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데미안은 누구인가?

남극을 다녀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책장 어딘가에 꽂혀있을 법한 헤르만 헤세가 쓴 책, ‘데미안’을 찾는 것이었다. 남극에서 보았던 알바트로스(한자 이름: 信天翁)라는 새 때문이었다. 이 책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십 대로 들어서면서 어렸을 때 그에게 주어졌던 밝고, 정돈되고, 규칙적이고, 도덕적인 환경과 관념에서 벗어나, 반대되는 삶의 이면을 스스로 경험하게 되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헤세의 자서전적 소설이다. 핵심이 되는 친구 데미안, 알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새’, 그 ‘새’가 알바트로스라고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이 새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우선 독수리, 참새, 까지, 까마귀, 벌새 정도밖에 모르던 나의 무식을 고백해야 한다. 온 세상이 코비드 바이러스 악성 전염으로 앓고 있었고, 따라서 여정도 쉽지 않았지만, 알바트로스라는 새를 볼 수 있고, 알게 된 것은 더 없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남극 서식 동물인 몇 종류의 팽귄을 보았고, 몰랐던 자연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도 빼어 놓을 수는 없겠다.

남극 대륙(Antarctica)은 여행객을 태운 비행기나 자동차가 갈 수 없다. 바닷바람과 파도를 핸들 할 수 있는 큰 배로 가야 한다. 크루즈 배는 보통 오스트레일리아나 아르헨티나, 칠레에서 출발한다. 우리 부부는 비행기로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마이애미를 경유해서, 아르헨티나의 제일 남단 도시인 우수아이아(Ushuaia)에서 크루즈에 승선했다.

‘남쪽 지구 대들보(South Pole)’를 중심으로 형성된 막대한 얼음 덩어리인 남극 대륙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다. 주인이 없고, 군대가 없는 비무장지대(DMZ)이다. 기온은 화씨로 영하 15도에서 영하 80도에 이르고 4월부터 8월까지는 해를 볼 수 없다. 내가 갔던 3월은 이상기후였는지 온화한 한국의 겨울 날씨처럼 섭씨 0도를 오르내렸다. 일 년 중 이때쯤에 바다 얼음이 어느 정도 녹아서 깨어져서, 큰 크루즈 배로 조각난 얼음을 헤치면서 항해할 수 있다. 크루즈 배는 얼음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정박하고, 해변에 갈 때는 조디악 고무 배를 이용한다.

지구의 ‘일곱번 째 대륙(大陸)’인 남극 대륙은 바다에 떠있는 거대한 얼음산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워낙 거대해서, 바다에 떠서 머무는 얼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해상에 떠 있는 부분은 빙산의 일부, 빙판 또는 얇은 어름 쉬트였고, 수면 아래에 빙산(iceberg)의 큰 몸이 잠겨있었다. 일 년 전 얼음산에서 떨어져 나온 A-76이라고 이름 붙여진 빙산은 자그마치 맨해튼의 80배 크기로, 길이 105 마일에 너비가 15.5 마일이었다고 한다. (참고: 빙산에 이름을 붙이는데, 작년 이전까지 가장 컸던 빙산의 이름은 B-15이었다). 빙산의 색깔은 소금 농도에 따라 흰색, 엷은 하늘색, 진한 하늘색이었다.

이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단기간 머무는 연구 과학자들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에 의해서 길든 개, 소, 말, 고양이 같은 동물들은 없고 팽귄, 물개, 바다사자, 이빨 고래, 바닷새들이 살고 있다. 여러 종류의 새 중에, 내가 데미안이 스케치하던 ‘새’라고 착각했던 알바트로스는 여러 면에서 특이한 새였다. 편 날개 길이(익폭)는 평균 11피트로, 세상에서 제일 크고, 대서양만 빼고 모든 대양(大洋) 위를 나르고, 창공 필요한 높이에 다다르면, 에너지 소비를 하지 않고 떠 있으며, 날개를 펄럭이지 않고 여러 시간 동안 나를 수 있다고 한다. 남극해를 일 년에 세 바퀴 돌고(75,000마일), 평균수명이 50년 이상이며, 일부일처의 삶을 산다는 이렇게 특이한 새가 멸종 위기에 있다고 하니, 염려되고 슬프다.

알바트로스 새를 데미안 책에서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결국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다시 읽으니 좋았다. 무엇이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이번에 느낀 헤세는 많이 평범하고, 또 많이 비범한 인성의 소유자였다는 점이었다. 우리 모두가 겪는 외로움, 공포, 열등감과 이를 잊기 위해 애쓰는 우리들의 어설픈 허세나 회피 과정을 정신학자처럼 잘 다루고, 표현했다.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에 입학했다가 퇴교했던 헤세는, 그의 신이 조물주이었음을 부인하는 것까지도 매끄럽게 잘 표현했다.

알껍데기를 깨고, 세상으로 나오는 새의 모습은 대문 앞쪽, 길을 접한 곳에 있는 현관 입구, 여기에 세워진 돌로 된 아치, 아치 중간 지점 바로 윗쪽 벽에 붙어있는 오래된 문장(紋章)에 조각되어 있었고, 이는 덧칠한 페인트에 가려서 형태가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바로 이 새를 나는 찾아내야 했다. 그 새는 알바트로스가 아닌, 매(sparrow hawk)였다. 이론적으로도 헤세가 살았던 유럽, 대서양으로 알바트로스가 날아간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이, 문장(紋章)의 새, 데미안의 의식과 영(靈)을 뜻하는 새가 알바트로스가 아닌 매라는 것을 반증 했다.

다시 읽은 데미안 책은 삼 십 육 년 전에 2불 95전에 값이 매겨진 반탐 책(Bantam Book) 회사가 출판한 것으로 종이는 누렇게 변했고, 책 커버는 너덜너덜하다. 지금 다시 들여다보니, 영역본 33판이었다. 토마스 만이 1947년 4월에 쓴 소개문으로 영역본은 시작된다. 큰아이가 제일 앞장 빈칸에 나의 이름 Monica C. Ryoo 라고 첫 줄에, 그리고 6/86이라고 그 밑줄에 써 놓았다. 딸은 그 때 11살이었을 게다. 멋 부려서 쓴 딸의 글씨체가 좀 낯설다. 지금 40대 중반을 넘어선 그 애는 멋 부린 글씨를 쓰지 않는다. 그 애의 글씨는 아주 작고, 버러지가 기어가는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바빠서, 성격이 소심하게 바뀌어서, 완벽주의자가 되어서 글씨체가 변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위의 모든 것’ 아니면, ‘위의 아무것도 아님’이 정답일까?

딸의 사춘기, 청춘기가 데미안과 싱클레어, 지나간 전(前) 세대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때로는 우울하고, 외롭고 그래서 혼란스럽고, 아프고,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요구되는 행복이라는 방안에서 창살 틈으로 빠져나가 버린 희망의 빛을 되찾으려고 방황했을까. 방황의 광야는 어떠했을까. 희망의 빛은 방에서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광야를 지나 되돌아 왔을 때, 알게 되었기를 바란다.

남극을 떠나 쉬지 않고 지구를 돌다가, 다시 남극으로 돌아가는 알바트로스가 되지 않아도 된다. 매서운 눈으로 세상을 간과하는 매가 아니어도 된다. 위험이 주위를 둘러쌀 때, 악이 무섭게 달려들 때, 우리는 친구를 부르면 된다. 우리는 우리 속 깊은 곳에 친구가 함께함을 알게 될 것이다. 딸과 우리들의 데미안은 누구인가?

늙어가며 작아지고 있는 우리들

언니를 반년 만에 만났다. 십 년 손위인 언니는 미국 밖에서 일 년 중, 몇 달을 지낸다. 언니가 갑자기 작아 보였다.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언니는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컸다. 형제 중에 키가 제일 작았던 나는 가끔 ‘스라소니’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 언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언니가 늘 나를 내려다보곤 했는데, 이번에는 언니와 내가 대등한 입장에서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스라소니’라는 별명은 식구들이 무례하게 나를 비하해서 불렀던 표현이었다. 이 말은 평안도 사투리로, ‘못난 호랑이 새끼’를 뜻한다. ‘스라소니’란 중형 고양잇과에 속한 포유동물로 중앙 유럽, 동아시아에 살고 있다. 학명으로는 링스(Lynx)이다.

부모님들이 평안도 출신이어서, 언어, 음식을 포함한 생활 문화가 평안도 식이었다. 평안도 식이란 이 경우 직설적이고 꾸밈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키 작고 못 생기고, 암팡지다고 나를 그리 불렀을 것이지만, 사실 평안도 사람들은 일찍 남녀평등의 교육을 실천하던 장점도 있었다. 서양문화가 중국에서 평안도를 거쳐 들어왔기에 일찍 이를 받아들이셨던 분들이었다. 딸들도 자신의 의견을 편히, 확실히 하도록 가르치셨다.

나를 ‘스라소니’라고 놀리었던 언니가 ‘스라소니’만큼 키가 줄었다. 나는 언니가 칼슘과 비타민 D를 먹는지, 운동은 하는지 궁금했다. 언니는 골다공증으로 키가 줄고 허리가 굽은 것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오고 있었다. 골다공증은 뼈가 부러지거나, 허리가 굽거나, 허리가 아프게 될 때까지 인식하지 못하는 병이다. 그래서 의료계에서는 ‘silent disease’ 즉 ‘드러나지 않는 병’이라고 부른다.

코비드가 지난 2년 동안 세계적으로 약 4억 7천만 명이라는 막대한 숫자의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골다공증도 이와 다를 바 없이 흔하다. 세계 건강 기구(WHO)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50세 이상 여성의 21%, 남성의 6%가 이 ‘드러나지 않는 병’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세계 평균 보다 많아, 여성의 35.5%, 남성의 7.5%가 골다공증을 갖고 있다고한다.

골다공증은 골절의 전조이다. 세계적으로 골다골증이 있는 5억 명 중, 어느 해에는 8백 9십만 명이 골절되어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것은 한번 골절상을 겪은 사람들이 일 년 이내에 약 6.6%가, 2 년 내에 12%가, 4 년 내에 20.9%가 또 뼈가 부러지는 불상사를 겪는다. 흔히 골절되는 부위는 엉덩뼈, 등뼈 그리고 손목뼈이다.

골다공증에 의한 골절로 겪는 고통은 심하고, 수술 후 재활에도 시간이 무척 걸리고 힘들뿐 아니라 질적인 삶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뿐이랴. 치료와 재활에 들어가는 재정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좀 오래된 통계(2008년~2013년 동안)이지만 매디캐어는 골다공증으로 인한 골절 치료에 환자 한 사람당 약 4만 5천 불을 지출했다고 보고했다.

골다공증은 칼슘과 비다민 D 섭취, 활동적인 생활습관, 과음이나 흡연을 피해 주면 예방이 가능하다. 고질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복용해야 한다거나, 소장의 흡수기능이 저하된 경우, 가족력이 있을 경우, 체중이 평균치에 못 미치게 마른 사람들, 백인 여성, 70세 이상의 남자들도 위험 그룹에 속한다.

골다공증 예방에 앞장선 메디컬 그룹으로 카이저 병원이 모범 케이스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그룹이 발표한 논문을 간추려 정리해 보면 주치의는 예외 없이 50세 이상 환자들에게 골밀도(bone density) 테스트를 받도록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치료 또는 예방 프로그램에 보낸다. 치료는 주사로 하는 경우도 있다. 골다공증의 예방은 획기적인 예방 의학의 성공적인 사례로 보인다.

나는 ‘스라소니’라고 불리는 현상를 피해 가지 못했지만, 지금 한국은 다르다. 남한의 남성 평균키는 100년 전 조선 때 보다 15㎝가 더 큰 174.9cm이고, 여성은 20cm 더 큰 162.4cm라고 한다. 참고로 조선 시대의 키에 대한 정보는 서울대학 해부학 팀이 16세기부터 19세기 동안 살았던 썩지 않은 어른 116명의 대퇴골 길이를 기본으로 예측한 숫자이다.

한국인 ‘스라소니’는 없어진 것 같지만, 골다공증에 대한 예방 홍보는 절실해 보인다.

수저계급론과 우크라이나

코비드 19사태는 끝날 듯, 끝날 듯하면서도 지속 되고 있다. 될 수 있으면 외출을 금하다 보니, 나날이 새로운 양상으로 틀을 잡고 있다. 평소에는 안 하던 체조도 하고, TV를 보거나, 유튜브를 통해서 요리하는 법을 보고, 때로는 용기를 내어서, 조리 실험도 해 본다.

TV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젠 넷플릭스 고객이 되었다. 한국 드라마에 맛 들이고 있다. 아름다운 시골 경치, 두바이를 능가하는 화려한 서울의 하이라이즈들, 서울의 야경 등에 감탄한다. 다인종 가족과 성 소수자를 포용하는 종류의 드라마 내용은 참신해 보인다.

그런데, 가끔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는 외국어, 한국어와 영어를 합친 신조어들이 TV와 신문에 등장하곤 한다. 때로는 합성 후 몇 글자를 생략한 예도 있다.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고 자꾸 한국말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해서 안타깝다. 내 노파심만은 아닐 것이다.

생소하기도 하고, 자주 쓰이는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 이 말은 프랑스 말인데,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채 한국에서, 그리고 영어로 번역되지 않은 채 영어권 나라인 미국에서 자연스레 쓰이고 있다. 프랑스가 유럽에서 오랫동안 패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말과 프랑스 문화가 영국의 상류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이 단어도 그냥 쓰이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원래대로 살아 남아있다.

‘노블레스’는 영어로는 ‘노블(noble)’이고, 귀하다는 뜻이다. ‘오블리주’는 ‘obligation’으로 책임이라는 뜻이다. 복합단어의 의미를 풀이하여보면, 귀족 층은 일반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면서 살기 때문에, 그 특권에는 의무가 따른다는 뜻이다. 알고 보면 멋진 말이다. 이 멋진 뜻은 기원전 600 년 경, 호머의 ‘일리아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외국어와 외국어+한국어 병합 신조어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순수한 한국어로 ‘수저’에 관한 단어들이 사회 계급층을 지칭하는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나무 수저, 흙수저. 수저 타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새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수저 계급제도가 새로운 한국인의 신분질서로 부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저계급론은 경제적인 수직적 관계를 지칭하는 뉘앙스가 진하다.

계급과 신분이 우리들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계급이란 신분이나, 재산, 직업, 교육 정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드는 것이 집단이라고 하는 정의를 읽었다. 그런데 한국에는 계급제도가 없지 않은가? 계급제도는 일본강점기 때에 한번 말살되었고, 육이오 한국전쟁을 치루면서 완전히 바닥으로 허물어져 없어졌던 것이 아닌가?

계급이나 신분은 사실상 불평등을 의미하는 단어로써, 계급은 법제적으로 정해진 사회의 불평등이고, 신분이란 법제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의식적 불평등이라고 한다. 미국이나 한국은 법적인 불평등은 없지만,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불평등의 관념이 아직도 몸 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수저 계급제도가 그것이다. 수저계급론의 시초는 미국이다. 아무개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표현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과연 어느 수저 계급에 속할까? 어디에 속하던지 상관없이, 나는 동수저가 좋다. 동(銅)은 광물질 브라스(brass) 또는 커퍼(cupper)를 뜻하는데, 여기서 한국 사회에서 쓰는 동수저라는 말 속의 동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뜻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인류가 발견하고, 발전시킨 물질 중 가장 획기적인 물질이다. 약 110년 전에 영국인 헤리 브리얼리(Harry Brearley)가 녹슬지 않고 단단한 총기를 만들려고 우연히 크로미움(동위원소 Cr)을 철에 섞으면서 발명된 것이다. 철은 기원전 고(古)시대부터 쓰였던 것으로 오래 쓰면 녹이 쓴다. 여기에 약 11% 분량의 크롬을 섞으면 녹 쓰는 것도 방지하고, 단단하고, 오래갈 뿐 아니라, 섭씨 1200도 정도까지의 고열을 견디며, 값도 무척 싸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물질이 무척 위생적이라는 것이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의학기구, 쿡킹용기, 오븐, 자동차 부속품, 건축자제로 다양하게 쓰인다. 그 뿐 아니라 스테인리스 스틸은 맥주 발효 통, 비행기, 잠수 TV, 세탁기 등 어떤 물질을 장시간 동안 저장해도 부식하지 않는 유용하고 좋은 물건이다. 무엇보다도 의학기구의 대부분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다. 그 예로 자궁암 근접치료를 하기 위해 자궁과 자궁경부에 넣는 기구를 들 수 있다. 오랫동안 수 천 명의 환자들을 위해서 사용하고, 고열 소독을 한 후에도 휘지 않고, 견고하며 위생적이다. 이 물질은 발명되자마자부터 의학 기구를 만드는데 쓰였다. 현재 중국이 최대 스테인리스 스틸 생성국가(1,000 million)로 2위인 인도보다 10배를 만든다.

귀족 계급이 없어진지 오래되지만 의식적 불평등 속에서 살고있는 지금, 어떤 사람들과 계층이 노블레스에 속할까? 여기에 나의 모국인들이 즐겨 쓰는 수저계급론을 접목해서 생각해 본다. 이들 중에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수저 계급은 누구일까? 금수저와 은수저까지일 것 같고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만, 동 수저급, 나무 수저 계급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얼마든지 실천하면서 살수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경제적으로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도울수 있으면 의무의 완수가 될 것이다.

한국전쟁을 겪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미국에 사는 한국인 교민들은 우크라이나를 돕는 데 적극적이다. 일부에서는 우크라이나에 사는 한국 교민들을 돕고, 나의 모교 고등학교 동문회는 크게 작게 성금을 모아서 미국에 유학중인 우크라이나 출신 학생들에게 생활보조금을 모아 주면서 돕고 있다. 많지도 않고,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72년 전, 육이오 전쟁으로, 공부할 시기를 놓치고 대학 진학이 불가능했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미국 유학의 길을 열어 주었던 미국의 시민들이 실행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다. 그들은 거부가 아닌 우리들처럼, 평범한 미국 시민들이었다.

임신중절과 우울증 ( Roe vs Wade)

‘내가 벌을 받아서 유방암에 걸린 것 같아요.’

서른 대 후반인 백인 환자는 ‘벌 받다(punished)’라는 단어를 썼다.

‘무슨 뜻이에요?’

‘몇 달 전에, 아이를 지웠어요.’

임신중절을 하고 나서, 깊은 우울함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던 때에, 그녀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나에게 의뢰되었다. 낙태 수술의 ‘죗값’, 아이를 포기한 벌(罰)이 유방암으로 업보(業報)가 되어 되돌아왔다고 말하던 그녀는, 행복할 수 없게 되는 보속(補贖)을 받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고 말했다.

중병이나 불상사가 있으면, 인과응보라고 여기고 자신을 탓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동서양이 비슷하다. 불교의 가르침, 또는 죄의식을 일깨우는 기독교의 가르침 가운데 형성된 사회성이 아닌가 싶다.

유방암 발병과 임신중절은 관련이 없다. 그러나 그녀의 죄책감은 의외로 무거웠다. 인위적 유산을 한 여인들의 자살률은 일반인들보다 세 배나 높다. 십 대인 경우는 자살 시도율이 10배나 높고, 자살 성공률이 4배에 달한다고 한다. 인위적 유산을 한 경험이 있는 성인 중, 약 30%는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마약 또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도 된다고 한다. 어쩌면 그러한 성향의 사람들이 유산의 결단을 쉽게 내리는 것은 아닌지, 거꾸로 생각을 해 본다.

미국은 지금, 여성의 낙태권을 없애자는 대법원의 임시 결정을 놓고, 49년 전에 낙태권을 인정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찬반의 의견들로 양분되어 있다. 결국, 낙태를 결정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 것이며, 왜 낙태를 하려는 것인가, 낙태를 당하는 태아는 인간인가, 아닌가 등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으려 분투 중이라고 할까?

49년 전, 미국 낙태의 역사적인 판례를 불러온 제인 로 ((Jane Roe: 본명 Norma McCorvey)의 삶은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들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그녀는 이혼한 부모 중, 알코올 중독자이었던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10살 때, 삼촌 벌 친척에게서 강간을 당했다. 16세에 첫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즉시 입양되었다. 로 vs 웨이드 (Roe vs Wade)의 역사적 판례를 만든 세 번째 임신은 그녀가 원했던 낙태로 끝내지 못하였다. 세 번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역시 입양으로 마감되었다.

로(Roe) vs 웨이드 (Wade)를 정리해 본다. 당시 낙태와 소도미(Sodomy:항교)가 불법이었던 텍사스주(州)에서 소도미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즉 미국인이면 누구나 가지는 기본권리이므로, 불법이 아니라는 판례가 내렸다. 입양 전문 변호사 자격으로 제인 로(Roe)의 세 번째 임신중인 아이의 입양 절차를 도와주고 있던 게이(gay) 남자 변호사는 두 젊은 동료 여성 변호사들에게 그 내용을 알리게 된다. 그들은 제인 로(Roe)의 세 번째 임신을 ‘프라이버시’라는 이유를 붙여 합법적인 낙태로 처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파산 전문 변호사이며 레즈비언인 린다 커피(Linda Coffee) 변호사와 임신중절이 불법인 미국을 피해서 멕시코로 가서 소파 수술을 받았던 사라 웨딩턴(Sarah Weddington) 변호사이다.

린다 커피와 사라 웨딩턴 변호사는 $15 달러를 들여 제인 로(Roe)의 케이스를 법원에 접수한 원고였고 당시 지역대표 변호사, 헨리 웨이드(Henry Wade)가 피고였다. 그렇게 미국 역사상 제일 유명한 재판, 로(Roe) vs 웨이드(Wade)는 대법원까지 항소 되었다.

제인 로(Roe)는 이 판례로 미디어의 여왕이 되었다. 세 권의 책 출판에 관여하고, 돈도 많이 벌었다. 이 과정 중에 프로-라이프, 프로-초이스를 오가면서, 여러 번 말을 번복했다고 한다.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교계, 보수파, 진보파, 때로는 미디어의 센세이셜리즘의 이용된 꼭두각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낙태가 불법으로 판결된다면, 낙태 이외에 생식의학에 동반되는 여러 이슈를 재고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보면, 불임환자를 위한 체외수정이다. 시험관에서 정자와 난자를 결합시켜서 배아를 만든다. 실패를 우려해서 대략 4개 정도의 배아를 만들고 그중 가장 건강해 보이는 배아를 난자를 제공한 엄마나, 또는 대리 여인의 자궁에 정착시킨다. 쓰이지 않는 세 개의 배아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배아가 사람이라고 보는 지역에서는, 배아를 버리는 것은 범죄가 될 수 있다.

매년 태어나는 세계의 일억 4천만 새 생명의 반 정도인 7천 3백만 명의 태아들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낙태된다. 임신중절 때문에 사라진 생명과 이 길을 선택했던 여인들이 5차원 세계에서 만나, 서로를 치유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는 뒷북을 치지 말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차세대들과 일찍 생식학을 함께 공부하고, 알맞은 성교육을 시켜주어야 한다. 계획 없는 임신, 준비되지 않은 성생활로 파생되는 부작용을 예방하는 것처럼 더 중요한 교육은 없을 것이다.

거짓 정보가 판치는 세상/한글이 UN 공용어로 채택되었다고?

한국에 있는 친구가 ‘축하해! 한국어가 유엔 공영어로 채택되었데. 한국어 클래스를 정규학교에 집어넣느라 애써온 한국어진흥재단의 노력이 보탬이 된 것 같구나!’라는 메시지와 함께 한글이 유엔 공용어로 추가되었다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보내왔다. 들뜬 마음에 재빨리 동영상을 열었다. 남자 아나운서의 말투와 소식의 전개 방식에 전문성이 없었다. 한 시간 안에 또 다른 지인들이 같은 영상을 올렸다. 가짜 뉴스였다.

가짜 뉴스, 거짓 정보가 요즘처럼 난무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홍수가 되어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쉽게 정보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기구들이 있고, 수신인은 진실성에 대한 분별력이 높아지고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 나도 친구가 보내 준 유튜브 영상이 가짜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퍼졌던 한국어에 대한 가짜 뉴스는 유엔에 공식 언어가 6개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그 말은 맞다. 유엔은 공식 언어와 활용언어를 구별한 적이 있었다. 1945년 초창기의 유엔은 국제연합 헌장에서 5개의 공식 언어로 중국어,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를 채택했는데, 그 후 아랍어가 더해져서 여섯 개로 굳혀졌다. 유엔 총회가 있을 때, 연설의 내용이 이 여섯 개의 언어로 동시 통역되고, 문서로도 만들어진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처럼, 공용어 이외의 말이 사용되는 경우는 6개 중 하나의 언어로 미리 번역하여 제출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다시 가짜 뉴스 문제로 돌아가 보자. 놀랍게도 기자들조차 거짓 정보 보도 방법을 공식적으로 훈련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미국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한 설문 조사에서 보고되었다(Statistica 1월, Amy Watson). ‘보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법적 해석의 가능성 때문에 정부나 기관이 이를 쉽게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이슈는 거짓 소식인 줄 빤히 알면서도, 그것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거짓 뉴스, 정보를 강력히 막고 우선 정정해야 하는 분야는 의료 관련 쪽이다. 증명되지 않은 거짓 의학이 사기꾼과 돌팔이 의사들을 부추기고, 용감하게 순진한 시민들에게 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생명을 잃게 되기도 한다.

최근에 있었던 코비드 19 판대믹이 시작되면서 횡행했던 거짓 정보, 특히 백신에 대한 유언비어가 좋은 예이다. 백신을 거부했던 유명인사 중에는 코비드로 죽은 사람도 있다. 내가 경험했던 슬픈 어린 환자의 사연도 있다. 키모테라피는 부작용이 많기는 하지만 백혈병을 완치시킨다. 한 젊은 부부가 백혈병에 걸린 네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왔다. 키로테라피로 하는 정통적 치료를 거부하고, 그들은 아이에게 레아트릴 (laetrile) 치료를 받게 하겠다고 아이를 멕시코로 데리고 갔던 일이다. 레아트릴은 1845년 러시아에서 처음 썼던 것으로 미국에는 1920년대에 알려졌다. 미국의 식품 의약청(FDA)에서는 이 약물 안에는 사이안화물이 들어 있으므로 일찌감치 사용을 금지한 바 있었다. 소아암 전문의사가 법원에서 레아트릴 치료 금지 명령까지 받아내었지만, 아이는 효과 없는 레아트릴 치료를 받다가 악화된 백혈병으로 사망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젊은 부부가 당시 어디에서 정보를 얻었는지 알 수 없다. 요즘은 신문, 라디오, TV 이외에도 인기 좋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북, 트위터, 틱톡, 핀테레스트, 스냅샷, 링크드인, 레딧, 홧쯔합 등 통신망(SNS)이 있다. 정보의 정확도를 가늠하는 것은 아직은 독자와 사용자들의 몫이기에,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귀찮고 힘들어도 시간을 내어서 꼼꼼히 내용을 살펴보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