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버려지고 있는 한글

올해 여름은 크고 작은 일들, 슬프고 기쁜 일들로 점철되고 있다. 한국과 엘에이에서 당면해야 했던 대소사(大小事)가 여름날 소나기처럼 몰아서 쏟아져 내렸다. 또 날씨는 어떤가.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데, 엘에이뿐 아니라 장마철인 한국은 폭염으로 앓고 있었다. 이 심한 몸살은 달포 후, 노동절을 지나, 가을에 들어서야 치유가 되려나 싶다. 그때쯤이면 끝내지 못하고 있는 일들이 대충 정리되고, 나는 숙제를 마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보냈던 3주(週)는 좀 길었다. 덕분에 여러 곳을 둘러 볼 수는 있었다. 금수강산 조국의 아름다운 자연은 조작됨이 없이 여전히 수려했다. 현대감각을 살려 지은 박물관들은 역사적 문화유산을 조심스레 모아서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전시품들은 많은 정보를 나누어 주었다. 고속도로 터미널에는 간이(簡易) 책방도 있었고, 입맛대로 사먹을 수 있는 각종의 음식점들이 있었다. 식구마다 다른 음식을 사 먹어도, 한곳에서 계산할 수 있는 씨스템 또한 얼마나 편리했는지 모른다. 거기에서 사 먹었던 라면, 호두과자 등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특수 품목일게다.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스마트 폰을 통한 소통방식이었다. 지방 특유의 음식 뿐 아니라, 저렴한 민박소, 모텔에 대한 정보를 스마트 폰으로 얻을 수 있었다. 대나무로 유명한 나의 혼전 성씨인 밭 전(田)씨의 본향인 담양에 들려서 대나무 통에 만든 밥을 먹어보기도 했다.

IT 가 생활화 되어 편리하고 많은 정보를 찾아가며 살아가는 사회이어서, 여행도 쉽게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표기 문화는 혼동스러웠다. 도로명은 한국 이름을 지키고 있었고, 고유명사인 길 이름 밑에 영어로 한글 발음에 따라 그대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건물 이름, 음식 종류 등의 표시 방법은 그야말로 한글, 한문, 영어를 섞어서 쓴 ‘짬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변천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오랫동안 중국의 영향을 받아왔던 우리나라는 한문이 국문이 된 셈인데, 국한문혼용체 (國漢文混用體), 한영혼용체(漢英混用體), 국영한문혼용체

(國英漢文混用體)를 쓰던 기간을 거쳐 1970년 대에 ‘한글전용 5개년 계획’에 따라 모든 표기를 한글화 하게 되었다. 타이프라이터에 이어서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가로쓰기도 편리한 한글이 빨리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컴퓨터에서는 한글, 영어와 한문을 모두 찾아서 쓸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한글전용 폴리시에 따라 외국어, 한문은 괄호안에 표기해서 뜻을 전할 수 있다. 좋은 정책이다. 그러나, 한문을 배우지 않은 젊은 세대와 영어를 모르는 사회 구성원들은 어떻게 뉴스를 접하며, 간판이나 음식 메뉴를 이해할지 궁금하다. 표기법만이 문제가 아니다. 신조어가 이슈로 다가온다. 나처럼 한문과 영어를 배운 사람들도 합성된 신조어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음식점을 예로 들어본다. ‘영업 중’이라고 쓰는 대신 영어로 ‘OPEN’, ‘어서 오세요’ 대신에 ‘Ice(not Nice) to Meet You’ ‘Take Out’ ‘닭 프라이드’ ‘Garlic Soy Sauce’, ‘Spicy’ ‘추가 반찬은 셀프’, ‘100세 미만은 추가 반찬 셀프’, ‘물은 셀프’, ‘핑크솔트’ 등이다. 그 외 한국어+한국어, 또는 한국어+외국어를 복합한 후, 첫짜 또는 뒷짜를 빼어서 합성어를 만든 말들이 많았다. ‘빙맥’(빙수+맥주), ‘치맥’(닭의 영어 치킨+맥주), ‘돈치킨’등이 그 예이다. 올해 외국어와 한국어를 복합해서 만든 신조어 300여개를 자신의 블록에 포스트한 사람도 있다.

한글이 말살될 번 했던 일제 강점기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우리말을 지켰다. 지금 한국은 자진해서 우리말을 버리고 있다.

이 미국에서는 여러 한국인 디아스포라 단체들이 열심히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혈통에게 심어주고, 비혈통에게 알리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국어진흥재단은 미주 한국 교육원과 함께 정규학교에 한국어를 세계언어의 한 종목으로 넣기 위해서 오랫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현재 200여개가 넘는 미국의 정규 초중고교에 한국어 클래스가 있다. 이번 달 8월에는 엘에이 두 학교에 한국어반이 개설된다. 또 230여개의 주말 한국학교는 한국혈통의 차세대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

AP Korean이 만들어지고, 한국어를 배우는 어린 학생들은 AP Korean 이라는 목표가 있어서 자신의 공부에 의미를 부여한다. 따라서 한글과 한국문학이 대학과 대학원에서 많이 선택되어지고, 언젠가는 한국어로 쓰여진 문학 작품들이 노벨 서열에 올라갈 것이다. 스포츠와 미디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국위 양상은 드디어 한글을 통한 문학으로도 자연스레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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