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동물 장송곡

어둑 어둑

겨울 저녁

‘고통의 신비’

묵주기도가

어울리는 시간

앞 마당이 편안해.

동, 서, 남, 북

하늘이

다~ 보인다.

찾을 수 있을까?

Frisky는 뒷 마당에 있었지

혼자 있었지

미안해

미안해

너의 눈은

움직이는 식구들을

따라 잡곤 했어

뒷 마당,

네 자리에 배를 깔고

턱을 고이고

그렇게 앉아서

나는 너에게

마지막 숨을 참아 달라 부탁했다

미안해

미안해

그러고도 한 십 년,

엊그제

겨울 달에

땅콩과 니모가

떠났다

땅콩과 니모는

저~ 한 쪽 복도를 지키고 있었다

이런 저녁에

미안해

미안해

너희들과 frisky 사이에

매미

네로

나비가 있다

그리움이

흐르고 있다

한국의 필립 공(公)들에게

영국 여왕 엘리사벳 2세가 서거한 지 거의 6개월이 되어간다. 여왕은 71년이라는 긴 세월을 공인(公人)으로 보냈던 삶을 마쳤다. 정치적 결정권은 없었지만 한 나라 수장의 위치를 지키고, 세계의 관심과 우대, 그리고 존중을 받으면서 살았던 분이다. 아마 영국인들은 여왕을 사랑했을 것이다. 시대적, 그리고 세대(世代)적인 변화를 지구촌 일반 시민들처럼 겪었을 것으로 안다. 여왕의 친족이 전사했다는 뉴스는 못 들었지만, 국제 정세에 맞추어, 영국 지배 영역이 축소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예를 들면, 대영제국 (British Empire)에 속했던 56개 나라를 차츰차츰 독립시켜야 했고, 이들과 연방(Commonwealth) 관계를 맺어야 했던 결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배영역이 전 세계 곳곳에 있어서, 근대(近代)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대영제국의 위치를 여왕 시대에, 포기해야 했다. 참고로, 미국은 현대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보는 경향이다.

엘리사벳 여왕 옆에는 항상 부군인 필립 공(公)이 있었다. 이 둘은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들로, 친척간이다. 그리스에서 태어난 필립 공(公)은 그리스, 덴막, 프러시아,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족과 피가 섞인 사람이다. 젊었을 때의 여왕 부부는 젊음의 티 없는 싱그러운 모습으로 세상을 열광하게 했다. 신경질적이거나, 권위의식을 갖고 군림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맑고, 간사함이나 비겁함이 보이지 않았다. 단정하고, 선하고, 가식이 없고, 진실하였다. 10대 공주 시절의 여왕, 결혼식 때의 여왕, 왕관의 쓰임을 받던 25세의 여왕을 세계가 환호하고 사랑하였다. 그녀가 여왕의 자리를 잘 지키도록, 영국이라는 나라는 그녀를 보호하였다고나 할까?

여왕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필립 공(公)은 참 대단해. 앞장설 수는 없었던 입장이라 해도, 여왕인 부인 옆에서 함께 하는 모습이, 뒷전으로 밀려 보이는 것 같지않고, 멋있어!’ 라고 말하자, 남편은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르키면서, ‘아키(aqui)!’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아키(aqui)란 스페인 말로 ‘여기’ ‘이곳’, ‘저’라는 뜻이다. 나 자신을 가르키면서 말한다면 ‘나’라는 의미도 있다. 남편은 ‘나 같은 사람’이라는 뜻에서 그런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세상엔 훌륭한 필립 공(公)들이 많다. 외부 일을 담당하는 남편, 집안 살림을 하는 아내라는 오래된 가정의 프래임과 고정관념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었다. 그 변화가 급작스럽지 않고, 느리게 일어났다. 지금 한국과 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 민족 디아스포라 가정들에서도 역할이 바뀌고 있고, 이미 바뀐 가정도 많을 것이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역할이 바뀌었다기보다는 경계가 없어지고, 부부나 동거인들이 가사를 함께 해결하는 모습이다.

나는 여자 의과대학 졸업생이다. 의예과 때, ‘기독교 문학’이라는 과목이 필수이었다. 목사님이 담당하는 과목이었다. 중장년 정도 연령대의 목사님이 강의를 맡았다. 첫 강의가 있던 날, 그 분은 여자들이 집안 살림, 남편 보조, 육아 등을 뒤로 하고, 의사의 길을 간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로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어떤 그가 알고 있는 여의사는 새벽에 깨어 모든 가사를 준비, 해결한다는 예를 들었다. 또 한국 최초의 여자 변호사는 퇴근길에, 버스에서 내리기 무섭게, 입었던 외출복을 벗는 준비를 하면서, 귀가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부엌으로 향한다는 것이었다. 반세기 전의 일이다.

지금은 어떤가? 한국과 세계의 노동시장은 꾸준히 변해오고 있다. 미국 의사 협의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는 2018년에는 의대생 지망인이 남성, 여성 분포가 동등했었던 것과 달리, 2019~2020년에는 53.5%가 여성이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실제 전선에서 의료활동 중인 여성의 분포는 36.3%에 지나지 않는다. 의과대학 입학부터, 의료인으로 활동 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 보면, 이해가 된다.

한국에는 전업주부 남성이 2023년 올해, 21만 명 이상이라고 국가 통계국(KOSIS)이 보도했다. 육아, 가정 살림의 부담이 큰 경우, 남편과 아내 둘 중, 수입이 적은 쪽이 직장을 내려놓고, 이 변화는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이다. 현대를 사는 한국인 필립 공(公)들이 많아졌다. 한국의 필립 공(公)들 화이팅!!!

내 아버지 세대에는 필립 공(公)들보다, 신사임당들이 있었다. 딴 세상에 가 계신 내 아버지는 여러 모자를 바꿔 써 가면서 살고 있는 나를 보고 무어라 하실지, 궁금하다.

시(詩):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어…

슬퍼야 마땅하다면

이별이 뭍힌 땅에

채울 빛이 엷어서야

어쩔 수 없어…

아파야 마땅하다면

쏘아 올린 이별은

끝없이 열린 하늘 돌고 또 돌아서야

어쩔 수 없어…

막아야 마땅하다면

여든 하고도 다섯 해

멈추어 주지 않는 언니 때문인 거야

어쩔 수 없어…

태양은 노을이 안아주지 못해

억만리, 억겁에

첩첩이 쌓인 사연 뿐

어쩔 수 없어…

오늘도 오고, 내일 가버릴

나와 너

그리고, 또다시 올 너와 나

찻길 동물 사고사와 산사자 P-22

Jean 의 아기 사자그림. 11살 때 그렸다. Idaho mountain lion research 참여함.

평생 GPS 목걸이가 달려있었다.

‘이젠 P-22 이야기는 그만하시지!’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2022년 12월부터, 나는 P-22에 관한 기사를 접할 때마다 그 내용을 남편에게 알린 것 같다. 산사자(山獅子) P-22한테 자꾸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P-22는 엘에이 도심지에서 살았던 마운틴 라이언(mountain lion)의 이름이다. 작년 12월에 안락사를 받을 때까지, 약 12년을 싼타모니까 산(山) 동쪽 끄트마리에 있는 그리피스 팍크(Griffith Park)를 거처로 삼고 살았다. 싼타모니까 산은 서쪽 태평양에서 시작하여, 약 40마일 가량 동쪽으로 펼쳐져 있는 산맥이다. 서쪽 부분의 산은 넓고, 산림이 풍성하다. 서쪽에서 태어난 것으로 믿어지는 P-22가 남북으로 연통되는 405 프리웨이의 차선 10개를 건너고, 세계에서 가장 번잡하다고 알려진 북서-남동쪽 방향으로 통하는 101 고속도로를 가로질러서 그리피스 파크에 어떻게 도달했는지, 왜 그곳을 떠나지 않고 살았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스라소니, 사자, 호랑이, 표범, 산사자는 고양이 과(科)에 속하는 동물들이다. P-22라는 이름은 2002년 국립 공원 서비스(National Park Service)가 산사자 생태 연구를 시작하면서 퓨마(puma)에서 첫 글자 ‘P’를 가져온 것이다. ‘P’에 연달아 붙여진 숫자는 포획된 순서대로 붙인 것으로, 001에서 시작했고, 2021년 11월에 100번째의 ‘P’에 도달했다. 그러니까 녀석은 22번째로 잡힌 산사자였다. 첫 번째인 P-001은 P-22의 아버지라고 한다.

녀석이 차에 치이었다는 제보가 들어 온 것은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 후이었다고 한다. 차에 치인 후, 근처에 있는 로스 필리스 지역의 어느 가정집 뒷마당에 누워서 이틀을 앓았는데, 집주인은 그 사실이 보도될 때까지 몰랐다고 한다. 뒤뜰에 자주 나가지 않는 가정이었나보다. 제보를 받은 후에, 녀석의 GPS 목걸이를 통해서, 거처를 찾았고, 녀석은 샌디에고 동물원으로 이동되어 정밀 검사를 받았다. 찻길 사고로 안구 손상, 두개골 분열, 횡격막 파열이 있었고, 신장기능 저하 같은 지병도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락사가 현명한 조치라 판단했다고 한다.

P-22의 찻길 사고와 녀석의 안락사 소식은 안젤리노 뿐 아니라, 글로벌 시민들을 애도하게 했다. 10년 전, 할리우드 싸인을 뒤로 한 녀석의 사진이 네셔널지오그라피 잡지에 실리면서, 도심지에도 야생동물이 함께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알려졌다. 사진은 스티브 윈터스 사진 기자가 6개의 카메라를 장치해 놓고, 15개월 동안 기다렸다가 포착한 사진이었다.

P-22의 존재는 도심지에 사는 야생동물을 보호하자는 사회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작년 4월에 101 고속도로 구간 중에 아고라 힐스 지역에 ‘야생동물 건널목(Wildlife Crossing)’을 만들었다. 또 LAUSD 학군에서는 ‘P-22 Day’ 인 10월 22일에 야생동물 관련 클래스를 매년 하기로 했다. 아담 쉬프 캘리포니아 대표 국회의원은 P-22는 영원한 캘리포니안임을 뜻하는 의미에서 우표제작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어제는 P-22 와 P-22로 인해 축복 받은 우리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행사도 있었다.

P-22의 때로는 위태롭고 험난했었을 도시에서의 삶을 상상해 본다. 넓지 않은 지역에 갇히다시피 고립되어서 살았다. 다른 산사자 친구도, 애인도 없었다. 인위적인 죽음은 생명의 윤리를 재고(再考)하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거미줄처럼 종횡하는 수많은 도로에서 질주하는 자동차가 우선적인 캘리포니아에는 로드킬의 참사가 많다. 2022년 3월부터, 9마리의 산사자가 차에 치여 죽었다는 통계이다.

이번 타임(TIME) 지(紙)의 ‘The View’ 색션에는 ‘윤리: 인간이 동물에게 진 빚’이라는 제목으로 P-22뿐만 아니라, 인간이 빼앗은 다른 동물들의 권리에 대해서 포괄적인 리뷰가 실렸다. 또 LA Times를 위시한 미디어는 P-22의 이야기를 선두로, 인간이 침범한 동물 세계, 그로인한 막대한 생태학의 변화, 멸종위기, 앞으로 우리가 보강하고 개선해야 할 지침을 제기(提起)한다. 고맙다.

그래도 종결되지 않고 있는 P-22의 삶이다. 녀석의 죽은 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실험용으로 쓰자는 과학자들, 박물관에 박제해서 전시하자는 의견, 온전히 그대로 땅에 묻어 자연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의견 대립이다. P-22가 살아있는 동안, GPS가 달린 목걸이를 7번이나 교체하면서, 충분한 과학적 자료는 얻었을 것 같다. 나는 아메리칸 인디언 편이다. P-22가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