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영령을 국민의 이름으로 추모합니다’

새끼 고양이다. 몇십 년 전에 내가 근무하던 병원 근방에 있는 홈디포에서 구조했던 까만 고양이 ‘네로’처럼, 작고 새까맣다. 새끼고양이는 101 프리웨이 길갓에 너부러져 있었다. 주위에 피가 없고 몸체가 흐트러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차에 치인 것이 아니라, 달리는 차에서 내 던지어진 것 같았다. 언짢았다.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 말을 돌아가신 어머니가 들으셨다면, 어머니는 말씀하셨을 것이다. 사람들도 전쟁터에서 죽어가기도 하는데, 그런 일로 상심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그렇다. 엄마 말씀대로, 고양이 한 마리가 살생 되었다고 상심해서는 안 되겠지. 지금 대서양을 건너 6,400마일 떨어진 유럽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지 않은가?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닌 한국전에 대해 말씀을 하고 계시겠다. 6·25로 많은 아픔을 겪어 내시고, 크게 웃지도 울지도 않으시고 평생 말이 없으시던 어머니가 가신지 이미 오래되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6·25와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전쟁의 참상은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을 말해준다. 러시아는 1922년부터 1991년까지 70년 동안, 주변의 15개 국가를 점령하고 있던 슈퍼 파우어였다. 비록 10%의 땅덩어리가 쓸모없는 툰드라이고, 30년 전 15개국을 독립시킨 후에 영토가 줄었지만, 러시아는 아직도 세계에서 제일 크다. 아시아 동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캄차카반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쪽 유럽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무려 11시간의 시간대를 가진 나라이다. 그런 나라가, 2014년 크림반도 침공 이후, 올해 2월에 우크라이나 본토를 침범했다.

우크라이나의 남부, 아조프 바다 쪽을 완전 장악하고 싶어서 그렇다고 한다. 2014년에 크리미아반도는 자치공화국이 되었지만, 사실상 러시아가 통치하고 있다. 아조프 바다는 흑해로 연결되고, 전략상, 국제 물물 교환 상 중요한 곳이다. 고대 비잔틴 시대부터, 20세기에 걸쳐 오토만제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러시아가 이곳을 차지하려고 때때로 편을 달리 가르면서 싸웠다고 한다. 풍경이 수려하고 날씨 또한 좋아서 크리미아반도의 수도, 유파토리아(Eupatoria)는 러시아 제국의 짜(Tsar)가 휴양 차 머물곤 했던 곳이다.

크리미아전쟁이라면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현대 간호론의 기초를 깔았던 영국 여인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다. 그녀는 크리미아전쟁 때 터키에 머물면서 부상병을 간호했다. 전쟁이 있었던 1854년부터 1855년 동안 전사자, 부상자, 다른 이유로 사망한 세 그룹의 군인들을 도표(graph)로 만들어 표시하고 세상에 알렸다. 그 도표가 장미 모양이라서 ‘장미 도표’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 이후 통계학자라는 또 다른 명칭이 나이팅게일에게 붙여졌다.

70년 동안 러시아 속국으로 있다가 날개를 펴던 우크라이나가 당하고 있는 재침과 72년 전 있었던 6·25 한국전쟁이 자꾸 내 머릿속에서 겹쳐진다. 어쩌면 그것은 5월 마지막 월요일이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였고, 6월 6일은 모국의 현충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미국과 한국의 호국 영령을 기리는 기념일이 일주일 상관으로 지나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로스앤젤레스 국립묘지’가 있는데도, 묘지를 방문하지 않았다. 6·25 때 그 젊은이들은 한국이라는 알지도 못했을 터이다. 그런 나라에 가서 안타깝게 전사한 젊은이들에게 보속(補贖)하는 마음으로 갔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서울 현충원에 있는 큰오빠의 빈 무덤에는 봉사자들이 태극기라도 꽂았을까?

큰오빠는 육이오 전쟁 때 전사했다. 집안에는 그의 전사에 관한 문서가 없었다. 집안의 역사를 알고 있는 부모님들, 올케언니, 둘째 큰오빠는 이 세상에 없고, 나는 실상 그들이 생존했던 당시에는 그의 전사에 관한 내용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우울을 되씹고 살았던 부모님들의 침묵이, 늘 나를 무겁게 눌렀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6·25전쟁 참전 용사 초청 기념식이 엘에이에서도 있을 것이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 기념식에 초청된 살아남은 사람들, 그것도 엘에이에 사는 분들이 몇 분이나 될지 궁금했다. 전쟁 당시 20대이었으면 지금은 90대의 노인들일 것이다. 그분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그 바램과 함께, 나는 큰오빠 전사에 대한 기록이 찾고 싶어졌다.

전쟁기념관 정보 사이트에는 전사자에 대한 간단한 기록이 올려져 있었다. 좀 놀랐다. 3년 전 전쟁기념관을 방문했을 때에는 전사자의 소속 부대를 알아야만 동판에 새긴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오빠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이번에는 이름을 써넣으니까, 육군/제6사단 소속/중위/장교/6·25전쟁/군번 15348/생년월일 (빈칸)/출생지 서울/전사 일자 1950년 8월 21일/전사 장소 경북/연고자 (빈칸)/명비 위치 115-ㄴ-029라는 정보가 나왔다. 그가 속했던 부대와 그의 군번, 그리고 전사한 날짜…. 이 얼마나 귀중한 내용인가!

이 내용을 인쇄해 놓고 싶어서 프린트 앱을 눌렀더니 certificate가 컴퓨터 화면에 떴다. 사진이 들어갈 자리는 비어 있었다. 생년월일에 대한 기록이 없었는지, 이 역시 빈칸이었다. 아랫줄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호국 영령을 국민의 이름으로 추모합니다’라는 문구가 두 줄로 나뉘어서 쓰여있고, 제일 밑줄에는 빨갛고 큰 글씨로 ‘전쟁기념관’이라고 마감되어 있었다.

그의 짧았던 삶의 마지막을 한 페이지에 정리한 내용이다. 그는 육이오 전쟁에 출전한 후, 두 달도 되기 전에 전사했던 것이었다. 이제 나는 그의 기일(忌日)을 안다. 그를 위한 연미사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큰오빠는 제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전사했고, 나는 그 의미를 뒤로 한 채, 그저 그를 기억해 보려고 지금 애쓴다. 그런데 나는 거기서 그치지 말고, 위키백과가 전하는 16개국의 참전 군인들도 기억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오빠처럼 아내와 어린 자식들, 부모 형제가 있었을 것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참전했던 미국 용사들의 나이는 평균 17세에서 24세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들을 존경하고 기리는 뜻에서, 각 나라에서 파병되었던 젊은이들, 그리고 안타깝게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 그들에 대해서 알고 싶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숫자로 다가올 뿐이다.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고, 마음이 무겁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합쳐서 합산하기 전에, 일(1), 즉 하나라는 숫자를 들여다본다. 그 ‘하나’로 표시된 청년을 지금을 살고있는 우리가 알아볼 방법은 있는 것일까?

16개국 우호 국가에서, 총 1,719,597명의 군인이 투입되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한국 1,090,911명, 미국 480,000명, 영국 56,000명, 카나다 25,687명, 터기 14,936명, 오스트레일리아 8,407명, 필리핀 7,420명, 태국 6,426명, 네덜란드 5,322명, 콜롬비아 5,100명, 그리스왕국 4,992명, 뉴질랜드 3,794명, 에티오피아 3,518명, 벨기에 3,498명, 프랑스 3,421명, 남아프리카 826명, 룩셈부르크 83명이었다.

이들 중에 한국 군인 149,005명, 미국 군인 36,574명이 전사했다. 실종, 포로, 부상자를 합친 16개국 젊은이들을 합계하면 1백 5십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남긴 유족으로 아내와 한 명의 자식이었다고 치면, 총 3백만 명이 가장(家長) 없는 가정에서 아프고, 힘들게 살았다고 풀이할 수 있다. 또 부모까지 가족에 넣어서 계산해 보면 6백만 명이 된다. 이들의 고국은 북미, 남미,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오스트랄리아 여섯 개 대륙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 흩어져 있는 지구촌 곳곳에서 젊디젊은 미망인들이 어린아이들을 기르면서, 어떤 경우는 유복자를 낳고 기르면서, 힘든 세월을 보내었을 것이다. 그들이 가난하게 살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렇다. 마음이 아프고 우울해도 이젠 고만 접어야 하겠다. 큰오빠의 영이 쉬고 있었던 그가 떠났던 -후암동 집-을 오빠의 영이 아직 지구촌에서 떠돌고 있다면, 잊으라고 해야 하겠다. 그 집은 나의 집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곳을 아주 오래전에 떠나지 않았던가. 이제 큰 오빠와 한국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16개 나라의 젊은 영령들을 위해서, 슬프고 무거운 마음일랑 떨쳐내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미사를 신청해야 하겠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