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4월 19일 USC 에서 ‘ Commemorating The Centennial: Spring 1919,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Digitized Archives’ 이라는 제목으로 conference 가 있었다. USC 에 재직하고 있는 한국계통 역사학 교수들과 비혈통계 타 대학 석학들이 한국의 삼일운동, 임시정부를 주제로 그들이 찾아내고, 연구해 온 자료들을 발표했다. 대표적 발표자는 Indiana University 석좌교수 Michael Robinson, Rikkyo University 교수 Mark Caprio, UC Davis Richard Kim 교수이었고 commentary 를 Sunyoung Park, David Yoo, Kristine Dennehy 교수들이 하였다.
이 학회는 한 나절 정도 걸리게 짜여 있었다. 오랫만에 방문한 USC 캠퍼스는 아름다웠다. 잘 가꾸어진 정원, 오래된 나무들, 유서 깊어 보이는 빌딩들, 여유있어 보이는 학생들이 잘 어울려 보였다. 학회 참석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쉬웠다.
그곳에서 예전에 몰랐던, 어쩌면 배웠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정보들이 논의 되었다. 삼일운동과 상해임시정부는 서로 연통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같은 때에 일어났다는 것과 1918년 발표되었던 그당시 미국대통령이었던 W. Wilson 의 ‘Fourteen Points’ 는 유럽의 평화적인 나라 설립 또는 재설립에 관한 것이었지 식민지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조선강점의 과정, 강점 후 징병되어간 조선학병들과 그들의 말로, 전범죄인으로 사형된 한국인들에 대한 언급이 강의 중에 있었다. 이것이 학회의 focus 가 아니었기 때문에 간단한 언급으로 끝났던 항목이다.
Wilson 대통령은 석학들을 고용하여 연구해서 ‘Fourteen Points’를 발표했던 것이라는 것을 학회가 끝난 다음 내가 찾아 본 결과 알게 되었다. 삼일운동은 고종황제 장례식을 기해 곳곳에서 한국민들이 붕기한 독립운동이었다. 고종황제는 1월에 타계했는데, 절차상 장례식 까지 시간이 걸렸고, 당시는 음력을 쓰고 있었기에 약간의 착오는 있을 것이라고 한다.
어떻든 일본인에 의한 동양인들의 학살은 5백만 전후이고, 일본군대로 징병되어 죽어간 젊은청년들, 생체실험의 희생자, 위안부 희생자에 대한 잔혹함은 유대인 홀로코스트보다 알려져 있지 않다. 독일인의 유대인 학살에 대하여 세계와 유대인 자신들이 focus 를 두어조명했던 것과는 강도를 달리한다.
되돌아 보면 나는 제대로 역사과목을 배운 적이 없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현대사를 배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역사에 대한 무식함을 다음의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토론하고 싶다. 나는 서울 정동에 있던 경기여고를 졸업했다. 가고 싶어서 간 학교도 아니고, 언니가 졸업한 학교니까 당연히 나도 보내진 학교이다. 그랬던 어린시절이다 보니, 학교에 관심이 있을리 없었다. 11년 전, 경기여고는 개교 100주년 행사를 크게 하였고 졸업생들의 모금으로 동창회관도 지었다.
이 때 발행된 기념호에 의하면 내가 다녔던 경기여중고교는 1908년 순종의 칙령에 의해 설립된 한국 최초의 관립 고등여학교이었다고 한다. 들여다 보니, 최초의 교장은 한국인 어윤적 선생이었고 1913년 부터 1945년 동안 다섯명의 교장이 있었는데 그중 네 명은 일본인이었다. 나는 한 번도 일본인 교장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한 거론도 듣지 못했다.
경기여중고는 지금도 건재한다. 함께 걸어온 명문사립학교 이화여고, 숙명여고등도 건재한다. 그외의 한국여성 교육의 산지였던 많은 중고교들이 지금도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비록 애교심은 커녕, 무관심하게 교정과 교실을 드나들며 지나버린 학창시절이지만, 알게 모르게 받았던 학교에서의 교육은 가정에서 받은 밥상머리 교육과 함께 내 안에서 지속적인 교육관념으로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