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의료: 맺어저서는 안 될 때가 있다.

간호사는 유방암 치료를 위해 의뢰되어 온 환자를 진찰실에 안내하고 가족력, 과거력 확인 후, 혈압, 몸무게를 기록하고 나서 나에게 귀띔해 주었다. 그 유방암 환자는 트렌스젠더라고 말이다.

환자는 작은 체구에 숱 많은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남자였다. 젊잖아 보였다. 여자였다던 그에게 남장이 잘 어울렸다. 와이프라고 소개하는 여인이 함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원해서 남자로 살고 있었다. 그 환자는 유전자형(遺傳子型, genotype)으로는 여자였다. 여성은 선천적으로 난소, 자궁, 질, 유방을 갖고 태어난다. 이 여인은 여자를 여자답게 만드는 기관들을 수술로 없애지 않고 남성 호르몬을 투입해서 그 기관들의 기능을 죽여왔다. 그래서 밖에서 보기에(表現型, phenotype) 그는 남자였다.

남성 호르몬 투여로 수염이 자랐고, 목소리가 굵어졌다. 그에게 남아 있던 유방과 난소는 기능을 잃었지만, 남성 호르몬은 그에게 남자 성기(性器)를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성기는 수술로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그녀는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남아 있던 유방 세포에서 암세포들이 만들어지고, 자랐다.

우리는 성 정체성에 대해서 별생각 없이 산다. 성 정체성은 태어날 때 여자 또는 남자라고 주어지는 종목이다. 그런데 인구의 약 2% (0.05-1.7%) 정도는 육체적으로 애매한 성기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를 인터섹스 (간성 間性)라고 부른다. 조금 설명을 해 보자면, 밖으로 보이는 남자/여자의 특성이 염색체나 생식기관 또는 성기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이다. 간성인 사람은 남자, 여자, 둘 다 또는 둘 다 아니라고 자신을 내세울 수 있다. 유방암 치료를 위해서 나를 찾아왔던 그 남자환자는 간성이 아니고 유전자형으로는 여자이었던 성 소수자 트렌스젠더였다. 간성과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는 서로 관계가 없다.

캘리포니아 법안 중에 간성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의 생식기관이나 성기를 교정하는 수술 시점을 두고 법안이 몇 번 상정되었다. 번번이 기각되었다. 최근 것은 12살이 될 때까지 수술로 교정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올해 5월에 발안 되었는데, 보류상태이다. 정치인들의 발안 내용이 의료인들의 의견과 환자 또는 환자 가족들이 겪은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서, 오해의 여지를 많이 주고, 환자들에게 도움보다는 해를 끼칠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자신이 남자 혹은 여자가 되기를 원하는지가 제일 중요할 것이다. 본인의 뜻에 맞게 해 주어야 한다면, 어린이가 몇 살이나 되었을 때,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을 것인가를 숙고해 보아야 한다. 환자는 확신이 필요하다. 또 부모와 소아 성(性) 수술 전문의사들에게는 단순할 수 없는 과정을 함께 이해해 가면서, 아이가 결정하는 시점에 도달해야 한다.

정의로운 법처럼 좋은 것이 있으랴 싶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법과 정치가 충분한 연구와 고찰을 통하지 않고 의료에 개입되었을 때, 인류는 고통을 겪었다. 때로는 목숨을 타의에 의해서 잃기도 하고, 자유를 박탈당했으며, 깊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좋은 예가 19세기 말에 시작되었던 ‘우생학 운동(Eugenics Movement)’이다.

우생학이란 생물학적으로 좋은 종류의 사람들만 남기고, 열등하다고 판정되는 사람들의 번식을 막는 법이었다. 이 법이 시행되도록 한 사람들이 많지만, 미국의 우생학 방법을 나치 히틀러에게 전수시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핸리 러글린과 콘플레이크 시리얼을 만들어 낸 존 하비 켈로그 의사가 선두 주자였다. 미국에서 19세기 말부터 1940년대까지 시행되었고 1927년 대법원의 인가를 받았던 이 법 때문에 7만여 명의 미국인들이 강제로 피임 수술(정관수술, 난소관 수술)을 받았거나, 생식이 가능한 나이 동안 강제 집단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다.

그 당시 열등 인간으로 간주하였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들여다보자. 지적장애인, 신체장애인, 간질병이나 정신질환 등이 있는 사람들, 유색인종, 혼합 결혼자 (타 인종끼리의 결혼)들이었다. 백인 중에는 동유럽, 남유럽인이 해당하였다고 한다.

역사를 배우면서 인간이 만든 부조리한 법, 인간이 행한 정치의 횡포를 본다.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1909년부터 1979년 사이에 강제 피임 수술을 받았던 사람들과 1979년 이후에 감옥에서 역시 강제 피임을 당한 사람들의 후손에게 보상금을 주기로 책정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는 우생학 비리에 앞장섰던 주(州)이다.

인터섹스로 인한 선천적 결함이나 LGBTQ 성 소수자들이 택한 길을 정상, 비정상의 잣대로 재어서 가두어 놓지 말자. 내 눈 속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는 우리들의 우매함을 일깨우는 성서 구절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2021.8 중앙일보 오픈업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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