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힐링이란 무엇인가?

아미르의 아트 클래스를 벼르고 벼르다가 참석했다. 아트 클라스에 온 환자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클래스가 시작된지 얼마 후 명랑하고, 주위에 신경을 쓰는 듯 보이는 두 여인이 들어섰다. 그들은 이미 치료를 마친지 일 년이 넘었다 했다. 치료중에 했던 아트 클래스가 좋아서 잊지 않고 참석한다 했다. 이 두 여인들은 자신의 투병 이야기를 현재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들려주면서 그들을 위로 했다. 열 다섯 명의 환자들과 두 명의 레지던트, 그리고 내가 함께 했던 클래스는 종양 방사선과 레지던트 아미르가 일 년 반 전에 만든 것이었다. 아미르는 의과대학을 다닐 때 홈리스들을 위해서 아트 클래스를 만든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의사 지망생 청년이 홈리스들에게 눈을 둘 수 있었다는 것에 나는 무척 감격했다. 존경스럽기도 했다. 이런 젊은이들, 남을 배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내적인 강인함을 가진 젊은 세대를 볼 때 겪고 있는 현실이 암담해 보여도 세상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미르를 보며 기억되는 청년이 있다. 딸의 의과대학 졸업식장에서 소개 받은 딸의 졸업동기생이다. 그는 변호사로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일 하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변호사도 필요하지만 의사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의과대학을 지망했던 젊은이였다. 사회정의와 자선의 실천을 병행하는 어려운 삶을 택한 것이었다.

아미르에게 왜 환자들을 모아 아트 클래스를 열게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환자들의 힐링 과정을 견고히 또 빠르게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힐링’을 도울 것인가?

얼마 전 부터 ‘힐링’이라는 단어는 새로운 비지니스 의미를 갖고 미디어에 범람해 왔다. 한국 사회에서 힐링 열풍이 시작된 것은 십여 년 전이다. 자기 개발서라는 이름으로 팔리던 힐링도서, 여행사가 광고하는 힐링여행, 도심지를 떠나 특수 지방을 띄우는 힐링산책로등 많은 작품들이 보여졌고 들어보면 그럴 듯 하다. 한 때 한국의 어떤 대학에는 힐링학과가 있었다고 하니 좀 어이 없는 일 같다. 그런 사회 변화를 구경하고 있던 차에 아미르의 답변은 나에게 숙고의 여지를 부여했다.

‘힐링’이라는 단어는 ‘온전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는 뜻이라고 위키피디아는 설명한다. 우리 몸의 기관이 밸런스를 잃었거나, 아프거나, 파손 되었을 때 본래의 건강 상태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힐링’의 결과는 육체적으로 원상복귀가 되지 않아도 기능이 회복되는 것 만으로도 완수된다는 설명이다.

‘힐링’ 과정은 개인적이다. 아프고, 힘들고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짧은 시간에 이룩할 수 없다. 또 고뇌의 기간을 거쳐야만 한다. ‘힐링’을 판다는 마켓에서는 ‘힐링’을 살 수 없다. 잃어 버렸거나 파손된 자신을 찾는 끈임 없는 노력, 그래서 긍국적으로 갖게 되는 자긍심, 나아가서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는 능력을 얻어야만 성취되는 것이 ‘힐링’이기 때문이다.

아미르의 환자들이 그림을 그린다. 캔버스에 형태를 그린다. 병들어 불완전하고 볼 품 없는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더 아프다. 그 형태 사이 사이를 물감으로 채운다. 빨갛게, 파랗게, 노랗게. 또 까맣게. 빨강과 파랑을 섞으니 보라빛이 된다. 아, 여기 황금 노랑색이 있네! 희망이 보인다. 그들은 나를 아물게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 자신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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