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조(內助), 외조(外助), 협조(協助)

‘너 이렇게 나돌아다녀도, 네 남편이 뭐라고 하지 않아?’

‘무슨 뜻이야?’

‘너~~가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붙박이장이 아닙니다요~~!’

질문하였던 그 친구와 나는 같은 중, 고교를 6년 동안, 또 전문학과(college)는 다르지만 같은 대학(university)을 다녔다. 남가주에서 동문회를 통한 동아리 활동 중에 다시 만나, 왕래하는 친구이다. 동아리 활동은 고교 동문회원들이 취미 생활을 위해 만든 것으로, 음악, 미술, 사진, 문학 등이 있다.

이렇듯, 모국을 떠나 살지만, 한국인들은 외로움을 뒤로하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병행하면서 특수한 이민자의 삶을 반영하는 예술, 문화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같다. 곳곳에 세워진 한인회, 한글학교, 한국어로 만들어진 신문, 한국어로 방영되는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생각해 본다. 정치계, 교육계에도 입성한 분들이 많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동아리 활동들은 이민자라는 커다란 공통분모가 바쳐주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무척 어려워하면서도, 하고 싶어 하는 글을 쓰는 것과 합창반에서 노래하는 것이 그 예이다.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음에도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합창단원이 되지 못하다가, 큰마음을 먹고, 처음으로 출석한 날, 나를 반겨주던 친구는 한마디 꼭, 짚어서 말했다. 그리고서 친구는, 덧붙여, 한마디를 더 하였다.

‘네 남편의 외조가 크다!’

외조라니!

실상, ‘외조’와 ‘내조’의 개념은 이 미국 사회에는 없다. 그러나 한국 출신 이민자들의 삶은 한국문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져가고 있으니까, 이 개념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남아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라는 사이트에, 외조, 내조라는 단어를 남자, 여자라는 틀에 넣어서 올렸던 어떤 글에 대한 견해 내용이 생각난다. 현대 관념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내용/질문을 올린 어느 넷티즌에게 ‘온라인 가나다’는 다음과 같은 답글을 썼다. “예부터 바깥, 외(外)를 포함하는 단어는 보통 남편의 역할이나 위치를, 안, 내(內)를 포함하는 단어는 보통 아내의 역할이나 위치 등을 의미해 왔습니다. 과거가 묻어 있는 단어들로 볼 수 있지만, 이러한 단어를 해당 의미로 사용하고 있어서, 그 쓰임을 인정하여 사전에 담은 것입니다”. 아직도 쓰는 단어이지만, 내용은 변해왔으니 알아서 하라는 소리 같다.

그렇다. 그 표현대로라면, ‘외(外)’란 밖이라는 뜻으로, 남편의 역할, 위치를 뜻하면서 남편이 밖에서 안사람인 아내를 돕는다는 뜻으로, 여성의 사회활동은 이례적이라고 단정하고, 여성의 정체성이란 ‘집 안’으로 국한하는 시대적, 역사적 표현이다.

결혼문화가 급변하고 있다는 기사를 2018년에 매일경제 최경선 기자가 쓴 바 있다. 요즘 장가가거나 시집가는 신혼부부는 드물고, 결혼하자마자 독립해서 따로 사는 게 대세라고 했다. 한국이 그런데, 이곳 미국에 사는 디아스포라들에게는 내조, 외조란 더더욱 맞지 않는 개념이고 표현이겠다. 자녀 교육상 조심해서 사용하는 것도 현명할 것이다.

카말라 헤리스(Kamala Harris)가 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그리고 케탄지 브라운 잭슨(Ketanj Brown Jackson)이 대법관으로 인준되었을 때, 미국 미디어는 남편들의 내조가 있었다는 말을 쓰지 않았다. 시대적, 역사적 요소들을 강조하고, 문화적인 부부들의 이야기를 올렸지만, 내조, 외조로 구분하지는 않았다. 이 두 여인의 역사적인 성공을 축하하고, 함께하는 남편들은 아내의 능력을 이미 젊었을 때부터 알았었고, 두 남자는 그들이 응원한 아내의 출세를 기뻐하고 자랑했다. 멋있게 보였다.

이 두 여성의 출세가 단순한 본인들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남편들의 응원뿐 아니라, 그들이 성장할 때 그들이 보았던 부모들의 단련된 삶이었다. 그들은 부모들이 다져온 삶의 기반 위에서 성실하게 그들의 길을 갔던 것 같다. 이민자 일세인 부통령의 부모들과 노예의 5대 후손이었던 대법관의 아버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식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식들과 함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던 사람들이었다.

잭슨 대법관이 했던 많은 명언 중에 마음에 와닿는 문구가 있다. ‘인종 차별이(역자 주: 흑인들을 백인과 섞이지 못하게) 우리(역자 주: 흑인들)를 분리했던 때부터, 흑인 여성이 대법관이 될 때까지는 한 세대밖에 걸리지 않았어요…!’라는 말이다. 이 말은 미국은 이민자와 노예 조상들이 쌓은 기반 위에서 쉼 없는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던 후예들이 있었고, 과감한 개혁에 앞장선 선구자가 있었다는 뜻이 함축된 것일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2009년 이후, 한국의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대학 진학률이 높았지만, 여전히 전문분야에서는 여성의 분포가 뒤진다. 변호사의 약 19%, 의사의 24%, 교수의 23%가 여성이다. 2016년 한국 통계국(KOSIS Korean Statistical Information Service)은 일할 수 있는 연령대 남성의 74.7%, 여성의 52.7% 가 직업전선에 있다고 보고했다. 20% 이상의 격차를 보여준다.

내조, 외조라는 단어를 배척하는 풋풋한 젊은이들이 있는 나라, 여왕이 있었던 나라, 미국은 하지 못했던 여성 대통령을 선출했던 나라가 나의 모국 한국이다. 딸들과 며느리의 사회활동과 사회 진출을 위해서 사위, 아들, 그리고 아버지, 엄마가 함께 노력한다면, 시간이 걸려도 여성이 차지하는 전문직의 분포도도 점차 시정되고 보수될 것으로 믿는다.

나의 삶을 뒤돌아본다. 긴 세월을 남편도 나도 다중작업하며 살았다. 우리는 그렇게 살면서, 서로를 응원해주는 협조자(協助者)이었다.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동조(同調)가 아닌 협조를 하면서 살아왔다. 동조란 남의 주장에 자기의 의견을 일치시키거나 보조를 맞춘다는 뜻으로, 동조의 조(調)는 협조의 조(助)와 한문 글자가 다르듯이, 그 뜻을 달리한다. 협조(協助)에 쓰이는 조(助)는 ‘보조적인’ 또는 ‘버금간다.’라는 뜻이다.

참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새삼스레, 다시 생각해 본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협조하며 장점을 살려주면서 함께 걸을 때, 세상은 그런데로, 그럴듯하게, 살 가치가 있게 변해준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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