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종교, 문화, 과학의 원산지! (I) (사진참조)

아프리카 대륙 지도를 들여다 보면, 내가 의사라서 그런지, 우리 몸의 대퇴골부를 연상시킨다. 그 대퇴부에 꼬리처럼 동쪽 홍해를 접한 쪽으로 삐죽 튀어 나온 곳을 ‘아프리카의 뿔 (Horn of Africa)’라고 부르는데, 그곳 네 나라 중의 하나인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

아프리카에는 54개의 나라가 있다. 어떤 표현을 빌리면, 아프리카 나라들의 경계선은 ‘두부를 짜른것’처럼 또는 자를 대고 금을 근 것 처럼 반듯하다. 그것은 종획무진하게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했던 유럽의 강국들 (예: 영국은 남쪽에서 북상하며, 프랑스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며 아프리카를 식민지화 했다)에 끼어 들지 못했던 독일, 당시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이 1884년 베를린 회담을 열었고 유럽강국들은 부족, 문화, 전통을 무시하고 금을 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식민지 시대 이전의 10,000개 정도의 소국가, 또는 부족들의 영역은 무시되고 54개로 나누어 진 아프리카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국가라는 공동체안에서 지금껏도 끈임없는 분쟁을 하고 있다. 이 아프리카의 인위적 분할은 천 5백만의 노예를 팔아 넘긴 사건, 나치의 유대인 학살 사건과 더불어 근대사의 참혹한 인권유린의 삼대품목으로 꼽힌다. 에티오피아와 리비아 두 나라는 지배당한 적이 없는 독립국가로 오늘날에 이른다.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기 전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한국전에 참전해 준 나라,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의 연문으로 화려한 과거가 있다고 믿겨지는 나라, 그들의 아들인 메넬릭이 이스라엘에서 하느님의 계약괘를 에티오피아로 훔쳐와(?) 어딘가에 숨겼다는 나라, 아베베 비킬라, 헤일레 게버셀라시에 같은 올림픽 메달리스트 경주자를 배출한 나라, 또 3백만년이 넘은 최초의 인간 ‘루시’가 살었던 나라, 그 ‘루시’의 남아 있는 뼈가, 국립박물관에서 아직도 잠자고 있는 나라, 기적으로 만들었다는 막대한 하나의 돌덩이로 지하교회 11개를 만들어 유네스코 유물 지정국이 된 나라, ‘검은 유대인’들이 그들 아버지의 나라라고 믿는 이스라엘로 돌아가도록 허락해 준 나라, 그리고 가난한 나라로 말이다.

그 나라에 대한 나의 이해는 틀리지 않았다. 그들의 역사에서 분리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종교 콥틱 동방정교라는 점이 또한 막중한 무게로 다가왔다. 지역상 아라비아, 중동지역의 모슬렘의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아직도 대다수, 약 50-60%는 크리스챤이고, 그들의 신앙은 매일 매일의 생활에 흠뻑 젖어 있다는 점 또한 발전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신앙생활과 얼마나 다른가!

종교 이야기를 하기 전에 과학적, 인류학적 면에서 무척 중요한 ‘뼈’의 발견이 에티오피아에서 있었다는 것을 알고 지나가면 좋겠다. 우리들의 조상이라는 키 작은 이 여인, ‘루시’는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국립박물관에서 쉬고 있다. 박물관의 초라함과 허술한 경비에 조금 놀라고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녀를 본 것은 영광이었다. ‘루시’는 1974년 11월에 발견된 3백2십만년 전에 살았던 여인이다. 40% 정도의 뼈가 남아 있고, 골반뼈의 모양으로 여자라고 추정했다. ‘루시’라는 이름이 붙여 진 것은 이 뼈들을 발견했던 당시 기쁨에 들뜬 과학자들은 1967년 작곡된 비틀즈의 음악 ‘루시-하늘에-다이아몬드를 쥔’ 이라는 테입을 틀고 캠핑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즉흥적으로 이 뼈의 주인공을 ‘루시’로 부르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루시’라는 이름은 AL 288-1 이라는 번호표가 달린 하나의 과학 샘플에서 실제의 삼백 이십만년 전에 살았던 하나의 인물로 우리에게 남아있게 된 셈이다. 비틀즈의 노래는 죤 레논의 첫째 부인 (둘째 부인은 요꼬 오노: 저자주)의 아들 쥴리안이 유치원 친구 루시를 노래한 것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그 루시는 쥴리안의 어릴적 친구에 불과하고 10여년 전에 면역결핍증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제 에티오피아의 종교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러면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의 연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에티오피아 왕조는 솔로몬조(朝) 즉 유대인 혈통의 왕조라는 것을 명시해 왔다. 그들의 생활습관이 유대인의 그것과 비슷한 점이라던가, 유대교 다시 말해 구약에 준한 종교적 해석이 많다. 물론 예수를 믿고, 삼위일체와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어느 동방정교인들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그들의 교회에는 그 주제로 한 많은 화려한 벽화들이 있었다. 솔로몬계열에 대해서 다시 말해 보면, 한국 육이오 전쟁 때 6037명의 용병을 보내 주었던 헤일레 셀라시에 왕은 225대(代) 솔로몬조(朝) 황제라고 불린다. 그는 1974년 쏘련이 밀어 준 공산당 쿠데타로 물러나게 되었고 솔로몬왕조는 거기서 끝난다.

 

중앙 2019 3 종교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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