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읽는 동화] 낡은 책상 (III)

[어른이 읽는 동화] 낡은 책상 (III)

“어머나, 이 입술 좀 보세요! 꼭 봄에 새로 돋아난 꽃 순 같아요!”

“달꽃 입술을 닮았네요.”

아기는 눈을 감고, 하품을 길게 하였습니다.

“눈은 누굴 닮았을까 궁금하네요. 새순이를 닮았겠지요?”

신생아들은 눈을 떠도, 보지를 못한다고 의사 선생님이 이미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보기는 보지만 아주 희미하게 밖에는 볼 수 없어서 인식의 능력이 없다고 하셨거든요. 백일 잔치 할 때쯤 되면 주위 식구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고 낯가림할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리하르트 새순의 아버님이 아기를 조심스레 안으셨습니다. 어머님은 새순이 아빠에게 서두르라고 재촉하시면서, 옆에서 자기의 순서를 기다리시었어요.

“새순 리하르트를 처음 안았을 때와 같구나! 이 귀한 보배를 낳아 준 새순아, 달꽃아, 감사하다!”

리하르트 새순의 아버지는 아이의 뺨에, 당신의 뺨을 살짝 가져다 데시었어요. 그리고 뺨에 뽀뽀하였습니다. 새순이 아버지께서는 오늘 산모랑 손녀를 방문 오시기 전에 아주 꼼꼼하게 면도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아기에게 뽀뽀할 것을 속으로 몇 번이나 연습하였는지 모른다고도 하셨고요. 리하르트의 어머님은 달꽃 뺨에 키스를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어요.

“새순이의 딸이, 꼭 새순이 어렸을 때의 코를 갖고 있구나. 작고, 귀엽고, 앙증스러운 코였지. 달꽃아, 고맙다!”

새순이의 아기가 태어난 날에 저마다 가슴 깊은 곳 우물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청량하고 맑고 차가운 물을 두레박으로 퍼 올리었습니다. 새 생명을 바라보는 가족들은 탄성을 나누었고, 함께 기뻐하고, 또 서로를 축하했습니다. 새 생명은 얼마나 귀하고 부스러지기 쉬워 보이던지요! 나의 부모님들은 편찮으신 할머니를 뵈러 멕시코에 가셨기에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로 새순이와 통화하신 부모님들은 새순이 부부가 만든 기적은 산체스 가정의 축복과도 다름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님들은 ‘미겔은 언제나 이런 기쁨을 나누어 주려나…’ 하고 분명코 생각하시면서 말씀을 그냥 삼키시었을 것입니다.

새순이가 딸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과학 발달의 기적입니다. 또한, 새순이가 백혈병에서 완치된 것도 의학이라는 기적의 결과입니다. 더불어 새순이가 달꽃을 만나게 된 것도, 하느님의 특별한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새순이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날 자신이 없었습니다. 자기 삶에 분노했습니다. 입양아로 버려지었다고, 볼품없는 인생이라고 여러 번 되뇌었습니다. 또 신(神)은 자기를 미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새순이의 응원 부대인 부모님과 산체즈 가족들은 새순이가 바닥을 치고, 다시 용수철처럼 일어날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습니다. 낡은 책상에 마주 앉아 공부하던 우리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꿈은 우리를 세상으로 밀어내어 보내었던 것입니다.

백혈병 골수 이식을 준비할 때, 새순이 리하르트는 친족을 찾는 데 실패했습니다. 한국 대사관, 영사관,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의 시민단체, 한국어로 출판되는 신문을 통해서 골수를 기증할 한국분을 찾는 호소문도 내었습니다. 기적적으로 DNA가 들어맞는 어느 익명 기증자의 도움을 받아, 새순이는 살게 되었습니다.

키모데라피를 받을 때,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적인 골수와 남자의 경우에는 정자까지도 약화하거나 죽인다고 합니다. 새순이의 담당 항암 전문의사 선생님은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새순이의 정자를 채취하여, 얼려서 보관해 둘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새순이는 거절하였습니다. 자기 혈육을 가질 것을 원해 본 적이 없었고, 자신도 입양되었으므로 필요하면 아이를 입양하면 된다는 것이 그 이유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도 하니까, 자기의 제안을 재고하여 보라고 하셨습니다.

새순이의 응원 부대인 부모님, 산체스 가족들은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새순이 리하르트는 1:5로 판정패한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순순히 승복했습니다. 그리고 새순이와 나는 이 모든 것을 잊고 살다가, 벨기에 이름이 한국말로 달꽃이라고 하는 친구를 만난 후에 기억했습니다.

어느 여름이었습니다. 새순이는 한국의 어떤 입양 관련 단체와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고아가 아닌 나는 함께 할 수 없는 여행이었지요. 이 때, 양부모님들의 뜻에 따라, 자기를 낳아 준 부모를 찾아보려고 입양기관들을 방문했고, 혈액 검사도 받았지요. 백혈병 걸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새순이와 맞는 어른들은 데이터베이스에 없었습니다.

프로그램은 한국을 고궁, 한글박물관, 국립 박물관, 전쟁기념관, 남산 타워, 명동거리. 광장시장, 터미널 음식점 같은 곳 방문을 포함했어요. 길거리 음식도 먹어 보았다 합니다. 새순이는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초청되어 온 다른 입양아들과 함께 이동하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유럽 벨기에라는 나라에서 온 달꽃을 이때 만났습니다.

새순이와 달꽃의 결혼식 때, 산체스 집안 식구들은 낡은 책상을 깔끔히 닦고, 거친 부분은 사포질하여서 매끄럽게 만들고, 그 위에 바니쉬를 칠하여서 재단장했습니다. 그리고 색동 포장에 커다란 빨강, 파랑 한국 태극기 문양의 리본으로 포장하여서 선물하였습니다. 새순 리하르트와 나의 삶을 엄격히 숙고하게 했던 기적의 책상, 그 낡은 책상이 앞으로 새순이 리하르트의 아기를 어떻게 인도할지 궁금하여집니다.

이 글의 일부가 울산광역배일에 발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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