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트로스, 무의식에서 깨어나다 Albatross

알바트로스라는 새는 남극이 나에게 생소한 것처럼, 생소한 새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알바트로스는 아주 오래 오래 전부터, 내가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남극 도착 후, 알바트로스 새를 접하면서, 어딘가 깜깜한 곳에 숨어 있는 내 무의식의 터널을 며칠이 걸려 찾아가 보았다. ‘새’ 와 ‘문장’이 있던 집, 그 곳을 바라보며 스켓치를 하던 막스 데미안이 숨쉬던 책, 헤르만 헤세의 단편 소설 ‘데미안’이었다.

수저계급론 그리고 우크라이나

코비드 19사태는 끝날 듯, 끝날 듯하면서도 지속 되고 있다. 될 수 있으면 외출을 금하다 보니, 나날이 새로운 양상으로 틀을 잡고 있다. 평소에는 안 하던 체조도 하고, TV를 보거나, 유튜브를 통해서 요리하는 법을 보고, 때로는 용기를 내어서, 조리 실험도 해 본다.

TV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젠 넷플릭스 고객이 되었다. 한국 드라마에 맛 들이고 있다. 아름다운 시골 경치, 두바이를 능가하는 화려한 서울의 하이라이즈들, 서울의 야경 등에 감탄한다. 다인종 가족과 성 소수자를 포용하는 종류의 드라마 내용은 참신해 보인다.

그런데, 가끔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는 외국어, 한국어와 영어를 합친 신조어들이 TV와 신문에 등장하곤 한다. 때로는 합성 후 몇 글자를 생략한 예도 있다.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고 자꾸 한국말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해서 안타깝다. 내 노파심만은 아닐 것이다.

생소하기도 하고, 자주 쓰이는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 이 말은 프랑스 말인데,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채 한국에서, 그리고 영어로 번역되지 않은 채 영어권 나라인 미국에서 자연스레 쓰이고 있다. 프랑스가 유럽에서 오랫동안 패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말과 프랑스 문화가 영국의 상류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이 단어도 그냥 쓰이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원래대로 살아 남아있다.

‘노블레스’는 영어로는 ‘노블(noble)’이고, 귀하다는 뜻이다. ‘오블리주’는 ‘obligation’으로 책임이라는 뜻이다. 복합단어의 의미를 풀이하여보면, 귀족 층은 일반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면서 살기 때문에, 그 특권에는 의무가 따른다는 뜻이다. 알고 보면 멋진 말이다. 이 멋진 뜻은 기원전 600 년 경, 호머의 ‘일리아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외국어와 외국어+한국어 병합 신조어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순수한 한국어로 ‘수저’에 관한 단어들이 사회 계급층을 지칭하는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나무 수저, 흙수저. 수저 타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새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수저 계급제도가 새로운 한국인의 신분질서로 부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저계급론은 경제적인 수직적 관계를 지칭하는 뉘앙스가 진하다.

계급과 신분이 우리들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계급이란 신분이나, 재산, 직업, 교육 정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드는 것이 집단이라고 하는 정의를 읽었다. 그런데 한국에는 계급제도가 없지 않은가? 계급제도는 일본강점기 때에 한번 말살되었고, 육이오 한국전쟁을 치루면서 완전히 바닥으로 허물어져 없어졌던 것이 아닌가?

계급이나 신분은 사실상 불평등을 의미하는 단어로써, 계급은 법제적으로 정해진 사회의 불평등이고, 신분이란 법제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의식적 불평등이라고 한다. 미국이나 한국은 법적인 불평등은 없지만,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불평등의 관념이 아직도 몸 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수저 계급제도가 그것이다. 수저계급론의 시초는 미국이다. 아무개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표현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과연 어느 수저 계급에 속할까? 어디에 속하던지 상관없이, 나는 동수저가 좋다. 동(銅)은 광물질 브라스(brass) 또는 커퍼(cupper)를 뜻하는데, 여기서 한국 사회에서 쓰는 동수저라는 말 속의 동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뜻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인류가 발견하고, 발전시킨 물질 중 가장 획기적인 물질이다. 약 110년 전에 영국인 헤리 브리얼리(Harry Brearley)가 녹슬지 않고 단단한 총기를 만들려고 우연히 크로미움(동위원소 Cr)을 철에 섞으면서 발명된 것이다. 철은 기원전 고(古)시대부터 쓰였던 것으로 오래 쓰면 녹이 쓴다. 여기에 약 11% 분량의 크롬을 섞으면 녹 쓰는 것도 방지하고, 단단하고, 오래갈 뿐 아니라, 섭씨 1200도 정도까지의 고열을 견디며, 값도 무척 싸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물질이 무척 위생적이라는 것이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의학기구, 쿡킹용기, 오븐, 자동차 부속품, 건축자제로 다양하게 쓰인다. 그 뿐 아니라 스테인리스 스틸은 맥주 발효 통, 비행기, 잠수 TV, 세탁기 등 어떤 물질을 장시간 동안 저장해도 부식하지 않는 유용하고 좋은 물건이다. 무엇보다도 의학기구의 대부분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다. 그 예로 자궁암 근접치료를 하기 위해 자궁과 자궁경부에 넣는 기구를 들 수 있다. 오랫동안 수 천 명의 환자들을 위해서 사용하고, 고열 소독을 한 후에도 휘지 않고, 견고하며 위생적이다. 이 물질은 발명되자마자부터 의학 기구를 만드는데 쓰였다. 현재 중국이 최대 스테인리스 스틸 생성국가(1,000 million)로 2위인 인도보다 10배를 만든다.

귀족 계급이 없어진지 오래되지만 의식적 불평등 속에서 살고있는 지금, 어떤 사람들과 계층이 노블레스에 속할까? 여기에 나의 모국인들이 즐겨 쓰는 수저계급론을 접목해서 생각해 본다. 이들 중에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수저 계급은 누구일까? 금수저와 은수저까지일 것 같고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만, 동 수저급, 나무 수저 계급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얼마든지 실천하면서 살수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경제적으로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도울수 있으면 의무의 완수가 될 것이다.

한국전쟁을 겪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미국에 사는 한국인 교민들은 우크라이나를 돕는 데 적극적이다. 일부에서는 우크라이나에 사는 한국 교민들을 돕고, 나의 모교 고등학교 동문회는 크게 작게 성금을 모아서 미국에 유학중인 우크라이나 출신 학생들에게 생활보조금을 모아 주면서 돕고 있다. 많지도 않고,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72년 전, 육이오 전쟁으로, 공부할 시기를 놓치고 대학 진학이 불가능했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미국 유학의 길을 열어 주었던 미국의 시민들이 실행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다. 그들은 거부가 아닌 우리들처럼, 평범한 미국 시민들이었다.

장애물 경기

****이 글을 쓰게 한 플랜트****

장 교수님*, 벼르고 벼르던 분갈이를 했습니다. 실내에서 근근히 목숨을 이어왔던 이 식물의 이름을 알지 못합니다만 아열대 과(科)에 속해서 일 년 내내 푸르고, 잎이 두껍고, 길쭉하고 단단합니다. 잎은 가을에만 지지 않고, 때가 되면 누렇게 생명을 잃어갑니다. 사람과는 달리, 세상 빛을 본 순서대로 생명을 돌려보냅니다. 숨 없는 잎은 그냥 몸체에 오랫동안 붙어 있지요. 나무라고 부르기에는 작고, 풀도 아니고, 꽃을 피우지 않기에 화초라고 부를 수가 없네요.

이 식물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식물은 고통의 삶을 끈질기게 잘 버티었어요. 생명의 신비로운 힘에 대해서 숙고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교수님의 뜻깊었던 생애의 시작 부분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연관을 짓게 된 것 같습니다. 나에게 병이라면 병일 수도 있는, 사고비약(思考飛躍: flight of idea) 증상이 발동한 듯 합니다. 제 생각이 외람되다면, 용서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이 플랜트가 메마른 흙 속에 뿌리를 박고, 갈증을 참으면서 사 반세기를 살아 남은 흔적은 꺼끌꺼글하고 울퉁불퉁한 거친 표면, 굽고, 뒤틀린 줄기, 하늘 대신 땅을 보고 있는 머리채에서 볼 수 있지요. 큰 딸아이에게서 나는 이 식물을 입양했습니다. 입양된 내 집에서도 오늘 분갈이를 받을 때까지 힘겹게 몇 해를 더 지났습니다. 분갈이라는 밀렸던 숙제를 하고 나니, 나는 비로소 통회의 고백성사(告白聖事)를 하고, 보속(補贖)을 끝낸 기분입니다. 이 플랜트가 인생은 ‘장애물 경기’라고 표현했던 당신을 만나보라고 나에게 말합니다.

이 플랜트가 인도 한 곳은, 은퇴하면 읽는다고 쌓아 둔 책더미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라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소아암 전문의였던 레이첼 나오미 레멘 박사가 쓴 ‘Kitchen Table Wisdom’을 예수회 신부이자 서강대 교수, 당신이 암으로 입원해 있을 당시 원목 사제로 활동하던 당신의 후배인 류해욱 신부가 번역한 책이지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당신에게, 이제야 책을 통해서 조금 알게 된 당신에게, 세상은 당신을 절대로 잊을 수 없고,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졌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이 책은 당신이 쓴 것도, 당신이 번역한 것도 아니지만, 당신의 혼이 듬뿍 묻어 있기 때문이어요. 레멘 박사가 쓴 원서에는 이 한국어 번역본의 서문에 언급된 당신에 관한 이야기가 없지요.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고 나서 3년이 지난 후, 당신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당신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습니다. 인터넷에서 당신에 대한 글, 사진들을 찾아 읽었고, 보았습니다. 소아마비라는 전염병이 하필이면 한 다리가 아닌, 두 다리 모두를 강타했는지 안타깝더라고요. 그런 경우는 드문데 말입니다. 신체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하는 일상의 일들, 학교 활동이 도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겠지요. 당신의 발이 되어 화장실까지도 안아다 주셨다던 어머님, 신체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상급학교 입학원서조차 거부당하였을 때마다 필사적인 노력을 하시었고 방파제가 되어 주셨다던 서울대 영문과 교수이었던 아버님, 사회정의가 없는 미개했던 한국 사회와 한국 교육계의 관습을 과감히 깨 주신 파란 눈의 서강대학 영문과 학과장 (고) 브르닉 신부님(미국명: Jerome E. Brewing), 그리고 앞서가던 서강대학이야말로 당신이 장애물 경기를 훌륭히 해 낼 수 있게 함께 했습니다. 무엇보다, 선수이었던 당신은 횃불을 들고, 멋있게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이쯤에서 나는 다음 이야기를 꼭 쓰고 싶습니다. 정의나 평등에 둔감했던 교육자들, 그들의 군집단체인 교육계의 미개함과 그들이 행하였던 행패에 분노하는 나 자신을 봅니다. 신체장애를 가졌다고 입학원서조차 제출할 수 없었던 한국의 씨스템, 교육자로서 그런 부조리함을 스스로 교정하지 않았던 비겁한 사람들의 온상이었던 나의 모국 한국이었습니다. 작은 예를 들어봅니다. 서강대학에서 체육이 필수 교양 과목이었던 당시, 두 다리를 쓸 수 없는 당신에게 체육은 할 수 없으니, 앉아서 수업을 참관하여야 학점을 준다고 했다면서요? 그런데 체육관은 어디에 있었나요? 교정 외곽, 비탈 위에 있다 했습니다. 비 오는 날에, 층계도 없는 미끄러운 둔덕을 목발에 의지해서 땀흘리며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다가, 나도, 브르닉 신부님처럼 울분했고, 신부님처럼 울었습니다.

척박한 환경을 겪어내며 살아 준 나의 플랜트가 저를 침묵하게 합니다. 희망과 용기를 날렀던 전사(戰士)이었던 당신은 서강대학 영문과 교수이자, 학자, 수필가로서 차세대 후배들에게 퍼즐을 맞추는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도 이 길고 험한 장애물 경기에서 우승해서 승리의 횃불을 높이 처들고, 언젠가 내 고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곧 준비를 시작하려 합니다.

*(고) 장 영희 (1952-2009) 서강대학교 영문과 교수, 수필가

새 집을 사다

드디어 미루었던 일을 했다. 숙제를 끝내고 나니 후련하다.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숙제는 우리 부부가 지낼 마지막 집을 사는 일이었다. 집을 사기로 마음을 먹고, 어느 동네에 살지, 어떤 크기로 살지 대충 의논하고, 직접 방문하여 보니 좋았다. 즉시 계약서에 서명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쁘기까지 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노력하면 대부분 해낼 수 있는 것이 또한 세상 일이다. 그러나 부모가 나에게 묻지 않고 나를 세상으로 데리고 나온 일, 세상과 하직하는 날짜를 조물주께서 나에게 의논하지 않고 정하시게 될 상황, 그런 일이 벌어진 다음, 영(靈)이 떠나버린 나의 몸을 내자신이 처리하고 떠날 수 없다는 불가피한 사건—이 세 가지는 이리저리 들여다보아도 불공평하다.

모든 사람은 내 의사와 관계없이 세상에 온다. 그래도 우리 모두는 열심히 살고, 그러려고 최선을 다한다. 간혹 피할 수 없는 불상사를 당하기도 한다. 내가 당할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다. 건강할 때, 정신이 있을 때, ‘사전 연명 의료 지향서(’Advanced Directive’)를 만들어 놓는 것은 강조가 필요 없을 만큼 중요하다.

예기치 않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고, 뇌출혈이나 뇌일혈로 기억상실증, 실어증이 올 수 있고, 때로는 치매에 걸릴 수도 있다. ‘사전 연명 의료 지향서(’Advanced Directive’)가 있으면 배우자나 자녀들 뿐 아니라 의료진이 큰 부담 없이, 지체하지 않고 지향서에 명시한 대로 병상에서의 나날을 꾸려줄 수 있다.

만약 내가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치자. 차 사고로 또는 4기 뇌암에 걸려서 불치 상태일 경우 몇 달 동안 정도라도 살 확률이 낮다면, 과연 나는 코에 낀 고무 호수를 통해 배달되는 음식으로 연명하는 것을 원할 것인가? 답은 물론 갖가지이다. 많은 경우 가족들의 의견 또한 다르다. 100% 동의안을 받아내기 어렵다. 장기이식 기부자로 등록된 것을 가족들이 모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사전 연명 의료 지향서’가 의료진의 치료 방침을 인도해 준다.

‘사전 연명 의료 지향서’는 단어의 선택이 조금씩 달라 다른 이름 즉 ‘사전 지시서’, ‘사망선택 유언장’, ‘건강관리 지시서’, ‘항구적 대리 위임장’ 등으로도 불리는데, 근본적인 뜻은 같다. 변호사에게 위임해서 종이로 작성하여 의료 차트와 유언장에 함께 철해 놓는 것이 상례이다. 또 가족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놓아 두는 것을 추천한다.

사람들의 건강상태는 변하기 때문에, 적어도 매 10년마다, 아니면 건강상태가 변하거나, 가족 상황이 변할 때 새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 상황의 변화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혼이나 가족 멤버의 사망한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참고로 변호사에게 의뢰하지 않고 온라인 서류를 작성해서 공증받아 보관해도 된다. 한국어로 된 서류도 온라인에 있다.

내가 나의 마지막 누울 곳을 마련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끈 것과 비슷하게, 미국 성인 37% 만이 ‘사전 연명 의료 지향서’를 준비해 놓았고( 2000년-2015년 사이 796,000명 설문 조사), 55%가 유언장 없이 죽는다고 한다 (허핑턴 포스트 2016 보고).

사망 후, 유족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장례절차이다. 장지(葬地)가 준비되지 않았을 경우, 유족들은 서둘러 마땅한 장소를 찾아야 하고, 목돈을 지불 해야 하는 등, 세부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목록이 적지 않다.

숙제로 남아 있던 내가 영원히 쉴 집, 나의 새집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엘에이에 있다. 아이들이 얼마나 자주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가깝다. 겨우 길이 12인치에 폭 24인치의 작은 납골당이다. 그래도 나의 쉴 집을 산 것은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