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환자가 되어 시작하는 2025년

십여 년 전에 ‘환자가 싫어하는 의사’, ‘의사가 싫어하는 환자’, 작년 이맘때는 ‘의료 방해와 의료사고 예방’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글의 요점은 환자들과 의사, 의사들과 환자들 사이의 간격 좁히기와 도움이 되기 어려운 높은 기대치 허물기에 대한 것이었다. 서로 간의 관념과 관점을 이해하면 의사는 환자가 원하는 것을, 환자는 의사들이 알리고자 하는 것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의사라는 직업은 밥벌이를 위한 것이 아니고 타고난 직업, 천직(天職)으로 분리된다. 즉 하늘이 준 일, 영어로는 vocation(보케이션)이라 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직업(occupation)과 구분하는데, 여기에는 봉사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간호사, 교사, 종교인, 변호사도 직업인이라기보다는 천직을 가진 사람이라고 본다.

천직을 가진 사람들, 특히 질병을 다루는 의사들이 매일 천직의 관념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는 어렵다. 물질 만능주의가 강세인 현대를 살아가는 의사들은 학자금 대출 때문에 쌓인 빚을 잊고 살 수는 없다. 의과대학 학자금 빚은 탕감해 주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드물다. 2024년 1월 포브스 잡지는 의과대학생들의 평균 빚은 $206,924.00이라고 보도 했다. 이들이 졸업하는 시점부터, 빚을 갚기 시작해야 한다. 빚에는 이자까지 포함되어 있다. 가정도 꾸려야 할 나이이다.

그런데, 환자들은 무엇을 기대하나? ‘마르코스 웰비, M.D.’의 주인공 의사처럼 인자하고, 인정 많고, 한 사람의 환자를 위해서 충분한 시간을 써 주는 의사가 주치의이기를 기대한다. ‘마르코스 웰비 박사’ 텔레비전 시리즈는 1970년대 ABC에서 방영되었던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천천히 움직이는 한가한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실화일 것이다.

이번에는 의사인 내가 환자가 되어 외래 수술을 받았다. 측면에서 의료 세계를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수술을 받은 곳은 내가 의사로서 젊음을 보냈고, 그곳에서 은퇴한 메디컬 그룹이 운영하는 큰 병원이었다. 내가 활동하던 시기보다 수술프로토콜이 더 많이 세분되어 있었다. 병원의 운영과 의사 중심에서 환자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체재로 많이 변해있었다. 내가 전직 의사라서 특별대우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어느 정도 맞을지도 모르겠다.

수술은 오른쪽 어깨 근대의 파열을 보수하는 것이었다. 나를 담당하는 가정의에게 어깨가 아프다고 알렸을 때, 진단에 필요한 x-ray, 초음파, MRI 검사와 함께 물리치료 전문의에게도 의뢰되었다. 이어서 정형외과의사, 물리치료와 정형외과 보조 의사와도 몇 번 만나는 바쁜 한달을 지났다. 수술을 하면 좋은 점, 나쁠 수 있는 점, 부작용 등등 세심한 설명과 내용이 적힌 팸플릿, 영상까지도 제공되었다. 옵션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어떠한 질병 치료에도, 좋든 나쁘든, 옵션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옵션은 환자가 수술을 거부할 수 있는 옵션이다.

참고로 어깨 근대 파열은 테니스나 골프를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흔하다. 또는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하는 직종을 가진 경우에도 발생한다. 나의 근대 파열 문제는 오랫동안 써서 생긴, 나이와 관련된 것으로 여기어 지었다. 치료로는 수술 대신 운동을 하라고 권하기도 하는데, 운동은 잘린 근대 주위의 근육들을 튼튼하게 만들어서 병난 부위의 대치 역할을 시키는 방법일 뿐, 잘린 근대가 운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수술로 일단 단절되어 있는 부위를 연결해 주기로 했다. 요즘은 환부를 크게 오픈하지 않고 관절경(arthroscopy) 방법을 쓴다. 끄트머리에 꼬마 카메라가 달린 관절경을 관절에 집어넣고, 관절경이 실시간으로 보내 주는 정보를 TV 스크린을 통해서 본다. 외과의사는 환자의 확대된 환부를 스크린에서 보면서 수술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수술하는 날, 새벽 5시 30분까지 입원 대기실에 도착했다. 미래 의료 동향서와 셀폰만 갖고 갔다. 수술은 전신 마취이었고, 하루 전날 밤부터 공복이어야 하였다. 내가 그 칼럼을 쓰던 10년 전보다 많이 세분화한 시스템으로 입원 대기실에 도착한 후, 나와 보호자인 남편을 동석시키고, 자세한 개인 정보를 확인하고, 팔에 ID 팔찌를 끼워 주었다. 미래의료동향서를 건네니까, 이를 스캔하는 부서로 일단 보내고, 스캔 된 부분은 전자기록에 첨가된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직원은 만약 의료사고가 생기거나, 전신 마취 중에 연락이 필요한 경우, 일 순위부터 가족들의 이름, 연락처가 정리되어 있는지도 확인하였다.

수술 대기실로 옮겨지고, 친절하고 명랑한 마취전문의, 마취 전문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맥주사가 연결되었다. ‘잠깐 주무세요!’라는 속삭임 이후의 해프닝은 전혀 알 수도 기억나지도 않는다.

이론적으로만 이해하였던 내 환자들의 ‘육체적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아픔의 문턱이 꽤 높은 나 자신에게, 실상 진통제가 필요할 만큼 심한 이 아픔은 적극적으로 침범해 온다. 시간이 약이라던 어른들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삼각기 팔걸이 슬링을 하고 다니면, 동정도 많이 받을 것 같다.

환자로 시작한 의사의 2025년이다. 아프지만 의미 깊은, 그래서 겸손하게 시작하는 새해이다. 그래서 그런지, 2025년은 힐링의 새해, 겸손과 나눔의 새해가 될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든다.

오픈 업에 보낸 글

[해외기획 코너] 노인층도 봉사하는 2025년이 되기를!

노인 부류에 속하는 나는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미국으로 유학하러 왔던 반세기 전에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 또래 친구들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옹색하게 살았다. 모국은 경제발전과 정치적 안정을 위해 애쓰고 있었고, 유학생인 우리는 주머니와 타협하면서 살아가야 했던 때이었다. 편지로 하는 모국과의 소통은 비행기편으로 일주일 이상 걸렸다. 큰 오빠가 유학왔던 때에는 고추장이 먹고 싶어도 마켓에서 구할 수 없어서, 엄마가 배편으로 한국에서 부쳐 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도미했던 때는 큰 오빠 때보다 10여 년도 지난 후이었는데, 동양 음식 거리가 비싸기는 했어도, 문제는 적었다. 전화 소통은 어땠나? 국제전화 요금은 3분에 18달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생 신분으로 18달러를 전화비용으로 쓰는 것은 거의 죄악과 다름이 없을 정도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셀 폰의 개발로 앱 사용이 가능하고 쉽다. 머리 좋은 한국인들이 개발한 앱 중의 하나인 카카오톡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무료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또 세상 돌아가는 뉴스의 전달을 전통 미디어(legacy media) 뿐 아니라 전통 미디어가 자체 내의 소식 배달 창구인 인터넷을 통해서 온라인으로 전한다. 전통 미디어란 ‘대중매체 (매스 미디어)’, ‘주류 미디어’ 또는 ‘구 매체 (old media)’ 라고도 불린다. 종이 신문, TV, 라디오를 이용한 정보 제공 매체이다.

새로운 매체의 활용도는 젊은 층이나 노년층에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작년 8월에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한국민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매체는 유튜브(1,174억 분)와 카카오톡( 327억 분)이었다. 전화 대신 쓸 수 있는 대화의 매체인 카카오톡 앱은 내가 봉사하고 있는 비영리단체인 한국어진흥재단에서도 비대면, 대면이 섞인 이사회 때에 결정할 사항이 있으면 카카오톡 투표 기능을 이용해서 무명으로 시행한다.

노년층에 속한 지 꽤 오래된 나와 나의 세대들은 이러한 사회의 변화를 뉴 노멀로 받아들이고 빨리 적응하는 것 같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배울 뿐만 아니라, 자진해서 적응하고 있다. 이야기가 비껴가지만, 어느 한인 미디어에서 노년층을 홀대하는 말을 스스럼 없이 하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국민가수 나훈아 씨가 그의 고별 공연에서 했던 정치에 대한 간접적 발언을 진보파로 알려진 일 년 후에 환갑이 되는 후배 가수가 ‘노인과 어른’의 차이점을 나름대로 정의하면서 그를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한 정치인은 그의 정치적 성향을 들어 자신이 속한 정당에 대해서 오류가 있을까 봐 염려한다고 공식적인 비판을 했다.

무슨 말을 했을까 궁금했다. 우울증으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는 1965년생 가수는 ‘얕고 알량한 지식, 빈곤한 철학으로 그 긴 세월에도 통찰이나 지혜를 갖지 못하고 그저 오래만 살았다면 ’노인‘이다’라고 나훈아 씨를 비양했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노인’이나 ‘어른’이라는 단어는 나이에 근거한 표현이다. 두 단어 모두에는 철학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것을 ‘커피 브래이크’라는 어떤 블록이 잘 설명했기에, 인용해 본다: ‘어른’이란 나이가 든 사람을 가리키지만, 인생의 경험을 통해 성숙해진 사람으로 가족과 사회에 책임을 지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는 그룹을 뜻한다. 반면 ‘노인’이란 나이가 많은 사람을 지칭하지만, 그 안에는 더 많은 의미, 즉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혜를 얻은 사람들로 길을 밝히고,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어른’과 ‘노인’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중요한 두 개의 기둥이라고 했다.

한국 노인복지법은 시니어 나이를 65세부터로 정의한다. 미국은 의료혜택을 위해서, 1965년에 65세로 정했는데, 그 당시 여성 기대 수명은 73.8세, 남성은 66.8세이었다. 2024년 통계는 여성 81.98세, 남성은 77.05세이다. 의료혜택을 위한 정부가 정의하는 나이는 65세이지만 공용 버스나 기차, 여러 기업, 상점, 레스토랑은 55세부터 이를 적용해서 그들이 보기에 적절한 할인 혜택을 준다. 조기 은퇴 경우, 다른 옵션도 주어진다.

모국에서는 노인 복지법이 2008년에 제정되었고 그 후, 3년마다 노인 실태 조사를 해 왔다. 내용을 보면 한국의 노인 실태는 지난 15년 동안 아주 고무적으로 좋아진 것 같다. 매우 기쁘다. 노인층 교육 수준의 진보, 노인소득의 향상이 그중에 가장 돋보인다. 그중에 한 가지 예를 들어 본다. 2008년과 2023년을 비교해 볼 때, 사적 이전소득, 즉 자녀에게서 노년층이 받는 생활비와 용돈은 30.4%에서 8%로 줄었다는 것이다. 노년층이 더 독립적인 능동적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 2.9%의 노년층은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그들이 월평균, 이 활동에 참여하는 시간은 6.3 시간이라 한다. 399개의 복지관, 1,282개의 노인 교실, 67,633개의 경로당 프로그램은 한국 노년층의 활발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했던 작년 가을에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부분이 이 통계를 뒷받침한다. 남과 여, 젊은 층과 노년층 상관없이, 울릉 시민들은 모두가 열심히 살고 있었다. 노인의 햇빛과 파도에 그슬린 주름 많은 얼굴은 유명한 배우들의 진하게 화장한 얼굴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울릉도 광역시 노인들과 정신적으로 함께 하는 나는, 지금 산불로 잠시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대피 중이다. 하지만, 산불이 진압되면 곧 돌아가서, 울릉도 노인들처럼, 2025년을 멀리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에서 쉼 없이 열심히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

1/14/2025 Albuquerque, NM 에서. 엘에이 산불을 피해 잠시 방문중.

<2025년 울산광역 매일 필진> 정규 칼럼니스트로 새해 시작

울산광역매일
기사입력 2024-12-31 [16:37]

을사년, 소통과 희망의 한해를 기대합니다. 그런 기대는 당연히 생활 저변, 특히 낮은 곳에서 나오는 목소리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작은 소리를 종이에 찍어 내고 온 누리에 퍼 날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올해 `해외 기획 코너`에 참여할 해외 동포 고정 필진을 구성했습니다. 지난 8월 본지가 창간 15주년을 맞아 사책(社策)으로 `대양 항해`를 제시한 것과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새롭게 펼쳐지는 오피니언의 章이 올해 애독자 여러분의 포럼이 되길 바랍니다.

  

■해외 기획

정종진 

박영실 

박휘원 

줄리아 헤븐 김 

류 모니카 

민유자 

김은국 

이금숙 

최모세 

<해외기획-미주 문인협회> 새해에 다시 찾자, 우리 ‘독도’! 울산광역매일 https://m.kyilbo.com/343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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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모니카 수필가
기사입력 2024-12-12 [16:02]

▲ 류 모니카 수필가  © 울산광역매일

 반세기를 미루었던 숙제를 드디어 했다. 미국에 살고 있는 내가, 독도와 울릉도를 방문하는 숙제를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여건이 된다 해도, 모국의 동해 지역 기후가 자비로워야만 독도와 울릉도 방문이 가능하다. 동해안 파도가 유난히 높고 험했기에 7월에는 계획을 접어야 했다. 7월의 동해는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뭘 말하려 했었던 것이었을까. 

 10월 중순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독도행 배를 탈 수 있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 사람들’을 환영한다는 안내자의 방송이 울려 나왔다. 선택받은 행운아가 된 듯이 마음이 뿌듯하고 벅찼다. 받아 든 조그마한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독도 섬 길을 따라 행렬에 끼어서 걸었다. 태극기를 들고 줄지어서 독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주위에 있는 크고 작은 조금조금 한 섬들, 검을 만큼 짙푸른 바다, 밀려와 돌 섬을 용서 없이 후려치고 자신은 부서져 돌아갈 몸조차 잃어버린 파도,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바람에 날리는 태극기의 무리…모두 모두 아름다웠다.

 얄팍한 나의 지식으로는 독도란 동해안에 있는 작은 섬, 이름처럼 고독한 섬,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섬, 일본과 소유권을 놓고 늘 싸웠던 섬 정도이었다. 작은 섬 갖고 일본과 싸워야 하는 이유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유엔 해양법에 따라, 한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이 가장 동쪽에 있는 독도 덕분에 동쪽으로 12해리 정도 더 넓어지고 이 영역 안 바닷속 보물들의 소유권과 수중 연구에 대한 권리를 대한민국이 갖는다는 정도이었다. 나의 선입관은 보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나처럼 그리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독도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했다. ‘독(獨)’은 ‘홀로 독’이라는 한자에서 온 것으로 로, ‘홀로’, ‘외롭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독도는 혼자 있는 섬이 아니라 91개의 암초 바위가 함께하므로 홀로 있는 섬이 아니었다. 

 2019년 동북아역사재단의 영토 해양 연구 저널(서울여대 정연식)에 의하면 독도란 우리말 ‘독섬’을 한자로 표기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의 논문에 의하면 고지도에 ‘독도’로 표기된 섬은 세 가지가 있다. 독 모양의 옹도(瓮島)와 육지나 큰 섬에서 떨어져 나간 ‘동’섬, 한자로는 ‘독(獨)’ 섬이지만, ‘돌섬’을 뜻하는 것 등이다. ‘독’이란 말은 돌을 의미하는 알타이어의 방언이라고 한다. 세 번째 해석이 맞는 것이라 한다.

 어떻든, 나는 독도를 섬(island)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국제해양법에 따르면 독도는 암초(rock) 즉 바위로 구별된다. 섬이란 사람이 살면서, 경제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9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독도 거주 등록 인구수는 3,555명이고, 실거주 인구는 59명뿐이다. 실거주 주민 14명(14세대), 독도경비대원 약 40명, 등대관리원 3명, 울릉군청 소속 관리 사무소 직원 2명이 실거주 인구이다. 이들은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관리 차원의 주민들이다. 

 일본은 이차대전에 패한 후에 강제로 점령하고 있었던 여러 나라의 땅을 돌려주어야 했다. 또 미국은 그들이 관리하던 일본 영토를 일본에 돌려주었지만, 아직도 일본은 그들이 빼앗았던 영토들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다. 러시아와 쿠릴열도 때문에, 중국하고는 센카쿠 섬 때문에, 우리 한국과는 독도 때문에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독도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다. 기록된 일본인은 없다. 일본인의 독도 방문은 제한적이고 거의 불가능하다고도 한다. 

 ‘세종실록 지리지’, ‘성종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실린 역사적인 내용을 뛰어넘어서, 1900년대부터 훑어보면, 조선시대 때에 울릉도는 강원도, 울진에 속했었다. 1914년부터 경상북도의 행정영역이 되었다.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이 선포한 칙령 41호로 독도가 울릉도 담당 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그래서 독도의 날은 10월 25일로 지켜지고 있다. 아직 공개적인 휴일은 아니다. 

 공주대학 김소영 교수에 의하면 일본은 매년 3월 교과서 검정 시행을 하고, 이때,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한국이 침해하였다고 가르친다고 한다. 반복해서 매년 가르치는 셈이다. 이에 반해서 2022년에 새로 개정되어 쓰고 있는 우리 차세대들의 역사 교과서는 한국사가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일제강점기와 현대사가 ‘한국사 2’에서 다루어지게 되어 있다고 한다. 독도에 관한 내용은 거의 끄트머리에 있고, 분량도 줄여진 상태라고 한다. 교과서를 완전히 띄지 못하고 학년이 끝나는 경우, 이에 신경을 쓰는 교사가 아니면, 커버하지 않고 끝내기 십상이라는 염려이다.

 지구온난화로 울릉도와 독도 주요 산물인 오징어 수확량은 줄어들고 있고, 이에 따라 관심도가 낮아질 뿐 아니라, 독도에 대한 차세대 교육이 미흡할 수도 있겠다는 노파심이 떠나지를 않는다. 범국가적으로 독도와 울릉도 뿐 아니라 그곳을 지키는 시민들을 축하하는 ‘독도의 날’을 국가 공휴일로 제정하면 좋겠다. 모든 국민이 기억하고 축하하는 ‘독도의 날’, 참 멋지다. ‘독도의 날’이 되면 아빠 엄마 손 잡고, 아이들이 독도를 찾아오고, 나 또한 그날이 오면, 나의 모든 걱정을 차곡차곡 넣어 주던 태극기를 꺼내 들고 독도를 찾을 것이다. 


미국 종양 방사선학 전문의

한국어 진흥재단 이사장

미주 중앙일보 ‘오픈 업’ 칼럼니스트 

재외동포재단 문학상, 재미수필 신인상, 미주 가톨릭문학 신인상 수상

연합뉴스: 박현수기자/30주년 맞은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한글은 매일 먹는 밥 같아”

의사 출신 모니카 류 이사장 인터뷰 “‘AP 한국어’개설·한국어반 확충 추진”
외부 도움 없이 독립된 보금자리 마련해 14일 개소식 개최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한글은 나에겐 매일 먹는 ‘밥’과 같아요. 재단을 통해서 한민족 정체성을 재확인했고,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차세대의 세계화에 필수적인 제2외국어로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미국 현지에) 보급하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재 한국어진흥재단의 모니카 류(77·한국명 전월화) 이사장은 13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2017년부터 이사장을 맡아 8년째 재단을 이끌면서 느낀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이 재단은 이름만 보면 공공기관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전 세계에 한글 보급 운동을 펼치기 위해 1994년 미국에서 설립된 순수 비영리 민간 단체다. 한글 보급 운동과 함께 한국어 교사 워크숍, 예비 교사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연수 등을 하고 있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올해는 LA 한국교육원에서의 더부살이를 끝내고 30년 만에 처음으로 독립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의미가 각별하다.

재단은 오는 14일 현지 관계자들을 초청, 창립 30주년 기념식 겸 하우스(사옥) 오픈 행사도 가질 예정이다.

사옥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은 외부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재단이 직접 편찬한 한국어 교재 ‘에픽 코리안(EPIC KOREAN)’ 판매 수익금으로 충당했다.

“미국외국어교육자협회(ACTFL)와 캘리포니아교육청의 엄격한 기준에 따라 만들어진 기존 교과서보다 질적으로 뛰어난 에픽 코리안은 여러 곳에서 선풍을 일으키며 채택되고 있습니다. 미국 서부, 동부, 중부, 북부, 남부와 캐나다, 한국 오산 미군 부대 소속 학교, 아이랜드에서도 교재로 채택해 사용하고 있죠.”

재단의 목표는 미국 내 초·중·고교에 한국어반을 늘려나가는 것이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현재 217개 정규 학교에 한국어반이 개설돼 있다. 수업을 듣는 학생은 2만명이 넘는다. 그는 “이를 갑절로 늘릴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어진흥재단 새 보금자리
(서울=연합뉴스) 한국어진흥재단이 설립 30주년을 맞아 외부 도움 없이 처음으로 마련한 자체 사옥. 2024.12.13 [한국어진흥재단 제공]

한국어진흥재단 새 보금자리
(서울=연합뉴스) 한국어진흥재단이 설립 30주년을 맞아 외부 도움 없이 처음으로 마련한 자체 사옥. 2024.12.13 [한국어진흥재단 제공]

재단의 또 다른 목표는 ‘AP 한국어’ 개설이다. 대학 과목 선이수제(Advanced Placement·AP)라는 미국의 교육 시스템으로 고교생들에게 대학 과목을 미리 학습할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다. 이 과정을 마치고, 좋은 점수를 얻으면, 대학 진학 후 과목을 이수학점으로 인정해 주고 조기 졸업도 가능한 장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AP 한국어’ 개설은 한글을 보급하고 널리 확산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류 이사장은 기대하고 있다.

“중국어와 일본어는 AP 과정을 인정한 지 15년이 됐어요. 하지만 한국어는 3년째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도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요. 현재 2만8천547명이 청원에 참여했습니다.”

류 이사장은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의과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 현지 병원에서 종양 방사선 전문의로 봉직하다 2019년 은퇴했다.

지난 2011년부터 재단 이사로 활동했고, 2017년부터 이사장을 맡아 8년째 봉사하고 있다. 2018년 한글 보급에 힘쓴 공로로 대통령상을, 지난 10월엔 ‘제31회 자랑스러운 경기인’ 상을 받았다.

류 이사장은 인터뷰 말미에 “이제 사옥도 마련했으니 주위에 있는 저소득층, 비한국계 어린이들에게도 무료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칠 것”이라는 계획도 전했다.

phyeonsoo@yna.co.kr

박현수(phyeon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