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을 치는 환자

‘댕~, 댕~, 댕~’

종소리가 들린다. 성당이나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 처럼 무게가 있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들어줄만 하다. 소리가 맑다. 오늘 방사선 항암치료를 마친 환자가 있는 모양이다. 치료가 끝나면 환자는 종을 칠 자격과 권리가 생긴다고 할까? 대부분은 기뻐 보인다. 천천히 종으로 닥아가고, 멈추어 종을 바라 본다. 그리고 종을 친다.

내가 몸담아 온 이곳 종양 방사선과에는 하루에 250여명의 환자가 치료를 받으러 온다. 치료받는 부위도 환자 나이, 인종도 다양하다. 뇌종양부터 폐암, 전립선암, 자궁암, 피부암까지 여러 종류의 암 질환 환자들이 온다. 큰 센터이다 보니 희귀한 종양도 많다. 유아나 겨우 걸음마를 할 수 있는 아이들 부터 장년기, 노년기 환자들이 출퇴근 하며 치료를 받는다. 마주치기만 해도 가슴이 아련해 지는 어린이 환자는 흔하지 않아 다행이다. 치료 방법도 여러가지이다. 외부에서 쪼여주는 방법 (teletherapy), 조그만 씨앗 크기의 동위 방사선을 넣어 주어 오랜 시간을 거쳐 근접치료를 하는 방법 (permanent seed implant), 기구를 몸에 넣고 짧은 시간에 높은 양의 방사선을 쏘아주는 동위원소를 기구를 통해 넣어 근접치료(high dose rate brachytherapy)를 하는 방법등이 있다. 기계의 에너지 종류도 다양해서 깊숙이 쏘아줄 수 있는 기계부터 표면만을 치료할 수 있는 기계도 있다.

과학의 발달로 테크놀로지가 엄청나게 인류역사를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 종목이 의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 질병을 예방하지 못한다.

질병은 우리를 비켜가지 않는다. 이 삶의 진리를 가끔 생각해 본다. 우리 거의 모두는 한 두가지의 병을 달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물론 대부분 관리가 가능하고 치명적이지 않지만 암 종류는 관리 스테이지에 도달하기 전, 초입에 근본적이고 공격적인 치료를 시도해야 하는 산을 넘어야 한다. 이미 전이가 된 상태에 이르면 언젠가는 삶을 끝내야 할 전제를 해야 하고 완화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양자의 경우 모두 방사선이 필요 할 때가 많다.

환자들이 치료를 마친 뒤 완료의 축하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자는 의도로 종을 칠 수 있게 하기 전에는 ‘치료 완수 상장’을 주곤 했었다. 이 상장은 그냥 혼자서 받고 끝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을 달고 나니 환자들이 치는 종,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의료진과 주위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 그들의 가족들과도 나누는 하나의 세리모니가 되었다. 산 하나를 넘었다는 것, 비전을 갖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돼새겨 보는 시점이도 하다

종이라면 자전거 종, 학교종, 벽시계 괘종, 힌두교, 불교, 천주교에서 종교 예절을 알릴 때 치는 종, 에밀레종, 라흐마니노프가 에드가 알렌 포우의 시와 그레고리안 종교음악을 바탕으로 작곡한 합창교향곡 ‘종’ 정도 밖에 몰랐던 나는 환자들 덕분에 종으로 하는 다양한 음악, 종을 연구하는 종학, 종을 만드는 기술에 대해서도 알게되었다. 종의 크기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종이 주는 소리는 종을 만들 때 들어간 테크놀로지에도 큰 차이가 있다한다.

얘기가 옆길로 새지만 한국에는 성덕대왕 신종이 가장 자랑할 만 한 유적이다. 19 톤의 무게로 약 1300년 된 것인데 상원사 동종보다 약 46세가 젊다한다. 이 종이 어려서 들어온 ‘에밀레 종’인 것 같은데 실상 이 별명은 일제 강점기 이전의 어떠한 문헌에서도 성덕대왕신종을 에밀레종이라고 한 자료는 없다고 한다. 따라서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만들어 졌다는 논(論)이 있다.

다시 환자들이 치는 ‘이룸의 종’으로 돌아간다. 비록 작은 종이지만 환자들이 치는 종소리가 의료진, 가족, 동료환자들을 돌고 넘어 전능하신 분에게도 전달되어 방금 끝낸 치료가 효염있기를, 치료의 도구로 쓰인 의료진들의 지혜 또한 영글고 겸허하게 해 주시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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