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 문화유산의 달’에 생각하는 뿌리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하면서 군의관을 전쟁터로 파견하는 바람에 미국은 자국민을 돌보아줄 의사가 부족했다. 4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외국에서 의사들을 수입(?)해 와야 했다. 나는 수입된 의사 중의 한 사람이다.

수련의 시절, 한국이 내 모국이라는 것을 알게 된 환자들은 자신이나 친척, 지인이 한국전에 참전했었다는 것, 지인 중의 아무개는 한국 고아를 입양했다는 것, 그리고 한국이 아주 가난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곤 했다. 동양 여자 의사에 대한 차별대우였을까.

요즘 내 환자들은 나의 출신지를 묻지 않는다. 내가 한국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경우, 한국 음식, 드라마, 간혹 자신의 며느리가 또는 사위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기분 좋게 자랑한다. 무엇이 우리를 차별대우의 사이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에게 사회정의의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간단한 답이 나오질 않는다.

얼마 전 손녀들은 ‘아태 문화유산의 달’ 기념행사 공연에서 난타를 곁들인 하나북춤을 여러 꼬마들과 함께 두드리고 추었다. 손녀들은 빨강, 노랑, 검정 원색으로 조화된 농부 차림의 옷을 입고, 머리에는 띠를 둘렀다. 예뻤다. 일곱 살짜리부터 칠십이 넘은 할머니 학생들이 출연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뿌리 교육’이 아닌, 알고 싶어서, 하고 싶어서 하는 배움의 실천이었다.

흑인 노예 수입, 중국 노동자 착취, 일본 혈통 미국 시민들의 강제 수용 등 유색인종을 향한 분별 없는 잔인한 집단 행위는 미국 역사에 오점으로 남아있다. 이 부끄러운 역사를 넘어서서 최초 동양인(일본인) 이민자가 미국 땅에 발을 디딘 5월, 중국인 노동자들을 써서 미 대륙 횡단 기찻길이 완성된 5월을 ‘아태문화 유산의 달’로 상정한 것이 1977년이었고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법으로 만들었다. 일주일 동안 하던 축제를 한 달로 늘린 것은 1990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의 일이다.

러시아 유대인 후손 스티븐 스필버그는 어렸을 때 자긍심이 부족했다고 한다. 흔히 왕따를 당해왔던 그는 자신의 유대인 ‘뿌리’를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만드는 일을 하면서 사회의 부정의에 눈뜨게 된다.

또 부모의 이혼으로 아이들이 받게 되는 아픔에 대한 시각도 예리해졌다. 그는 자기 부모의 이혼이 아버지 때문이라 생각하고 10여 년 동안 아버지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던 그는 삶의 여러 면모를 이해하게 되었고 2차대전에 참전했던 그의 아버지를 위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국내외에서 약 7억 달러라는 수입을 올렸다. 그는 기계적인 작품의 영역을 넘어서서 인류애를 주제로 하는 많은 명화를 만들었다. 그의 일은 그에게 사회정의를 가르쳤고 자신의 ‘뿌리’를 찾게 했다. 많은 사회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유대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부정의를 볼 줄 아는 인지의 눈, 남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는 가슴을 갖도록 도와주자. 비록 무엇이 우리에게 사회정의의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지는 모르더라도, 어떻게 하는지는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연약하게 시작된 ‘뿌리’가 내 가족이나 민족만을 위한 ‘뿌리’가 아니라 인류를 위한 ‘뿌리’로 건강히 자리를 잡아갈 수 있기를 어머니 날, 어린이날이 있는 오월에 ‘아태 문화유산의 달’을 얹으면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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