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화해

독립 기념일이 낀 이번 주말에 짧은 피정이 있었습니다. 서강대 송봉모 신부의 ‘용서와 화해’가 토픽이었습니다. 살아가는데 많은 아픔을 갖고 있는 인간들이기에, 특히나 환자들, 암 환자들이 갖고 다니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을 보아 왔습니다. 그들을 짧게 상담하고, 상담자에게 보내곤 했었는데, 이번 주말의 강론은 참으로 잘 정리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정리를 하고 저의 경험도 적어봅니다.

용서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내가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 주위와의 관계유지를 위해서/ 복수의 유혹을 예방하기 위해서 내 상처를 치유하는 능동적인, 자신을 아끼는 참으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친밀감을 먹고 사는 상처는 내 가까운 주위에서 받고,
그 가해자에게서 떠나는 것을 방해합니다.
용서는 현 시점에서 시작하여야합니다.

괜찮습니다.
떠나십시오.
화해는 안 해도 됩니다.
화해는 상대편이 허락 할 때 있을 수 있는 mutual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이 용서라는 결심을 했을 때 이미 나는 용서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가해자가 뉘우칠 때 용서가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아닙니다.
용서하고 났으면 잊어 버려야 한다는 오해도 마십시오.
상처는 내 자신의 용서과정을 통해서 아물었지만
흠집은 남아 있고, 그 흠집은 우리가 똑같은 아픔을 겪지 않게끔 기억하게 합니다.

값싼 용서에 대해서도 경계하십시오.
우리는 가해자 범죄합리화를 하기 쉽습니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우리 자신을 탓하는 비난의 표현들 중 많은 것이 우리가 자랄 때 들었던 그 말들이 아니겠습니다.
자존감을 후려치던 부모와 주위사람들이 머리에 새겨준 ‘나’라는 사람이라서 벌어진 일이라 탓하기 쉽습니다.
쉬이 매사 나 자신을 탓하기 쉽습니다.
태어나서 부터 4-5년 간 400번 이상의 negative statement를 듣고 우리는 자란다고 합니다.(이에 대해서 차후 data 찾아 보겠습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한 ‘…하지 말라!’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가르침이지만
여기에 가끔씩 자존감을 없에는 damage 를 주는 표현들이 첨가된다는 것이지요.
나는 ‘가해자’에게 당한 ‘피해자’이었던 것입니다.
값싼 용서를 피하십시오.

내가 용서했다해서 그 가해자를 찾아 가서는 안된다는 Robert Enlight의 충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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