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ean 의 아기 사자그림. 11살 때 그렸다. Idaho mountain lion research 참여함.

평생 GPS 목걸이가 달려있었다.
‘이젠 P-22 이야기는 그만하시지!’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2022년 12월부터, 나는 P-22에 관한 기사를 접할 때마다 그 내용을 남편에게 알린 것 같다. 산사자(山獅子) P-22한테 자꾸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P-22는 엘에이 도심지에서 살았던 마운틴 라이언(mountain lion)의 이름이다. 작년 12월에 안락사를 받을 때까지, 약 12년을 싼타모니까 산(山) 동쪽 끄트마리에 있는 그리피스 팍크(Griffith Park)를 거처로 삼고 살았다. 싼타모니까 산은 서쪽 태평양에서 시작하여, 약 40마일 가량 동쪽으로 펼쳐져 있는 산맥이다. 서쪽 부분의 산은 넓고, 산림이 풍성하다. 서쪽에서 태어난 것으로 믿어지는 P-22가 남북으로 연통되는 405 프리웨이의 차선 10개를 건너고, 세계에서 가장 번잡하다고 알려진 북서-남동쪽 방향으로 통하는 101 고속도로를 가로질러서 그리피스 파크에 어떻게 도달했는지, 왜 그곳을 떠나지 않고 살았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스라소니, 사자, 호랑이, 표범, 산사자는 고양이 과(科)에 속하는 동물들이다. P-22라는 이름은 2002년 국립 공원 서비스(National Park Service)가 산사자 생태 연구를 시작하면서 퓨마(puma)에서 첫 글자 ‘P’를 가져온 것이다. ‘P’에 연달아 붙여진 숫자는 포획된 순서대로 붙인 것으로, 001에서 시작했고, 2021년 11월에 100번째의 ‘P’에 도달했다. 그러니까 녀석은 22번째로 잡힌 산사자였다. 첫 번째인 P-001은 P-22의 아버지라고 한다.
녀석이 차에 치이었다는 제보가 들어 온 것은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 후이었다고 한다. 차에 치인 후, 근처에 있는 로스 필리스 지역의 어느 가정집 뒷마당에 누워서 이틀을 앓았는데, 집주인은 그 사실이 보도될 때까지 몰랐다고 한다. 뒤뜰에 자주 나가지 않는 가정이었나보다. 제보를 받은 후에, 녀석의 GPS 목걸이를 통해서, 거처를 찾았고, 녀석은 샌디에고 동물원으로 이동되어 정밀 검사를 받았다. 찻길 사고로 안구 손상, 두개골 분열, 횡격막 파열이 있었고, 신장기능 저하 같은 지병도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락사가 현명한 조치라 판단했다고 한다.
P-22의 찻길 사고와 녀석의 안락사 소식은 안젤리노 뿐 아니라, 글로벌 시민들을 애도하게 했다. 10년 전, 할리우드 싸인을 뒤로 한 녀석의 사진이 네셔널지오그라피 잡지에 실리면서, 도심지에도 야생동물이 함께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알려졌다. 사진은 스티브 윈터스 사진 기자가 6개의 카메라를 장치해 놓고, 15개월 동안 기다렸다가 포착한 사진이었다.
P-22의 존재는 도심지에 사는 야생동물을 보호하자는 사회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작년 4월에 101 고속도로 구간 중에 아고라 힐스 지역에 ‘야생동물 건널목(Wildlife Crossing)’을 만들었다. 또 LAUSD 학군에서는 ‘P-22 Day’ 인 10월 22일에 야생동물 관련 클래스를 매년 하기로 했다. 아담 쉬프 캘리포니아 대표 국회의원은 P-22는 영원한 캘리포니안임을 뜻하는 의미에서 우표제작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어제는 P-22 와 P-22로 인해 축복 받은 우리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행사도 있었다.
P-22의 때로는 위태롭고 험난했었을 도시에서의 삶을 상상해 본다. 넓지 않은 지역에 갇히다시피 고립되어서 살았다. 다른 산사자 친구도, 애인도 없었다. 인위적인 죽음은 생명의 윤리를 재고(再考)하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거미줄처럼 종횡하는 수많은 도로에서 질주하는 자동차가 우선적인 캘리포니아에는 로드킬의 참사가 많다. 2022년 3월부터, 9마리의 산사자가 차에 치여 죽었다는 통계이다.
이번 타임(TIME) 지(紙)의 ‘The View’ 색션에는 ‘윤리: 인간이 동물에게 진 빚’이라는 제목으로 P-22뿐만 아니라, 인간이 빼앗은 다른 동물들의 권리에 대해서 포괄적인 리뷰가 실렸다. 또 LA Times를 위시한 미디어는 P-22의 이야기를 선두로, 인간이 침범한 동물 세계, 그로인한 막대한 생태학의 변화, 멸종위기, 앞으로 우리가 보강하고 개선해야 할 지침을 제기(提起)한다. 고맙다.
그래도 종결되지 않고 있는 P-22의 삶이다. 녀석의 죽은 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실험용으로 쓰자는 과학자들, 박물관에 박제해서 전시하자는 의견, 온전히 그대로 땅에 묻어 자연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아메리칸 인디언의 의견 대립이다. P-22가 살아있는 동안, GPS가 달린 목걸이를 7번이나 교체하면서, 충분한 과학적 자료는 얻었을 것 같다. 나는 아메리칸 인디언 편이다. P-22가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해 주자.
얼마 전 플로리다주의 한 말기 환자 병동에서 환자의 부인이 남편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남편은 병이 위중해지자 존엄사를 원했다고 한다. 부부는 ‘살해 후 자살’ 시나리오를 계획했고 남편은 숨졌지만 부인은 자살에 실패했다. 플로리다주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곳이라 부인은 살인혐의로 구속됐다. 숨진 남편에게 증상 완화를 위한 호스피스 치료를 제의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존엄사나 안락사의 해당 범위나 시행 규정은 국가에 따라 다르다. 존엄사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이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스스로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안락사라는 것은 의사 (또는 면허가 있는 전문인)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들이 죽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을 일찌감치 제정하고 시행해 온 국가들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범주가 넓어지면서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다. 생명윤리를 배반하는 숨겨진 사례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선천성 기형, 치매, 극심한 청각장애, 만성간경화, 폐쇄성 질환, 면역 결핍증 환자들이 안락사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차트조차 정확히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이런 병들은 불치병인 것은 맞지만, 금방 죽을 병은 아니다. 고혈압, 당뇨도 완치되는 병은 아니지만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를 통해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사용되는 용어도 ‘존엄한 죽음(death with dignity)’, ‘자의적 안락사(voluntary euthanasia)’, ‘의사조력 사망(physician assisted death)’, ‘임종 의료지원(medical aid in dying:MAiD)’, ‘조력사망(assisted dying)’, ‘타의적 안락사(involuntary euthanasia’ 등 다양하다. 어떤 경우가 ‘존엄사’ 이며, 어떤 경우가 ‘안락사’인지 혼동되기 쉽다.
우리는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태어난 것처럼, 때가 되면 예외 없이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죽음은 자연사, 사고사, 존엄사, 안락사 등 네 가지 길을 통해서 도달한다. 아파서 죽는 것은 자연사, 피살은 사고사로 분류된다. 존엄사는 본인이 행하는 것이고, 안락사는 고통경감을 위해서 조기 사망을 유도하는 것인데, 타인이 죽는 과정에 개입한다. 어떤 죽음을 존엄, 또는 안락사라고 할 수 있을까? 종교적 가치관은 차치하더라도 인위적인 사망을 윤리적으로 또 법적으로 타당하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벨기에는 존엄사와 안락사를 허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불치병이나 말기 질환 때문에 고통 받는 환자 중에, 남은 삶이 6개월 미만일 때 안락사를 허용한다. 시행 20년이 지나면서 안락사 숫자가 10배나 늘었다고 한다. 2014년에는 아동에게도 이 법을 적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얼라이언스 비타(Alliance Vita)라는 프랑스 인권단체는 지난해 벨기에의 규정 적용이 갈수록 느슨해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도 지난해 10월 ‘존엄한 죽음’을 위한 연명의료결정법 개정 및 의사 조력사망 법제화에 대한 안건이 인권위에 제출되었다고 한다. 두 안건 모두, 인위적 죽음에 관한 것이다. 한국은 몇몇 선진국들처럼 제한적인 연명의료결정법이 있지만 아직조력사망, 또는 조력 존엄사를 입법화하지 않고 있다. 조력 사망은 대다수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한국(26명/10만명, 미국 14.2명/10만명)을 생각할 때 존엄사, 안락사는 염려스럽게 다가온다. 생명의 귀함을 무시하고, 아파서 괴로워한다고 인위적 죽음을 제시하거나,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도록 종용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개인은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 지침서(advanced directive)를 준비해 놓고, 사회는 개개인의 행복한 삶,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이미 잘 만들어진 시스템을 이용하도록 돕고, 말기 환자들과 그 가족들은 호스피스제도를 충분히 활용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생명을 놓고 거래하거나, 법을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
2023.1.16. 월


Jean’s painting of a panther at age 11

P-22 잡히다

샌디에고로 우송되기 전
-no more collar-

LA Times 기사

어렸을 때의 모습

German
Sein Blick ist vom Vorübergehn der Stäbe
so müd geworden, daß er nichts mehr hält.
Ihm ist, als ob es tausend Stäbe gäbe
und hinter tausend Stäben keine Welt.
Der weiche Gang geschmeidig starker Schritte,
der sich im allerkleinsten Kreise dreht,
ist wie ein Tanz von Kraft um eine Mitte,
in der betäubt ein großer Wille steht.
Nur manchmal schiebt der Vorhang der Pupille
sich lautlos auf –. Dann geht ein Bild hinein,
geht durch der Glieder angespannte Stille –
und hört im Herzen auf zu sein.
English
His gaze against the sweeping of the bars
has grown so weary, it can hold no more.
To him, there seem to be a thousand bars
and back behind those thousand bars no world.
The soft the supple step and sturdy pace,
that in the smallest of all circles turns,
moves like a dance of strength around a core
in which a mighty will is standing stunned.
Only at times the pupil’s curtain slides
up soundlessly — . An image enters then,
goes through the tensioned stillness of the limbs —
and in the heart ceases to be.
– English translation by Stanley Appelb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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