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코미아 수녀님!!!

(1957.10.5 출생/ 1980.3.6. 입회/ 1984 2. 첫 서원/ 1988.8 종신서원/ 2020. 4.5 선종)

이 글은 김 선미 파코미아 수녀님 선종 후, 남가주 신문사에 알리기 위해 쓴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변변하지 못한 카톨릭 신자인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내가 몸 담고 있는 벨리지역 ‘성요셉 한인 성당’ 신부님이 교우들에게 일 년 반 전에 내어 주신 신약성서 옮겨쓰기를 반 년이나 지각하면서 끝내었습니다. 나를 돌아보며, 겸손하게 한 또 하나의 프로젝트였습니다.

40년의 수도 생활의 대부분을 이곳 로스안젤레스 교민들을 위해서 봉사해 왔던 김선미 파코미아 수녀가 2020년 4월 5일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에서 선종하였다. 향년 67세로 영문학 전공하고, 대학 졸업 후 입회한 수녀는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에서 사목신학을 전공한 석사이다. 남가주에서는 다우니의 성 라파엘 성당, 한인타운 성 그레고리오 성당, 밸리의 성요셉 성당과 노뜨 할리우드의 성정하상 성당에서 사목하였다.

항상 가난하고 소외되고 냉담한 신자들을 찾었던 수녀이다. 자신은 늘 가난하게 살았다. 수녀의 부친은 목사이었고 목사 아버지의 권고로 세 딸 모두가 수도생활을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파코미아 수녀는 2015년 서울 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의 특별 요청으로 대북지원사업의 모니터링을 위해 여러번 방북하였다. 하느님이나 어떠한 ‘신’도 믿지 않는 공산체제 관계자들은 수녀와 쉽게 친해졌고 평복을 입어야 했던 수녀를 ‘김선미 선생’이라 부르며 가까이 했다 한다.

파코미아 수녀가 소속해 있던 성 베네딕트 여자 수도회에 대해서 약간 나눈다. 5세기 이탈리아 출신 성 베네딕트의 영성 ‘기도하면서 일하라!(Ora et Labora)’ 라는 가르침을 따라 1884년 창설된 남자 수도회에 이어 1885년 만들어진 여성 수도회이다. 툿찡은 독일의 지명이다. 일본 강점기 시절 1925년 네 명의 수녀들이 독일에서 함경남도 원산으로 파견되어 시작된 이 여성 수녀원은 1949년 공산화로 폐쇄되면서 한국계 수녀들은 추방되고, 독일 수녀들과 독일 수사, 신부들은 평안북도 강계에서 5년 동안 복역하고 1954년 독일로 송환되었다한다. 육이오 전쟁이 있었을 때 한국 수녀들이 대구에서 다시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파코미아 수녀는 발암 후, 아픈 몸으로 드디어 한국으로 귀향할 수 있었다. 2년 동안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투병 중에도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항상 수녀원 이층에 있는 성당에서 꼿꼿한 자세로 기도와 성체조배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류 모니카 정리

전 성 요셉 한인 성당 사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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