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LA중앙일보] 발행 2018/06/18 미주판 19면 기사입력 2018/06/17 16:18
그들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스톡홀름 노벨 뮤지엄에 들렸을 때 노벨 문학 부문 수상자들의 스냅 얼굴 사진들을 보며 느낀 것이다. ‘아,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라는 생각이 첫 순간에 들었다. 나 자신이 전시된 사진 주인공들의 나이대에 속하거나 더 늙었는지도 모르는데,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벨 뮤지엄에 들르기 전까지 주름은 추하게 보인다는 분별 없고 습관적이며 반사적인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이번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주름진 얼굴을 보면서 주름도 멋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들 하나하나의 얼굴에 진 주름은 형태가 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표정도 아니었다. 같은 점이 있다면 날카로우면서도 정(精)하고 인자한 눈이었다. 말로는 설명이 어려운, 내가 본 그들의 얼굴은 정돈된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들의 삶뿐 아니라 주위의 생명들을 두루두루 끌어안고 떠들어 대는 혁명가가 되는 대신 소리 없는 혁명을 속으로 감당하며 살았기 때문일까. 모든 생명이 숨 쉬는 길목에서 동조자로, 관찰자로 세상을 일깨웠던 연륜이 보인다.

‘두 번은 없다’라는 시로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199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비스와바 짐보스카(Maria Wisława Anna Szymborska, 1923~2012) 할머니의 마르고 쭈글쭈글한 손을 포착한 사진도 있었다. 아름다웠다. 그 작고 힘없어 보이는 손으로 그녀는 세계를 일깨우는 시를 쓸 수 있었다니.

나는 감동을 자아내는 시간을 노벨 뮤지엄에서 보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비판적인 내가 주입된 지식의 보따리를 노벨 뮤지엄에서 풀었다면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 실린 마담 큐리의 이야기를 읽고 외웠어야 했다. 그래서 큐리 부인의 결혼 전의 성(性)이 스클로브스카라는 것도 아는 터였다. 폴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에 귀화했던 그녀는 물리학, 화학으로 36세, 44세에 노벨상을 받았다. 그녀의 가정에서 다섯 개의 노벨 메달을 가져갔다는 것은 역사상 없는 일이고, 그녀는 최초 여성 수상자였다. 노벨상을 받고도 여자라서, 외국인이라서 과학자, 학자의 대우를 손쉽게 받지 못한 힘든 삶을 살았다. 그러나 자신이 발견한 두 개의 동위원소 중의 하나를 그녀의 모국 폴란드를 기념하며 폴로니움이라 명명할 줄 알았던 여성이었다.

큐리 부인과 남편, 딸 아이린, 사위 프레데릭 졸리옷이 획득한 다섯 개라는 노벨상을 놓고 나는 동료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획기적인 한 가정의 업적이 유전자 때문인지, 환경 때문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들의 결론은 약간의 유전자, 대폭의 환경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가변적인 요소가 있다면 외부의 압력에 의한 노고가 아니라 개개인의 자발적인 호기심, 호기심을 갖고 찾아가는 끈기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맞는다. 나의 전공 분야에서 가끔 쓰는 물리현상 ‘브레그 피크’라는 것이 있는데 이 현상은 윌리엄 헨리 브레그 경이 발견해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의 아들 윌리엄 로렌스 브레그는 25살의 나이에 물리학 노벨상을 받았다. 최연소자였다. 환경의 역할이 컸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나는 네 손주를 둔 할머니다. 부모들인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사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아이들의 롤모델이 되어 주면 좋겠다. 노벨 뮤지엄을 나오며 힐끗 보았던 달라이 라마의 안경, 요셉 브로드스키의 타자기가 내 의견에 동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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