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모니카 수필가
기사입력 2025-04-06 [18:20]
이번 동남아 여행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시작해서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를 거쳐 타일랜드 방콕에서 끝났다. 타일랜드가 동남아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유럽의 식민지 화염을 피한 나라라고 세계 역사 시간에 배웠을 때,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한국은 같은 시대 왜 일본 제국주의 확장의 시퍼런 칼날 아래에서 처참한 희생을 당하고 있었을까. 태국은 운이 좋았다기보다 유럽의 무역 거래상들에게 먼저 투자의 문을 열었고, 비즈니스 협상을 하면서 외교적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국의 자원을 빼앗고자 하는 계획이 성숙해지기 전에 먼저 현명한 처리를 한 셈이었다. 그런 면에서 지도자의 지혜와 역량이 존경스러웠다.
이번 여행에서 또 알게 된 사실은 세계에서 쿠데타가 가장 많았던 나라 중 하나가 태국이라는 점이었다. 태국의 치앵마이 대학 폴 체임버스 교수에 의하면, 1932년 혁명 이후, 약 30번에 가까운 쿠데타와 17번 정도의 개헌이 있었다고 한다. 성공하기도 하였고, 실패한 적도 있었는데 이 교수의 의견에 많은 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쿠데타는 반정부 시위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1932년 혁명 때,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민주주의 체제를 갖추었는데 여러 쿠데타 중에도 왕실은 지켰다고 한다. 길거리 곳곳에서 현 국왕 부부의 사진이 들어간 빌보드를 볼 수 있다(사진 참고). 국왕에게 불미스러운 발언을 하면 불경죄로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21세기에 아직도 국왕 불경죄로 처벌을 받는다니 아이러니할 뿐이다.
한국이나 미국의 대도시 중심가처럼, 태국 수도 방콕은 번잡했다. 교통체증이 심했다. 승용차, 오토바이, 툭툭이라는 휘발유로 움직이는 이 나라 특유의 신식 인력거가 거리를 메운다. 여러 민족이 섞여 사는데, 이곳에도 중국인들은 그들의 타운을 만들었다. 방콕의 차이나타운은 삼팽 지역 차이나타운이 유명하다. 한문으로 된 간판이 가게 대부분에 붙어 있다. 한자는 눈에 익고, 이해할 수 있어서 편했다. 개발도상국 당시에 한국이 그랬듯이, 이곳에는 정찰제가 없다. 부르는 게 값이다. 물건값을 부풀려 부르기 때문에 무조건 반절 정도 깍은 뒤 흥정해야 한다고 가이드가 귀띔해 주었다.
필자가 세계 역사를 배울 즈음에 `콰이강의 다리`, `007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라는 영화와 `왕과 나`라는 뮤지컬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모두 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었다. 콰이강의 다리는 1962년쯤 한국에서 처음 개봉됐다. 일본의 남방작전…콰이강과 강을 안고 있는 두 계곡…두 뭍을 잇는 다리…다리를 만들고 철도를 깔아야 하는 영국인 전쟁 포로들…뙤약볕…노역…. 태국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주제로 한 영화가, 어린 우리들을 감동케 했었다. 우리 조상들이 일제 강점기를 겪었고, 그들이 겪은 후유증이 그대로 우리들에게 전달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특히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될 당시 한국은 반일 사상이 팽배했던 때이어서 더욱 공감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일본의 남방작전을 통해 소위 `대동아 공영권`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궁극적 목적지 인도에 도착하기 위해 병력과 고무, 석유 같은 보급품을 인도 근방 버마 (현재 미얀마) 북쪽까지 날라야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약 400킬로미터에 걸쳐 철도를 건설해야 했다. 이를 위해 일제는 약 6만명의 전쟁포로와 일반인들을 부역시키었다. 그 과정에서 약 1만3천명이 죽었다고 한다.
콰이강은 기차 노선의 동쪽 땅에 있다. 남쪽으로 흐르는데,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 전, 방콕 근처에서 방향을 급격히 튼다. 기차가 이 지점을 통과할 수 있게 하려면 먼저 다리를 건설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영국군 포로들이 노예처럼 착취당했다. 그 비참한 이야기를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가가 썼다. 그는 인도차이나 고무공장을 운영했던 사람인데 자유 프랑스 의용군으로 싱가포르, 미얀마, 중국 쿤밍, 인도에서 근무하다가 2년 동안 일본군 포로로 잡혀 살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 상을 모두 휩쓸었던 `왕과 나`라는 영화와 뮤지컬의 내용이 역사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태국에서는 출판 금지이고, 뮤지컬이나 영화 상영도 역시 금지되어 있다.
어렸을 때 영화를 통해 연결됐던 태국과의 인연은 뉴욕주에서 공부를 마친 후 엘에이에 정착하면서 다시 시작됐다. 태국 출신 암 환자들은 필자가 한국 사람이어서 좋다고 했다. 동양인이라는 공통 분모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태국산 알록달록한 스카프를 선사하거나, 닭고기를 찹쌀과 바나나 껍질에 싸서 쪄서 만든 태국산 만두를 건네곤 했다. 나는 그들의 음식에 매료되었다. 쌀로 만든 국수를 코코넛 주스와 카레에 비벼 만든 파타이, 이란식으로 카레를 섞고 변형해서 만든 마싸만 카레 접시가 맛있었다.
아름답고, 푸르고, 귀해서 보관함에 다시 넣어두고 싶은 기억들이다. 이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 태국 여행은 지구 반대편이라는 먼 거리라는 단점과 습하고 무더운 기후라는 악조건들을 뛰어넘게 했다. 다녀오기를 잘했다. 태국은 나에게 인연이 깊다면 깊은 나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