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종교, 문화, 과학의 원산지!(II)

기원전 900여년으로 돌아가자. 에티오피아인들이 굳게 믿고 있는 전설 내지는 역사는 이렇다. 성경에서 쓰여 있듯이 시바여왕은 솔로몬 왕을 만나러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돌아와 솔로몬의 아들 메넬렉을 낳는다. 청년이 된 메넬렉은 아버지 솔로몬을 보러 이스라엘에 갔다가 야훼의 계약괘를 에티오피아로 가져왔고(훔쳐왔고?) 그 계약궤의 행방은 애매하다.

한편 서기 49년 경, 그러니까 예수가 승천한지 19년 후가 되는 때에, 예수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성 마르코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기독교회를 만든다. 이것이 콥틱동방정교이다. 콥틱이라는 말은 17세기 라틴어에서 유래되었고 그 후 그리스어의 에집트원주민이라는 뜻이 연류되어 있다고 한다. 현대의 콥틱교회, 알렉산드리아 그리스 정교, 콥틱 카톨릭 교회들이 바로 당시의 공동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성 마르코와 성 요한 마르코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성 마르코는 지금의 리비아 지방 태생이었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다. 그의 유물의 일부는 이탈리아 상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훔쳐다가 베니스로 가져오게 되면서 성 마르코 대성당이 이탈리아 베니스에 지어졌고 그곳에 모셔있다한다. 나머지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기독교는 사도행전에서 읽을 수 있듯이 간다게 여왕의 내시 에티오피아 사람의 이야기를 보아서도 확실한 역사를 갖고 있어 보인다.

많은 박해를 받았던 콥틱기독교인들의 삶, 그들의 하느님을 믿고 가르침을 실행하는 삶은지금도 에디오피아사람들의 몸에 깊이 배어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서기 330년에 에자나 왕이 (주: 당시 악숨왕국이라 불리었다)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활발한 종교생활을 해 왔다. 지금도 그들은 교회를 신성하게 유지한다. 교회입구인 문에 손과 머리, 가슴을 대고 기도하는 순례객, 또 맨발로 교회를 돌며 묵상하는 순례객들을 볼 수 있다. (주: 사진) 교회를 들어 갈 때, 신발을 벗어야 하고, 남자들은 모자를 벗고 여자들은 머리를 가린다. 어떤 교회당에는 여자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유일신인 기독교의 국교화로 에티오피아의 찬란한 문화를 상징했던 태고적 무덤 위에 세워진 오발리스크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에집트 오발리스크와 달리 악숨 오발리스크라고 불리는데, 그 조형문양이 에집트것과 달리 특이하고, 직선, 사각, 대칭적인 형태를 갖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현대식 무늬처럼 멋있다. 조각조각을 이어서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의 큰 돌을 써서 만들었다.

에티오피아 하면 반드시 알고, 또 볼 수 있으면 보아야 하는 땅 속의 집채 이상 크기의 붉은 암석, 그것도 한 덩어리인 돌을 깍아 만든 암석교회들이다. 통틀어 11개가 랄리벨라에 있다. 11세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당시 모슬렘 지역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갈 수 없게 된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위해 지은 것으로 ‘새로운 예루살렘’이라는 의미를 갖고 지어졌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속해 있다 보니 유네스코에서 교회들을 자연붕괘에서 보호한답시고 거대한 텐트를 지상에 쳤기 때문에 교회들의 장엄한 모습을 온전하게 볼 수 없는 결점이 있다.

그 중 한 교회는 텐트가 쳐 있지 않아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성그레고리 교회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받은 장소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하는데 랄리벨라 왕이 묻혀있다. 일화에 의하면 성 그레고리 (에티오피아 말로 베트 기요르기스)가 랄리벨라왕 앞에 나타나 자신에게 바쳐진 교회가 없다고 불평하자 왕은 아름다운 교회를 지어 줄 것을 약속했고 그리 만들어 진 교회로 11미터 땅 밑으로 내려가서 교회주위에 만들어져 있는 큰 홈 (또는 길)을 통해 교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큰 교회를 통해서 작은 교회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골고다교회라고 불리는 아름답고 작은 교회를 사제가 지키고 있었다. 나는 여자라서 들어 올 수 없다고 말했다. 머리만 드리 밀고 구경은 할 수 있었다.

옆의 사진은 세 명의 관광객과 교회의 크기가 잘 비교되어, 그 웅장함을 가늠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의 어떤 교회를 가더라도 교회는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많은 교회들이 원형이었고, 시골의 교회들은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었다. 원형이기 때문에 제일 밖의 둥근 통로에 교인들이 미사 중에 머문다. 두 번째 중간 통로는 영성체를 하러 들어가는 곳이다. 제일 중심은 지성소로 야훼의 궤, 그러니까 궤의 카피본들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성직자이외에는 들어 갈 수 없는 곳이다. 서방교회처럼 사각형 건물의 교회이더라도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제 야훼의 계약궤의 이야기로 글을 마칠까 한다. 악숨(Axum)은 고대 에디오피아의 문화지였고, 오랫동안 수도이었던 곳인데 이곳에 야훼의 계약궤가 있다는 것이다. 찾아 간 교회는 사진의 오른쪽 작은 교회인데 그곳을 지키는 사제가 있고, 아무도 들어 갈 수가 없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니 계약궤를 본 사람은 없을 수 밖에 없다. 곳곳에 있는 콥틱 동방정교교회에는 나무로 된 모조궤가 아닌 모조판이 모셔져 있다. 이 모조판들도 교회 행사 때에 사제가 머리에 이고 행진할 때 일반 교인들에게 보여지지만, 헝겊에 싸여져 있어서 실제 목판은 볼 수 없다. 영국이 에티오피아를 침범했을 때, 영국병정들이 훔쳐 온 것들을 대영제국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내가 찾아 본 것은 나무판 중앙에 모세 때의 십계명 판이 아닌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조각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에티오피아인들의 기독교 신앙은 콥틱동방정교이지만 지금은 에집트, 중동의 동방정교회에서 독립된 상태이다. 콥틱기독교, 동방정교는 에티오피아 토속문화와 잘 어우러져 있어서 서방기독교 또는 그리스정교와는 조금 다른 냄새를 풍겼다. 토속 유대문화의 일부를 실행하면서 살아온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신약보다도 구약의 법에 따라 살았기 때문일 것이고, 그들이 뼈속까지 깊이 자기 것으로 여기는 하느님의 계약궤를 가진 특수민족이란는 점, 또 누가 뭐라던 시바여왕과 솔로몬의 결합으로 그들은 유대혈통의 황제들이 있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그들의 이야기를 ‘The Sign and The Seal: Graham Hancock (Crown Publisher 1992)’에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에티오피아를 참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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