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못 고치는 ‘미국병’ 2015

‘오늘 하루도 숨 쉬기가 참 힘들겠다.’ 새벽 달이 무척이나 밝다. 엄숙할 정도로 아름다운 정적도 부질없다는 생각에 빠졌다. 부당하게 이루어지는 일들, 잔인하게 마구 다루어지는 생명들, 목숨을 빼앗기고 뺏는 사람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생각하며 내가 속으로 뇌인 말이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무런 연습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없이 죽는다.'(비스•라와 쉼보르스카 詩 ‘두번은 없다’)

그렇다. 두 번의 삶은 없다. 아무것도 똑 같은 것은 없고 똑 같이 반복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무기를 만들었다. 미국은 개인이 총을 소유할 자유를 허락한다. 총으로 인한 폭력으로 많은 사람들이 두 번이 없는 귀한 삶을 잃는다. 그 뿐이랴 살아남은 사람들은 육체적인 후유증을 견뎌내야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 정신적 고통은 차후라고 치더라도.

오늘 나는 최근 하버드 의과대학 브리검 위민스 병원 안에서 일어난 총격 살인 사건에 대해 쓰려고 한다. 2015년 1월 21일 총을 소지한 범인은 여러 출입구를 지나 그가 죽이기로 계획한 의사의 클리닉에 도착했다. 아무도 그가 총을 소지했는지 몰랐고 그를 저지한 사람은 없었다. 오피스로 인도된 얼마 후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일곱 시간의 응급 처치도 의사를 살리지 못했다. 그 의사를 살리려 애썼던 동료 의사들은 세상이 우러러 보는 명의들이었고 그가 응급 수술을 받던 곳은 세계적 석학들을 만들어 낸 하버드 브리검 위민스 병원이었다. 학부, 의과대학을 거쳐 10년이라는 세월을 흉곽 세부 혈관 수술 전문 분야 수련 및 연구로 보냈던 44세의 이 의사는 짧은 생애를 남의 손에 잃었다. 살아있었더라면 그는 장래 많은 일을 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세 명의 아이들과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있다.

이 사건은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의 신뢰와 서로가 지켜오던 기본적인 예의가 병들어 감을 보여주고 있다. 2013년 통계를 보면 인구 3억이 넘는 미국에서 1년에 약 100만명 정도가 폭력범죄의 희생자로 보고됐다. 이 중 1.2%가 살인 케이스이며 살인에 사용된 흉기는 대부분이 총이다.

이중에 병원 총격이나 병원 안에서의 살인 사건은 드물었다. 2000년부터 12년간 40개 주, 154곳의 병원에서 총격사건이 보고되었는데 총격으로 인한 희생자들을 보면 45%가 총을 쏜 당사자이고(보통 자살로 끝난다), 20%가 병원 직원이었다고 한다. 간호사 (5%), 의사(3%)는 대체적으로 적은 숫자였다.

해결 또는 예비 방책을 생각해 볼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병원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는 일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가끔씩 문제가 터질 때마다 거론되었지만 채택되지 못했다. 공항 시큐리티를 통과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상상이 간다.

지금 우리는 평범한 시민이 총기를 소유할 이유 또는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숙고를 해야 할 때다. 병원 총격사건을 떠나 일반 총격으로 인한 상해와 피해는 자동차 사고로 죽는 숫자와 비슷하다. 마•더존스라는 메거진은 미국이 2015년 이천억 달러를 총격 상해에 관련된 비용으로 썼다고 보고했다. 매일 천 이백만불이라는 거액이 우리들이 내는 세금에서 쓰여진다고한다. 정확한 통계는 NRA1 와 총소유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방해로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충 87%의 소비액이 세금에서 충당되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총을 맞아 다친 사람들을 살려내야하는 의료비, 그들을 재활하는데 쓰는 인력, 재력, 또 경찰, 검찰등이 동원되어야 하고 재판을 해야 할 때까지 드는 소송비등 엄청나다. 이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감옥에서 먹여살리는 경비만도 50억불이라고 본다.

총기 소유를 금지한다면 이들에 대한 응급처치, 후유증 치료 등을 예방할 수 있으므로 의료계에서는 총기소유 금지법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NRA의 막강한 재력과 로비는 개인 총기소유를 막지 못하게 해 왔고 앞으로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악순환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숨겨진 사이코들은 정신치료를 거부한 채 일반 시민들과 섞여 살 것이고, 대형 병원들은 한 두 번의 응급대피 훈련으로 이런 사회문제를 이해했다고 자부하고 이슈를 덮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정치인이되기 위해서 •펀드를 만드는데 바쁠 것이다.

1. 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 전미총기협회

사무라이를 안락사시키고 나서

이렇게 사납게 비바람이 치는 추운 날은 집이라는 안식처가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창밖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 이처럼 추웠던 날에 잠재워야 했던 ‘사무라이’가 생각난다. 그리고 ‘사무라이’를 잠재운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내가 ‘사무라이’를 알게 된 것은 사무라이 죽기 5년 전 일이었다. ‘사무라이’는 내가 다니는 성당 마당에 살던 홈리스 고양이이다. 작은 눈이 옆으로 길게 끝이 올라 붙어 있어 붙인 이름이다.

그렇던 ‘사무라이’가 험한 날씨에 독감에 걸렸는데 어떤 치료에도 진전이 없었기에 그 녀석을 잠재우기로 힘겨운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사무라이’는 죽기 전 2주간을 우리집에서 나와 함께 지났다. 따뜻한 남향 방에 자리를 해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안아주기도 했다. 힘이 모두 빠졌는지 반항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았다. 차겁고 여윈몸을 그냥 내어 맡기곤 했다.

수의사 선생님의 조심스럽고 고마웠던 충고가 지금도 생각난다. 그 녀석을 잠재우기 전 나는 나를 위해 ‘사무라이’에게 여러 번 용서를 청했다. 그리고 하느님께도 많은 용서를 청했다. ‘목숨’을 단절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슬퍼하는 나에게 남편은 우리 인간도 불치병으로 아파 고통스럽고 희망이 없을 때 누군가 이 세상을 떠나게 도와준다면 좋을 것이라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그리스 말에서 유래된 ‘좋은 죽음’ 이라는 뜻의 ‘안락사(euthanasia)’란 정녕 정당한 것인가?

동물의 안락사는 미국만 해도 연평균 300만에서 800만 건이 행해진다. 홈리스 동물에게는 ‘좋은 죽음’이라는 뜻의 ‘안락사’가 아니라 입양해 줄 가정이 없고 이들을 살려 두기에는 돈이 아깝다고 믿어 그들의 목숨을 단절하는 것이다.

인간의 안락사는 이와 달리 본인이 원하거나 본인이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경우를 미리 예측해 본인이 건강했을 때에 지정해 놓은 대변인의 의사에 따라 행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인간의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PAS (physician assisted suicide) 또는 PAD (physician assisted death)는 불법이 아닌 주가 다섯군데 있다. 종말이 가까운 사람이 극약 처방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의 목숨을 단절할 수 있는 법이다.

법적으로, 종교적으로, 또 도덕적 의미에서 안락사는 쉽게 행해 질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개인적 인생관이나 종교관을 떠나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살인’이 행해질 수 있는 사회적인 우려도 있다. NEJM (뉴잉글렌드 저널 어•브 메디신)에 의하면 벨지움에서 2013년 약 1000명의 환자가 의사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았는데 존엄사를 했다고 한다. ‘서둘러 죽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러한 의료행위를 세상은 염려한다. 그 뒤에 숨어있는 이유가 알기 무섭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불교는 이러한 행위를 반대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사가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는 일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은 ‘액션 T4’라는 이름으로 비밀 행정기구를 통해 불구이거나 지능이 모자라는 세 살 미만의 어린이들을 모아다가 안락사시켰다. 미국에서 안락사를 돕다가 징역살이를 하고 나온 미시간 주 출신 의사 케보키안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대형 종합병원에는 어려운 케이스들을 돕기 위해 목사, 신부, 스님 등 종교인과 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를 연구해 온 의사, 법률가, 환자권익 옹호원 등이 위원으로 포함된 윤리위원회(Ethics Committee)가 있다.

비바람 치는 날이 없는 삶은 없다. 삶의 질적인 의미나 죽음의 시기는 타인이 등급을 매기거나 결정할 일이 못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생각해 본다. 그것이 동물일지라도.

동물복제와 미래의 먹거리 2007

파란 눈에 금발인 나의 동료의사 에디는 담배도 안 피우고 살도 찌지 않았지만 41세에 심장마비가 왔다. 그의 아버지는 41세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는데 에디는 조치를 받고 지금도 잘 살고 있다. 그러던 에디가 ‘복제 양’ ‘복제 인간’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으며 나에게 물었다. “모니카, 네가 새 심장이 필요하다면 너와 똑같은 모니카가 하나 더 있으면 아주 쉬울텐데. 어떻게 생각해?” 줄기세포 이용의 단계를 훨씬 뛰어 넘은 복제를 생각하며 에디와 나눈 대화이다.

1996년에 복제로 만들어진 양 ‘돌리’는 6살짜리 어른 양의 유방세포를 유도해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젖가슴이 크기로 유명한 가수 돌리 파튼의 이름을 따서 돌리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러던 돌리가 6살 때 안락사를 받았다. 돌리의 폐질환과 관절염 때문에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결론이 내려져 12년이 평균수명인 다른 양들보다 절반 밖에 못 살고 죽은 것이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같은 종류의 동물 사이에 만들어진 복제가 아니고 인간의 유전인자를 양의 DNA에 주입하여 만들어진 양 ‘트레이시’는 돌리가 만들어지기 6년 전인 1990년에 출생했다. 이 모두 영국 스콧트란드의 로슬린 연구소에서 한 일이다. 이 복제의 목표는 양의 젖 (milk) 에 인간의 유전병을 치료하는데 쓸 수 있는 특수 단백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동물의 복제는 인간의 먹거리 증산을 위한 목적이 많지만 희귀병을 고치기 위한 실험용으로도 행해지고 있다. CNN Library에 의하면 1952년 개구리 알에서 핵을 빼내고 그 자리에 배아 세포를 바꿔 넣어 올챙이를 만드는데 성공한 경우를 시작으로 23 번에 거친 복제에 관련된 보고를 받았다고 쓰고 있다. 입증이 됬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참고로 트레이시를 만든 영국 로슬린 연구소의 존 클락은 2004년에 52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이제 우리들의 밥상에는 이처럼 복제해서 만들어진 동물들의 고기나 유전적인 변화를 조작하여 상품화 된 생선이 오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동물의 고기와 생선은 복제공장에서 대량생산 되어 우리들의 음식으로 마켓에서 팔리게 될 것이다. 복제와 유전변화를 추구하는 연구가 빠른 속도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많은 돈이 투자되고 있다.

‘미친 소병’이 왜 생겼는가를 생각해 보면 순리를 어긴 과학의 응용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준다.

‘미친 소병’의 원천은 치부에 눈이 어두운 농축업자들이 소를 빨리 자라게 하고 살찌워서 맛진 육질을 만들려고 채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의 살의 일부를 먹였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동물과 인간을 복제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인 면을 들여다본다면 발생할 지도 모르는 어두운 면이 우려된다. 체계적이며 조직적인 능력이 있는 인간들은 질적인 삶의 향상, 질병의 퇴치라는 좋은 목적으로 복제범위에 한계를 두어 법적으로 이것을 허락한다해도 헛점을 이용해서 조직적인 범죄를 초래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 뜻에서 신성한 생명을 무시하고 자신의 치부와 자신의 건강만을 위해서 벌리는 인간의 조직적 범죄에 대한 예를 들어 보자.

한국이 가난할 때 한국 사람들은 콩팥을 일본사람들에게 이식용으로 팔았다. 자선의 의미에서 장기를 기증하는 것이 아니었고 돈 때문에 장기를 팔아야 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장기를 샀고 건강을 회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얼마나 정확한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중국에서는 사형수의 장기이식을 정부가 미리 주선한다고 한다. 건강한 몸에서 떼어 내어 줄 수 있는 장기는 많다. 사소한 일로 범법을 해도 중형을 받거나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다.

우리들이 고기를 싸게 또 많이 먹기 위해 동물 복제로 대량생산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어떤 특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인간 복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장담 할 수 없다.

내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다른 생명이 희생되고 내 식구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다른 생명체에 처절한 아픔을 가해도 좋다면 이것은 의학의 본질적인 뜻을 어기는 것이다

냉동 배아의 운명 2013

“엄마, 나 너무 추워!” 냉동실에서 외치는 아이의 소리를 이 여인은 들었던 것일까?

그녀의 머리는 복잡하다. 생각을 할수록 마음은 깊고 어둡게 가라앉는다. 며칠 전 ‘배아 저장 회사’에서 고지서를 받고 그곳에 몇 년째 저장되어 있는, 그녀와 남편이 준비해 놓은 ‘배아’들의 운명을 결정하기로 했던 것이다.

배아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수정체로 사람으로 될 첫 단계의 작은 ‘세포 공동체’라고 말하면 이해하기 쉽다.

사연은 이렇다. 7년 전 30대 중반에 들어선 이 여인과 그녀의 남편은 반복되는 임신 실패의 해결책으로 체외 수정을 시도했다. 이것 또한 쉽지 않았다. 몇 번 실패를 거듭한 후 성공적으로 지금 다섯 살인 웨스타를 얻게 되었고 그 때 수정해 놓은 몇 개의 배아는 ‘배아 저장 회사’에 의뢰해서 지금껏 얼린 상태로 저장돼 왔다.

해가 갈수록 고지서가 부담스럽고 비용이 처음 계약 때보다 자꾸 비싸지는 것도 힘들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와 남편은 얼린 배아들을 녹여 두번째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어쩐지 해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여러번의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어려움과 성공한다해도 실상 두번째로 태어날 아이는 웨스타와 같은 때 만들어졌으니 쌍둥이어야 할 것 같은 혼돈도 왔기 때문이다.

이제 이 냉동 상태에 있는, 웨스타처럼 아이로 성장할 수 있는 배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린애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줄 것인가. 만약 성공적으로 배아가 태아가 되고 모르는 여인의 자궁 안에서 잘 자라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면 어떻게 되나? 이 아이는 웨스타와 형제다.

웨스타와 미래의 아이(들),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실험용으로 쓰라고 기부하는 것은 바람직한 결정일까. 그것은 너무 잔인하다. 이젠 배아들은 이 여인에게는 더 이상 몇 개의 세포 공동체가 아니다. 웨스타의 분신들이다.

어느 하나 쉬운 대답이 없다. 혼돈스럽다.

얼마 전 자궁암에 걸린 젊은 여성이 암 치료로 인해서 난소와 자궁을 잃을 처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 이 젊은 여성에게는 난소나 배아를 저장하는 옵션이 있었다.

이렇게 웨스타와 같은 또 이 젊은 환자가 성공률이 난소저장보다 높은 배아를 만들어 저장해 놓는다 해도 훗날 법적으로 생길 수 있는 변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혼이 한 예이다. 이런 경우 배아들의 운명에 대한 법의 해석은 각 나라마다 다르다. 여인이 저장됬던 배아를 녹여서 임신하여 출산하고 싶어도 정자를 기부했던 상대편이 거부하면 저장 되어 있는 배아는 세상 빛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는 웨스타의 분신처럼 만들어진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웨스타의 분신들이 얼려진 상태로 언젠가는 쓰여 질 때를 기다리며 저장되어 있다. 신경이 생기기 전이라 느낌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웨스타의 엄마가 들은 것처럼 그들은 ‘엄마, 추워!’를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위로 2007

공항으로 가는 길은 붐볐지만 날씨는 화창했다. 조카가 비행시간에 맞게 우리를 엘에이 공항으로 대려다 준 오후였다. 조카의 차 백미러에는 두 달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제임스의 사진이 들어 있는 ID Card가 걸려 있었다.

사진 속의 제임스의 얼굴은 살아 생전 모습 그대로 잘생겼고 정직했다. 그의 얼굴은 운전하는 조카에게로 자꾸 달랑거리면서 향했다.

제임스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를 가끔만 봐왔던 나조차도 슬픔에 싸였는데 조카가 모든 활동을 접고 두문불출하면서 괴로워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둘은 삶의 많은 부분을 함께 나누었고 비슷한 생활관을 갖고 있었고 세상에 대한 편견(?)조차도 비슷했다.

제임스가 죽은 후 며칠 동안 조카는 울기만 했다. 조카 주위에 있는 우리도 함께 울었다. “너무 억울해, 이모” “그래, 참 억울하기만 하구나. 세상은 공평한 것 같지 않게 만 보인다.” “이모, 너무 아까워” “그래, 정말 너무 아깝다.”

내가 죽음을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랴. 많은 환자들이 세상을 뜨기 전에 가족 친지들과 작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의학도이고 종교인인 나는 죽음의 문을 넘어 선 환자들이 평화의 세상에 있을 것으로 믿지만, 이 땅에 남아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실감, 허무함과 아픔이 있음을 잘 안다. 자신의 삶의 일부였던 사람을 영원히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게 된다는 진리는 허무하기 짝이 없다. 더더구나 제임스처럼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사고나 전쟁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뜨거나, 불치병으로 많이 아파하다가 죽을 때 남은 가족과 친지들의 고통은 크고 그 상처는 많은 시간이 걸려 아문다. 아니, 영원히 아물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말로도 번역(류해욱 신부 번역) 출판 된 나오미 레이첼 레멘이라는 의사가 쓴 ‘나의 할아버지의 축복’ 이라는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융이라는 정신과 의사는 꿈 분석의 대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어느 정신학 모임에 갔을 때 어떤 사람이 자신의 꿈을 해설받고 싶어 질문을 했다. 그가 꿈마다 나치의 학대로 시달린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이 의사가 말로 대답을 하는 대신 모든 청중 즉 의사와 정신학자들을 일어서게 하고 그 꿈을 묵상하며 몇 분 동안 서있도록 했다. 그 꿈을 머리로 해석하는 것 보다는 일어서서 말없이 묵상하면서 고통에 동참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심한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또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로 위로 한다는 것은 의미가 거의 없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한다는 것은 사치이다. 그저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아픔 안에 함께 있어 주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된다. 우리는 그래서 상담을 권한다. 상담을 하는 중에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보게 되며 서서히 치유가 가능하게 되는 것을 알고 있다. 상담 중에 의사는 말하기 보다는 주로 듣는다. 연설을 피한다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고통 중에 있는 당사자가 그 깊은 내막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조카에게 제임스의 사진이 든 ID Card를 치우라고 말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그 카드는 치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