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을 사다

드디어 미루었던 일을 했다. 숙제를 끝내고 나니 후련하다.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숙제는 우리 부부가 지낼 마지막 집을 사는 일이었다. 집을 사기로 마음을 먹고, 어느 동네에 살지, 어떤 크기로 살지 대충 의논하고, 직접 방문하여 보니 좋았다. 즉시 계약서에 서명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쁘기까지 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노력하면 대부분 해낼 수 있는 것이 또한 세상 일이다. 그러나 부모가 나에게 묻지 않고 나를 세상으로 데리고 나온 일, 세상과 하직하는 날짜를 조물주께서 나에게 의논하지 않고 정하시게 될 상황, 그런 일이 벌어진 다음, 영(靈)이 떠나버린 나의 몸을 내자신이 처리하고 떠날 수 없다는 불가피한 사건—이 세 가지는 이리저리 들여다보아도 불공평하다.

모든 사람은 내 의사와 관계없이 세상에 온다. 그래도 우리 모두는 열심히 살고, 그러려고 최선을 다한다. 간혹 피할 수 없는 불상사를 당하기도 한다. 내가 당할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다. 건강할 때, 정신이 있을 때, ‘사전 연명 의료 지향서(’Advanced Directive’)를 만들어 놓는 것은 강조가 필요 없을 만큼 중요하다.

예기치 않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고, 뇌출혈이나 뇌일혈로 기억상실증, 실어증이 올 수 있고, 때로는 치매에 걸릴 수도 있다. ‘사전 연명 의료 지향서(’Advanced Directive’)가 있으면 배우자나 자녀들 뿐 아니라 의료진이 큰 부담 없이, 지체하지 않고 지향서에 명시한 대로 병상에서의 나날을 꾸려줄 수 있다.

만약 내가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치자. 차 사고로 또는 4기 뇌암에 걸려서 불치 상태일 경우 몇 달 동안 정도라도 살 확률이 낮다면, 과연 나는 코에 낀 고무 호수를 통해 배달되는 음식으로 연명하는 것을 원할 것인가? 답은 물론 갖가지이다. 많은 경우 가족들의 의견 또한 다르다. 100% 동의안을 받아내기 어렵다. 장기이식 기부자로 등록된 것을 가족들이 모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사전 연명 의료 지향서’가 의료진의 치료 방침을 인도해 준다.

‘사전 연명 의료 지향서’는 단어의 선택이 조금씩 달라 다른 이름 즉 ‘사전 지시서’, ‘사망선택 유언장’, ‘건강관리 지시서’, ‘항구적 대리 위임장’ 등으로도 불리는데, 근본적인 뜻은 같다. 변호사에게 위임해서 종이로 작성하여 의료 차트와 유언장에 함께 철해 놓는 것이 상례이다. 또 가족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놓아 두는 것을 추천한다.

사람들의 건강상태는 변하기 때문에, 적어도 매 10년마다, 아니면 건강상태가 변하거나, 가족 상황이 변할 때 새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 상황의 변화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혼이나 가족 멤버의 사망한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참고로 변호사에게 의뢰하지 않고 온라인 서류를 작성해서 공증받아 보관해도 된다. 한국어로 된 서류도 온라인에 있다.

내가 나의 마지막 누울 곳을 마련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끈 것과 비슷하게, 미국 성인 37% 만이 ‘사전 연명 의료 지향서’를 준비해 놓았고( 2000년-2015년 사이 796,000명 설문 조사), 55%가 유언장 없이 죽는다고 한다 (허핑턴 포스트 2016 보고).

사망 후, 유족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장례절차이다. 장지(葬地)가 준비되지 않았을 경우, 유족들은 서둘러 마땅한 장소를 찾아야 하고, 목돈을 지불 해야 하는 등, 세부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목록이 적지 않다.

숙제로 남아 있던 내가 영원히 쉴 집, 나의 새집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엘에이에 있다. 아이들이 얼마나 자주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가깝다. 겨우 길이 12인치에 폭 24인치의 작은 납골당이다. 그래도 나의 쉴 집을 산 것은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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