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업] 의학 실험으로 희생되는 동물들

[LA중앙일보] 발행 2019/10/22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9/10/21 19:40
사계절이 확실하지 않은 LA라 해도 시월은 나에겐 빛 진한 가을이다. 가을은 러시아를 생각하게 한다. 그곳에는 쌀쌀하고, 피비린내나는 그들의 역사가 여기 저기에 묻어 있었다. 차이콥스키나 도스토옙스키의 흉상조차 검었다. 우주박물관이 잊혀지지 않는다. 첫 우주 동물이었던 견공 라이카를 거기서 동상으로 만났다.

모스크바 길거리에 살던 라이카는 특별한 이유로 구제됐다. 62년 전, ‘자살 미션’이라고도 비난을 받았던 스푸트니크 2호에 최초 포유동물로 탑승해 우주로 보내지기 위해서였다. 라이카에게는 무척 불공평하고 불행한 처사였다. 공평한 세상을 바란다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환자를 고치는 나도 생명의 희생에 근거해 만들어진 치료법을 이용한다. 그 희생은 많은 경우 불공평했을 것이다. 얼마 전 어린이 백혈병 치료제 ‘빈크리스틴’이라는 약품 부족으로 아이들 약을 분할해서 공급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떤 방식으로 약을 분할공급할 것인가? 이 또한 불공평한 방법으로 행해질 수 있다.

우주로 보내졌던 라이카의 죽음을 생각해본다. 라이카는 이미 성장한 개였지만 과학자들은 실험용으로 많은 동물들을 인위적으로 출생시킨다. 2016년 동물실험 보고서에 의하면 1년 동안 82만 마리의 동물들이 실험에 사용됐다. 이 데이타는 포유동물에 대한 보고일 뿐이다. 미국의 동물보호법이 보호하지 않는 쥐, 새, 물고기 등을 감안할 때 1200만에서 2700만 마리가 희생됐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실험에 희생되는 동물보다 1800배의 돼지, 340배의 닭을 우리들이 먹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9000마리의 닭이 실험에 쓰여지고 있으니 이의 340배이면 300만이 넘는다. 더욱이 길에서 죽는 동물은 실험동물의 14배나 높다.

인류는 공평하려고 애써왔고 그 이름으로 전쟁을 했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아이러니가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 민족이나 부족은 공평한 권리를 찾으려고 전쟁을 한다.

최근 ‘목숨 걸고 돌아온 의사’라는 제목의 글이 친구로부터 전송돼 왔다. ‘한겨레 21’이라는 한국에서 출간되는 잡지에 실린 기사로 2018년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 중의 하나인 드니 무퀘게를 인터뷰한 글이다. 취재는 전해리라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했다. 전해리 작가는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무퀘게 의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이렇게 시작했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수화기 너머 한 동료가 눈물로 애원했습니다… 수술실에 도착했을 때, 간호사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18개월의 여아의 방광, 생식기, 직장이 심각하게 손상됐습니다… 신이시여, 우리가 보는 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십시오. 나쁜 꿈이라고, 깨어나면 모든 게 괜찮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힘들고 불공평한 세상이 된 원인을 우리는 모른다. 또 고칠 힘은 없지만 터진 일들을 꿰매는 작업에는 숙달되어 있는 것이 우리들이다. 혼란한 생각을 버릴 수도 없앨 수도 없는 이 아침은 사회정의라는 말로도 위로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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