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읽는 동화] 낡은 책상

아빠가 나를 깨우셨어요. 나는 텔레비전 앞에서 자요. 우리 가족은 방 한 개짜리 아파트에 살아요. 방에서는 아빠랑 엄마가 주무세요. 나는 바닥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잘 시간이 되면 이불을 펴고 누워서 조금 더 텔레비전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아주 좋아요. 엄마도 저녁밥 만드시면서 간혹 눈을 내 쪽으로 돌리셔요. 텔레비전 방과 부엌 사이에는 문이 없거든요. 눈 나빠진다고, 뒤로 물러앉아서 보라고 하시고, 때로는 텔레비전 많이 보면 머리가 나빠진다고도 하셔요. 우리 식구들은 텔레비전 앞에 놓은 네모난 작은 탁자에 둘러앉아서 식사를 해요. 탁자가 식탁이에요. 탁자에서 숙제를 하기도 했어요. 책상이 우리 집에 오기 전까지는요.

엄마는 부엌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작은 냉장고가 있는 부엌을 항상 닦으세요. 부엌이 깨끗해야 내가 좋아하는 파파야 샐러드도 만들 수 있다고 하셔요. 파파야 샐러드랑 부엌 청소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이해 할 수 없지만요. 또 바퀴벌레는 더러운 곳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빠는 학교 정문을 지나, 옆길을 돌아서 학교 뒤편에 있는 운동장이 멀리 보이는 쪽 행길에 나를 내려 주시고 가셨어요. 길 건너편 은행 시계탑이 7시를 가리키고 있네요. 정문은 아직 꼭꼭 잠겨 있어요. 아주 캄캄해 보였어요. 우리 학교 운동장은 무지 커요. 학교 마당은 닭을 가두어 두는 닭장의 담장처럼 철망으로 삐~잉 둘러쳐 있어요. 행길에서 운동장까지 작은 골목길이 있어요. 나는 이 골목길을 좋아해요. 아니, 이 길 밖에는 철망이 뚫려서 만들어진 개구멍을 지나 운동장에 들어갈 수 없어요. 개구멍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나 봐요.

행길에서 게처럼 옆걸음으로, 어떤 때는 뒷걸음으로 철조망 개구멍 쪽으로 걸으면 앞으로 걷는 것 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려요. 아마도, 10분 정도는? 나는 이렇게 걷는 것이 아주 천재적이라 생각되어요. 친구들이 등교하려면 무지무지 긴 시간이 흘러야 하거든요. 아빠랑 엄마는 ‘금방’이니까 길가에서 학교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시지만, 아니에요. 난 뒷걸음으로 행길에서 부터 걸어서, 철망 개구멍으로 몰래 운동장에 들어가서, 볼 차기 하면서 친구들을 기다릴 거예요.

아버지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셔요. 6시 반에는 친구 아저씨를 픽업해서 이삿짐센터에 일하러 가셔야 해요. 아빠의 친구 아저씨는 자동차가 없데요. 오늘은 늦었다고 무척 서두르셨어요. 엄마가 그러시는데, 아빠는 이사 나가는 집에 가셔서 물건들을 싸고, 트럭으로 일단 옮겨 실은 다음에 운전해서 이동하신데요. 이사해서 들어가는 집에 도착하면 짐들을 모두 내려 주인이 원하는 방에다가 날라야 한데요. 어떤 짐들은 큰 가구라서 무겁데요. 긁히지 않게 포장을 잘해서 날라야 하고, 아빠는 아빠의 친구랑 함께 들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오늘 아침에도 나는 옆걸음, 뒷걸음질로 등교합니다. 댕그랑댕그랑 열쇠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면, 아빠랑 비슷하게 생긴 벤추라 아저씨가 먼발치에서 걸어 오는 것이 보입니다. 7시 45분이 되었나 봐요. 홈 룸 시간까지 45분이나 기다려야 하지만, 친구들이 그 전에 올 것이라, 기다리는 것은 문제없어요.

아빠는 어깨랑 허리가 늘 아프다 하셨는데, 이젠 이해가 되어요. 얼마 전부터, 저녁 식사가 끝나고, 엄마가 설거지하시는 시간에, 나는 아빠 어깨에 파스를 붙여 드리고, 안마를 해드리기 시작했어요. 얼른 나을 병이 아니라 하셨어요. 그래도 내가 파스를 붙여 드리고, 안마해 드리면 무척 좋아하셔요. 아빠 등 뒤에서 안마하는 내 손을 아빠는 앞으로 잡아끄시고, 손등에 뽀뽀해 주세요. ‘아이고, 이 작은 손이 아빠를 고쳐주고 있네. 우리 미겔이 많이 컸구나!’

엄마는 새벽 6시까지 식당에 일하러 가셔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식당의 부엌에서 일하셔요. 멀지 않은 곳이라고 엄마가 그러셨지만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해요. 새벽 시간이라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데요. 여섯 시 정각에 식당 부엌 앞에 도착하려면 매일 서둘러야 하셔요. 

출근하시기 전, 엄마는 아빠와 아빠 친구 아저씨의 점심 도시락도 싸 놓으셔요. 나는 학교에서 주는 점심을 먹어요. 엄마는 학교 점심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한다고 매일 말씀하셔요. 그래야 내가 아빠보다 더 키가 크게 자라고, 건강하다고 하셔요. 아빠는 배가 많이 나왔다고 엄마한테 자주 잔소리 들어요.

어제는 텔레비전 앞 책상에 앉아 숙제를 했어요. 숙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는 것이었어요. 다행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 ‘책상’이 생긴 후에 받은 숙제여서, 아주 빨리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울산광역매일 신문 202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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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부분은 원본: 신문 지면 관계로 짤린 부분임

어제는 텔레비전 앞 책상에 앉아서 숙제했어요. 숙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이라는 제목으로 써 가는 것이었어요. 다행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 ‘책상’이 생긴 후에 받은 숙제라서, 아주 빨리 글을 쓸 수 있었어요. 나는 이렇게 썼어요.

제목: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

이름: 미겔 산체스

날짜: 202543

내가 어렸을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은 트랜스포머이었다. 세 살 때에 찍은 사진을 보면 나는 트랜스포머를 가슴에 안고 있다. 나는 잘 때도,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할 때도, 트랜스포머가 없으면 그것을 찾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지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은 책상이다. 아빠가 이삿짐을 나르러 가셨을 때, 집주인이 버려달라고 맡긴 책상이라고 한다. 집주인의 딸이 어렸을 때 쓰던 책상이라는데, 딸은 틴에이저라서 큰 책상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많이 보인다. 모서리에 나무가 깨어진 부분도 있다. 그래도 나는 이 책상이 너무 좋다. 작은 의자도 함께 주셨다. 책상에는 서랍이 두 개나 있다. 붙박이 정리 수납장이 뒤쪽에 있다.

~! 정말 정말 멋지다.

친구가 준 여러 가지 딱지를 나누어서 정리하여 넣었다. 고모부가 주신 한국의 어느 대학에서 광고용으로 만든 학교 로고가 들어간 꼬마 메모 공책도 따로 넣을 자리가 생겼다. 수납장 위에 연필통도 놓았다. 그리고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아빠, 엄마랑 찍은 우리 가족 사진도 놓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물건은 이 낡은 책상이다. 나는 이 낡은 책상에 앉아 아빠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그리고 내 친구들의 이야기, 고모부의 선물 이야기도 쓰려고 한다. 그런데 아빠랑 엄마는 하루에 한 줄이라도 괜찮으니까 일기부터 쓰는 습관을 들이라고 하신다.

아빠 엄마에게 화낸 날은 어떻게 해?’

그것도 사실이니까 사실대로 쓰는 것이 중요해. 오늘 나는 엄마가 아주 미웠다라고 써도 돼.

나는 나의 책상, ‘낡은 책상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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