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12 월달은 엄마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셨던 달이다. 엄마 떠나신 후에, 나의 충견도 겨울에 나를 떠났다. 뒤돌아보니, 성당 마당에서 새끼들과 함께 구조되었던 어미 고양이, 어미라는 뜻에서 ‘메미’라 이름 붙였던 녀석과 까만색이 흰색과 함께 만든 패턴이 사납게 보여서, 마치 군도를 찬 일본 군인처럼 생겼다고 ‘사무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던 녀석도 겨울에 보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성당마당에서 구조하고 입양했던 ‘땅콩’과 ‘니모’도 추수감사절을 전후해서 떠났다.

‘땅콩’은 구조 당시 가장 작았던 녀석이었다. 자라면서 제일 등치가 컸고, 양순했다. ‘니모’는 가장 늦게, 손신부님과 함께 구조했다. 이미 성년기에 선 성당 동네에 사는 길고양이들이, 등에 업어 키우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던 ‘니모’이다. 병원 간호사가 입양했다가, 내가 다시 데려왔던, 기구한 운명의 ‘니모’였다.

그래서인지, 겨울철에 들어서면 나날은 엄숙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떠들지 말고, 함부로 의견을 내지도 말고, 어딘가 숨어 있을 것 같은, 어쩌면, 맑을 수도 있는 나의 사고(思考)를 찾으면서 지내려 한다. 그것들이 진정한 나의 사고(私考)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엄마는 오래 앓지 않고 세상을 뜨셨다.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가 완치될 수 없는 병을 앓고 계심을 알았다. 확진을 받기 위해서 환자들이 통상적으로 거치는 힘든 테스트는 엄마에게 고통만 더할 뿐, 의미가 없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나의 많은 환자가 그랬듯이, 엄마는 누가 알려드리지도 않았는데, 당신 생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아셨다. 어머니의 얼굴은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 없었다. 어머니에게는 기쁨이나, 즐거움, 행복, 나아가서는 희망이라는 이름의 새싹이 없었을 게다. 아니, 어머니의 표정은 우울을 스며내었던 것이었을까? 우울을 감추시려 했던 것이었을까?

나는 엄마에게 힘든 말을 꺼내어야 했던, 그 겨울날 오후를 잊을 수 없다. 엘에이 겨울날 하늘은 파랬고, 햇빛은 찬란하게 뒷마당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침상은 빛을 거부하고 있었다.

우리 형제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시라고 부탁드릴 때, 나는 울지 않았다. 엄마는 당신의 말씀에 아무런 색깔도 칠하지 않으신 체, 슬퍼하지 말고, 그리워하지도 말고, ‘그냥’ 매일 매일을 잘 살라고 하셨다. 마치, 떠내려가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출렁이는 냇물에 한없이 부대껴 둥글어진 창백한 돌멩이 같았다.

나는 오늘도 겨울날을 ‘그냥’, 잘 살아내야 할 것이다. 겨울비가 내리고 있는 오늘을 ‘그냥’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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