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라는 말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 진다. 이 말은 특별한 뜻을 갖고 나에게
닥아 온다. 내가 세상에서 단 한 사람에게만 주는 이름, 또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는 부부끼리 ‘아무개 씨’하고 부르는 커플들이 있다. 우리 부부도 그렇게 세속
이름이나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개 씨’는 삼인칭 호칭이고, ‘여보’는 이인칭 호칭이다. 아주 가까운 관계 속의 이인칭의 부름이 여보라는 것일게다.
내가 밥과 빵을 질력 내지 않고 좋아하는 것이나, 바크의 음악을 들으며 평화의 싸이클로
들어가는 것도 비슷한 의미를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의미 한 것 같기도 하고, 평범한 것 같으며, 때로는 지루한 것 같은데, 없으면 찾고, 먹을 수록 들을 수록 편하고 좋다.
안심하고 편안하게 나를 내어주고 접할 수 있기 때문인가 보다.
‘여보’란 말은 평범한 단어 안에 깊고 맑은 사랑의 샘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여보’란
평범한 말이 아닌 것 같다. 세상에서 한 사람만 빼고 나를 ‘여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나를 ‘아무개 씨’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 한 사람만 빼고 전부라도 과언은 아닐게다.
‘여보’라는 말.
처음 만났을 때 가졌던 차갑고 예리했던 이성도, 뜨겁고 부풀었던 열정도, 사랑하므로
느꼈던 아픔도 이제는 내가 매일 먹는 밥 처럼, 그렇다-.
그러나 그 ‘여보’라는 말은 소망을 갖고 언제나 나를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 ‘여보’는 연륜이 지어준 편안한 주름, 희끗 희끗한 반백의 머리칼, 여전히 깊고도 차가운 듯 싶은 눈으로
소망을 함께 하자고 말 없이 말한다.
***오래 전에 썻던 글을 줄여서 올립니다. 중앙일보에는 ‘김영률’ 이라는 이름으로 나갔지요. 제 어머니의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