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를 반년 만에 만났다. 십 년 손위인 언니는 미국 밖에서 일 년 중, 몇 달을 지낸다. 언니가 갑자기 작아 보였다.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언니는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컸다. 형제 중에 키가 제일 작았던 나는 가끔 ‘스라소니’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언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언니가 늘 나를 내려다보곤 했는데, 이번에는 언니와 내가 대등한 입장에서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스라소니’라는 별명은 식구들이 무례하게 나를 비하해서 불렀던 표현이었다. 이 말은 평안도 사투리로, ‘못난 호랑이 새끼’를 뜻한다. ‘스라소니’란 중형 고양잇과에 속한 포유동물로 중앙 유럽, 동아시아에 살고 있다. 학명으로는 링스(Lynx)이다.
부모님들이 평안도 출신이어서, 언어, 음식을 포함한 생활 문화가 평안도 식이었다. 평안도 식이란 이 경우 직설적이고 꾸밈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키 작고 못 생기고, 암팡지다고 나를 그리 불렀을 것이지만, 사실 평안도 사람들은 일찍 남녀평등의 교육을 실천하던 장점도 있었다. 서양문화가 중국에서 평안도를 거쳐 들어왔기에 일찍 이를 받아들이셨던 분들이었다. 딸들도 자신의 의견을 편히, 확실히 하도록 가르치셨다.
나를 ‘스라소니’라고 놀리었던 언니가 ‘스라소니’만큼 키가 줄었다. 나는 언니가 칼슘과 비타민 D를 먹는지, 운동은 하는지 궁금했다. 언니는 골다공증으로 키가 줄고 허리가 굽은 것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오고 있었다. 골다공증은 뼈가 부러지거나, 허리가 굽거나, 허리가 아프게 될 때까지 인식하지 못하는 병이다. 그래서 의료계에서는 ‘silent disease’ 즉 ‘드러나지 않는 병’이라고 부른다.
코비드가 지난 2년 동안 세계적으로 약 4억 7천만 명이라는 막대한 숫자의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골다공증도 이와 다를 바 없이 흔하다. 세계 건강 기구(WHO)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50세 이상 여성의 21%, 남성의 6%가 이 ‘드러나지 않는 병’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세계 평균 보다 많아, 여성의 35.5%, 남성의 7.5%가 골다공증을 갖고 있다고한다.
골다공증은 골절의 전조이다. 세계적으로 골다골증이 있는 5억 명 중, 어느 해에는 8백 9십만 명이 골절되어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것은 한번 골절상을 겪은 사람들이 일 년 이내에 약 6.6%가, 2 년 내에 12%가, 4 년 내에 20.9%가 또 뼈가 부러지는 불상사를 겪는다. 흔히 골절되는 부위는 엉덩뼈, 등뼈 그리고 손목뼈이다.
골다공증에 의한 골절로 겪는 고통은 심하고, 수술 후 재활에도 시간이 무척 걸리고 힘들뿐 아니라 질적인 삶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뿐이랴. 치료와 재활에 들어가는 재정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좀 오래된 통계(2008년~2013년 동안)이지만 매디캐어는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 치료에 환자 한 사람당 약 4만 5천 불을 지출했다고 보고했다.
골다공증은 칼슘과 비다민 D 섭취, 활동적인 생활습관, 과음이나 흡연을 피해 주면 예방이 가능하다. 고질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복용해야 한다거나, 소장의 흡수기능이 저하된 경우, 가족력이 있을 경우, 체중이 평균치에 못 미치게 마른 사람들, 백인 여성, 70세 이상의 남자들도 위험 그룹에 속한다.
골다공증 예방에 앞장선 메디컬 그룹으로 카이저 병원이 모범 케이스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그룹이 발표한 논문을 간추려 정리해 보면 주치의는 예외 없이 50세 이상 환자들에게 골밀도(bone density) 테스트를 받도록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치료 또는 예방 프로그램에 보낸다. 치료는 주사로 하는 경우도 있다. 골다공증의 예방은 획기적인 예방 의학의 성공적인 사례로 보인다.
나는 ‘스라소니’라고 불리는 현상를 피해 가지 못했지만, 지금 한국은 다르다. 남한의 남성 평균키는 100년 전 조선 때 보다 15㎝가 더 큰 174.9cm이고, 여성은 20cm 더 큰 162.4cm라고 한다. 참고로 조선 시대의 키에 대한 정보는 서울대학 해부학 팀이 16세기부터 19세기 동안 살았던 썩지 않은 어른 116명의 대퇴골 길이를 기본으로 예측한 숫자이다.
한국인 ‘스라소니’는 없어진 것 같지만, 골다공증에 대한 예방 홍보는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