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고양이가 인도한 한국어 진흥으로 향한 길

무얼 사러 들렸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근무처 병원 근처에 있는 가전용 철물, 꽃, 정원 도구를 파는 홈디포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 주차장에서 까만 홈리스 고양이를 보았다. 주위를 경계하는 듯, 두리번거리면서 잽싸게 움직이던 마른 모습이 마음에 걸려, 며칠 후 퇴근길에 다시 들렸다. 어떤 타 인종 아줌마가 나무 사이 덤불 밑에 고양이 먹이를 놓아주고 있었다. 그 아줌마는 TNR(trap-neuter-return: 덫-피임 수술-반환)을 하는 봉사단체 일원이었다.

TNR이란, 말 그대로 (길고양이를) 포획하고, 피임 수술을 시킨 후에 워낙 살던 동네에 다시 놓아준다는 뜻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미국에는 6천만에서 일억 마리나 되는 홈리스 고양이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 년에 약 백만 마리가 안락사를 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까만 홈리스 고양이 구출 작전(?)을 암 치료 테크니션 도나와 세웠다. 성공적으로 입양도 되었다. 이 과정에서 UCLA 대학 문 애리 사회학 교수를 만났다. 고양이 구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알게 된 문 교수는 자기의 전공 사회학과 상관없는 한국어 진흥을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특이한 학자였다. 문 교수는 나를 한국어진흥재단으로 인도했고 그곳에서 차세대를 위해 한국어가 세계 언어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를 해온 이사들을 만났다.

누가 그랬던가?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세웠던 계획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배운 것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 삶이 흥미로운지도 모르겠다. 나야말로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던 것이었다.

나는 한국어 교육에 대해서 문외한이었지만, 문화적 자극이 없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는 청소년이 한가지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사회경제적으로 뒤지지 않는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논문을 통해 알고 있었다. 가난하다고 머리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생계유지 때문에 부모들이 함께하는 시간이 적은 아이들은 정신적, 문화적 자극이 결핍되기 쉽다. 어린 시기에 학교에서 제공하는 외국어를 배울 때, 뇌의 표면적은 넓어지고, 이는 지능지수를 높인다.

이 나라에서 외국어라면 영어 이외의 세계 언어들이 다 포함될 것이다. 한국어가 공립학교의 선택과목으로 인정된 것은 겨우 20여 년 전의 일이다. SAT II 한국어의 등재였다. 그러나 지난 1월에 SAT II 과목 전체가 폐지되면서 SAT II 한국어 시험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SAT II보다 높은 차별화 된 최고 과정은 AP이다. AP란 Advanced Placement의 약자로, 대학교 학점을 고등학교에서 취득하는 제도이다. 38개의 과목이 선정되어 있고, 이 38개 과목 중에 일본어, 중국어는 포함되어 있어도 한국어는 없다.

SAT II 한국어를 등재 시키는 것에 한몫했던 한국어진흥재단은 칼리지 보드가 AP 한국어를 짧은 시일 내에 출시하도록 그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칼리포니아 주민들의 협동으로 2016년 프로포지션 58을 통화시켜 공립학교에서 이중언어 프로그램을 재생시킨 것 처럼, 학생, 학부모, 한국 커뮤니티, 단체가 함께 하면 성공한다. 12기관이 동참했다. 이 협동심은 ‘AP 한국어 개발 서명운동 (supportapkorean.org)’을 통해서 주민들이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3주가 되어가는데 서명한 분들이 약 20,000명에 육박한다. 비 한국계 시민들과 한국 거주민들도 참여하고 있다. K-Food, K-Beauty, K-Culture, 등 ‘K’의 상징은 힘이 있다. ‘K-Language’ 한국어는 우리의 자랑이고 힘이다. 칼리지 보드를 찾을 계획은 잘 준비되어가고 있다.

길고양이가 인도한 낯선 곳에서, 외국어 교육의 의학적인 의미를 깨달았던 것이 새삼 뜻깊다. 덧붙여, 외국어를 터득함으로써 얻게 되는 능력이 우리 아이들의 삶을 더 좋고, 의미 깊게 한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미국의 차세대가 한국어를 통해서 글로벌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은 공상이 아니다. 독자들도 ‘supportapkorean.org’ 에 서명하시고, ‘가보지 않은 길’로 보일지 모르지만,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 함께 하는 희망은 ‘K-Power’이기 때문이다.

2021.5. 미주 중앙일보 오픈업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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