 무려 36년의 긴 세월을 일본 통치하에 힘들게 살았고 또 죽었다. 청년들은 징병으로, 소녀들은 정신대로 끌려갔다.

지구가 진정한 의미의 지구촌이 되어 서로 어우러져 살수 있는 때가 올까. 민족이나 국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경계선 없이 자유로이 오가며 평화로이 잘 살아 갈 수는 없는 것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럴 수는 없어!’라는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록없는 이민자들을 강제추방시키라 하고 있고, 시리아에서는 신경가스 살포로 아이들과 시민들이 천천히  아프게 죽어가고 있으니까. 또 세상의 많은 나라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삼일절’을 아직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돼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중앙일보 4.14. ‘평화로운 세상은 영영 없을까’

잃어 버린 삼일절”에 대한 답글 1개

  1. “지구가 진정한 의미의 지구촌이 되어 서로 어우러져 살수 있는 때…” 저도 모니카 님이 희망하시는 그런때를 위해 함께 노력하며 만들어 가고 싶네요. 늘 희망이 가득한 메세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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