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라는 이름을 받은 날이 있어서 좋다. 생일이나, 대보름, 추석이라는 명절을 피해 왔던 내가– 변했다.
올해 설날, 이젠 부모가 되어 제 아이들을 돌 보고 있는 딸들, 조카들 가족과 함께 떡국과 빈대떡을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니 기뻣다. 새벽 꽃 시장에가서 꽃을 사오고, 집을 가꾸었다. 크리스마스 디너 세트를 치우고 동양식 그릇들로 교체했다. 꼬마들이 바닥에 모여 앉아 떡국을 먹을 수 있게 다듬어 만들어진 나무 밥상도 펴 놓았다. 그들 자리 앞에 작은 간장종지, 앞 접시, 예쁜 떡국 그릇, 한국식 수저를 놓아 준비했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지만 나는 종이컵이나 종이접시를 쓰지 않는다. 환경에 좋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실상 난 잘 차려진 상차림이 좋다.
한국서 이곳에 연수하러 온 두 친구들의 아들과 가족들, 친지, 아이랜드에서 다니러 온 조카가족들 까지 꽤 붐비는 떡국 행사가 되었다.
될 수 있으면 한복을 입자고 제의했다. 딸들과 사위들은 결혼 때 만든 한복이 있고, 손주들은 친구가 보내 준 당의, 도령모등 아주 화려한 옷들이 있다. 그러고 보면 모두 단벌 신사들이긴 하다. 그런데 보니, 남편은 한복이 없었다.
남편은 한복 샤핑에 함께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몇 년에 한 번씩 행사가 있을 때마다 들러 한복을 마련하곤 했던 곳을 찾았다. 그곳에 가면 한국 비단을 구경하는 기쁨도 있다. 둘둘 말아 진열장에 곱게 뉘어져 있는 한국 비단은 아름답다. 화려한 색갈, 교묘한 무늬는 감탄 할 만 하다. 여러 색갈의 조박지들을 이어 만든 상하 한 벌의 옷이 잘 어울려 준다는 것이 희안하다.
고대에 전투복으로 쓰였다는 쾌자를 골랐다. 쾌자란 입는 사람에 따라 고위층으로 또는 하졸로도 보일 수 있는 옷이라는 해석이 있다. 쾌자는 두루마기 처럼 생겼지만 소매가 없다. 그래야 싸울 때 거치장 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갖고 본 쾌자의 앞면과 뒷면 끝자락 부분에는 붓으로 흘려 그린 듯 보이는 풀잎 모양의 패턴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약간 푸른 빛이 도는 비둘기 색이 나는 완성품이었다. 거의 모든 쾌자가 그렇듯이 등쪽 겨드랑이 선 중앙에서 부터 아래로 스플릿이 있었다. 그래서 움직일 때 펄럭인다. 꽤 멋있어 보인다. 남편도 편안해 했다.
떡국을 먹기 전에 우리는 ‘세배 세리모니’를 했다. 우선 어른들이 딸, 사위, 손자 손녀들 앞에서 먼저 서로에게 절했다. 사랑한다는 말도, 존중한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알고 있겠지….’ 하면서 살아 온 우리들이다. 그래서 절하는 중에 서로를 생각하자 모두 동의했다. 의외로 젊은애들도 그 아이디어를 좋아했다. 자신들의 어려움을 서로 감지했던 터였나?
꼬마들이 어른들에게만 하는 세배가 이어졌다. 아이들 조차도 깊숙하게 바닥에 까지 엎드리면서 천천히 절해 주었다. 급히 일어나지 않는 모양이 좋았다.
한번도 유통된 적이 없다는 새 돈으로 준비한 세뱃돈을 봉투에 넣어 어른과 아이들 모두에게 선사했다. 아이들은 5불, 어른들은 10불. 작은 선물이지만 이것이 주는 의미를 잃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들이 매일을 감사하며 살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이 뿌리는 삶의 향기가 멀리 멀리 퍼져 나가 주었으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