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뭐예요?”
“제니퍼예요.”
“이름이 예쁘네요. 얼굴도 배우 제니퍼 존스를 닮았어요!”
오래전 ‘별 다방’ 패스트 푸드 연쇄점에서 마주치곤 했던 홈리스 아줌마의 이름은 제니퍼였다. 생기면 무엇이든 먹어 두어야 했던 제니퍼는, 그래서 그랬는지, 뚱뚱했다. 제니퍼에게 배우 제니퍼 존스를 닮았다고 한 것은 그녀가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제니퍼 존스라는 배우를 알 것 같은 나이로 보이지 않았다. 보통 누울 자리 없이, 떠돌며 고생하며 살아왔을 여인은 제 나이 보다 늙어 보였을 것이다.
연쇄점은 성당 건너편 쇼핑몰 한구석에 있었다. 토요일 새벽이면 몇 안 되는 신자들이 새 성전 건립에 지향을 두고 기도 모임을 하던 때였다. 많은 한인 이민 공동체들은 한국어, 한국문화를 나눌 수 있는 이미 꾸며진 공간이 있는 건물을 마련하려 애쓰지만, 매물로 나온 건물이 드물고, 있다해도, 엄청난 재정적인 밑받침이 필요했다. 마침 어느 미국 노동단체가 강당으로 쓰던 건물을 싸게 사들이고, 이곳에 제대를 꾸며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동체는 교회다운 교회를 갖고 싶어 했다.
새벽 기도가 끝나면 연쇄점에서 아침 식사를 함께하곤 했다. 연쇄점 현판은 빨간 배경에 흰 글씨로 식당 이름이 쓰여 있고, 한쪽 귀퉁이에 노란색 별이 붙어 있어서, 우리는 그곳을 ‘별 다방’이라 불렀다. 커피를 마시면서 음악 감상을 하던 ‘다방’에 익숙했던 디아스포라들이었던지라, 우리들은 ‘다방’이라는 말 속에 숨어있는 향수(鄕愁)를 잊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커피 맛보다, 커피 향이 더 좋은 ‘별 다방’의 커피 생각은 기도 중 분심이었다.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가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새벽기도는 나에게 무척 생소한 것이었다. 성지순례를 하러 가면 모르겠지만, 내가 자랄 때, 가톨릭교회에서 새벽에 모여 함께 기도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제니퍼는 나처럼 커피 향이 나는 ‘별 다방’을 애용하는 토요일 조식 단골손님이었다. 제니퍼가 다른 날에도 ‘별 다방’을 이용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주 중 새벽에 내가 성당에 가는 때는 없었기 때문이다. 늘 지나치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그날 아침에 말을 건네었다.
제니퍼와 말을 섞은 새벽은 꽤 쌀쌀했다. 날씨가 온유한 아열대 지방 엘에이이지만, 겨울철 새벽을 지난 아침은 섭씨 15도 위아래를 오르내린다. 적당히, 기분 나쁘게 으슬으슬하다. 내가 보았던 그녀는 그때까지 누구와 대화 하는 적이 없었다. 항상 혼자였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쇼핑카트에 담아 담요로 덮고, 이동하곤 했다.
제니퍼에게 ‘별 다방’은 임시 주택이었다. 그곳 화장실을 이용하여 기본적인 생리적 요구를 해결했다. 점원이나 고객이 제니퍼를 방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간혹 엘에이 타임스 신문을 테이블에 늘어놓고 여기저기 훑어보는 모습도 보았는데, 보기 좋았다.
얼굴은 희고 맑았고, 통통한 뺨이 늘 붉었다. 두 발과 일부 노출된 다리는 항상 부어 있었다. 두 다리 피부가 팽팽히 스트레치 되어 있어, 조금만 건드려도 흠집이 날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였다. 미니 홍이슬 포도 모양으로 고인 림프액종도 여기저기 있었는데, 다치면 금방 터질 것 같았다. 부어 있는 발가락 주름 사이에 낀 회색 먼지와 발톱 밑에서 빠꿈이 세상을 내다보는 새까만 때가 걱정스러웠다. 염증이라도 생기면, 상향성 림프염이 다리 전체로 퍼지고, 면역력이 낮을 홈리스인 그녀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백혈병이 있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림프염을 이기지 못하고, 폐혈증으로 죽은 것은 잘 알려져있지 않은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제니퍼 아줌마가 어느 날 아침 ‘별 다방’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다. 반가웠다. 그녀에게 그동안 어디 갔었느냐고 물었다. 심장과 폐에 물이 고여서 카운티 시립병원에 입원했었다고 말했다. 종아리와 발에 있던 부종도 빠졌고,많이 여위었지만, 편안해 보였다.
그렇다. 우리는 기본적 인권중의 하나인 쉼터에 대해서 별 생각 없이 살아간다. 우리의 육체, 정신, 감성은 하루라는 싸이클을 쉼터에서 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매사가 편한 우리는 우리에게 쉼터가 있다는 특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루 일을 끝내고, 스트레스를 받아 준 뻣뻣하고 단단해진 등판을 평평한 바닥에 누이고, 쉴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집이 없고, 무슨 이유에서든지 가족이 없는 노숙자들은 등을 누일 따뜻한 바닥이 없다. 배고픔, 추위나 더위를 이기려고 쉬지 않고 걸어서 이동한다. 그러니 다리에 수종이 생기고, 수종은 심장과 폐에 문제를 일으킨다. 끼니를 기약할 수 없으니까 아무것이나 생기면 먹어 두곤 한다. 그래서 몸무게는 조절될 수 없다. 건강이라는 말은 이런 노숙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러운 단어일 뿐이다.
부활절을 지낸 다음 토요일 또 그녀를 ‘별 다방’에서 보았다. 그녀의 테이블 위에는 엘에이 타임즈가 널려져 있었고 그녀는 화장하고 있었다. 하늘색 아이섀도, 분홍색 입 연지를 발르면서 말이다. 예뻤다. 그때 어디선가 빼빼 마른 키다리 아저씨가 불쑥 나타났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은 백인 아저씨는 활짝 웃으면서 몸 뒤에 숨겨 갖고 있던 꽃다발을 제니퍼에게 내밀었다. 꽃들이 약간 시들어 보였다. 여기저기에서 부활절 때 잠깐 쓰고 버려진 꽃들을 모아 만든 것 같았다. 꽃을 건네는 아저씨와 꽃다발을 받는 제니퍼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두 남녀가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이었다.
오 년 후 새 성전은 건립되었다. 건강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던 제니퍼, 꽃다발을 주던 그리고 받던 노숙자 아저씨와 제니퍼는 ‘별 다방’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로스 안젤레스에서 노숙자로 살다가 이 세상을 등지는 여자들의 평균 수명이 48세이고 남자들은 51세라고 한다. 나는 제니퍼와 꽃을 주던 아저씨가 어디로 떠나갔는지 알 것 같았다.
누군가 노숙자들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살았을 때 쉴 곳이 없던 그들은,
죽었을 때 영원히 머무를 곳이 있다네….’
다발 속 꽃잎들이 훌훌 떨어져 떠났던 것처럼, 그녀도 백인 아저씨도 영원히 머물 곳으로 떠났을 것이다. 부활절 그녀에게 증정됐던 꽃다발이 그녀 가슴에 안겨 있다. 아저씨는 보이지 않는다. 산들바람을 맞으면서 달려가는 그녀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