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ica Ryoo] [9:51 AM] https://youtu.be/0w2d4OMoGgc
[작성자:] mydoctormonica
초겨울은 입원실 병동에서 잠깐 만나고 세상을 떠난 환자들을 생각하게 한다. 이곳 엘에이가 아열대성 날씨라 뼛속까지 시린 한국의 겨울 날씨가 주는 아름다움이 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엘에이만이 줄 수 있는 특수함이 있다. 어떤 길에는 한국 못지않게, 꺽다리 가로수가 색색으로 물든 이파리를 내리고 있다. 나무는 낙엽으로 세상과 작별하지만, 봄이 되면 다시 새 생명을 세상으로 내어 보낸다. 나의 환자들은 환생하였을까.
의과대학을 갓 졸업하고, 타교에 가서 인턴을 했다. 권력과 부(富)의 배경이 없던 나에게, 외과 교수님께서 모교보다 큰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추천하여 주셨다. 인턴들은 상급 레지던트 밑에서 배당 병동의 환자에 대한 모든 사항을 점검하고,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환자들에게 급히 해야 할 피검사나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하면, 제일 하급자인 인턴이 심부름꾼이 되어 랩(lab)과 영상의학과에 달려가기도 하고, 결과가 빨리 나오도록 귀여운 뇌물도 약간은 먹여야 했던 때였다.
어느 날 회진 준비를 하고 있던 나에게, 선배 레지던트는 간호사 스테이션 옆에 붙어 있는 병실에 입원 된 환자에게는 신경 쓰지 말라고 일렀다. ‘그 환자는 곧 운명할 것이에요.’라고 말했다. 죽음을 못 본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명령 아니면 배려를 해 준 것인지 의아했다. 그 환자는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었고, 병실을 지키던 그의 형은 20대 중반인 내 나이 또래였다. 얼마 안 있어, 그 환자는 운명했다.
간호사 스테이션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나를 붙들고 형은 절규했다. ‘세상이 왜 이리도 불공평합니까…’ 임종이 가까웠던 그 젊은 환자는 증상 완화 조치가 필요했을 터인데, 그 당시 의학계에는 종말 치료나 완화치료에 대한 행정적 방침이 없었다.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의사 조력자살(PAS: physician assisted suicide)’법이 1942년에 스위스에서 처음 만들었다. 그 후 유럽, 미국, 카나다, 호주등에서 허락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 입법화를 제의하고 있다. PAS 는 허락해도 ‘안락사’는 허락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안락사’는 의사가 직접 치사제를 투약하는 것이고, ‘의사 조력자살’은 의사의 처방을 받아 환자 자신이 약을 먹어 임종을 앞당기는 것을 뜻한다.
불치병은 말기 종양 이외에도 완치할 수 없는 양성 질환을 통틀어 칭한다. 정신질환, 후천성면역결핍증 등과 어떤 종류의 선천성 불구 같은 것이 이에 속한다. 불치병이 환자를 금방 죽이는 것은 아니다. 불치병을 갖고 오래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위적 죽음이 가능한 나라에서도, 이러한 방법을 택하여 죽는 권리(?)를 행하게 될 때까지 여러 절차를 거치도록 한다. 혹시 의료진의 잘못된 진단과 부족한 치료가 있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고, 시스템을 부적절하게 악용하는 예도 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를 포함한 취약층 환자들에게는 신경을 더 써야 한다. 네델란드와 벨지움에서는 한 살 미만의 유아와 나이든 어린이까지 조력 사망을 허락한다. 운전면허를 18세가 되어서야 받을 수 있는 나라에서 12살에 죽음을 선택하게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국제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 환자와 가족들은 충분한 상담을 받는 것이 옳다. 극단적인 선택은 미루거나,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고통이 있다면, 투약으로 또는 신경 마취 방법 등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명 경시 풍조가 있고 자살률이 높은 한국 사회이다. 평소에 생명의 중요함과 건전한 윤리관을 가정에서부터 조성해 나가면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모여 이루는 사회도 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속수무책으로 젊었던 때 보았던 그 청년 환자가 다시 돌아와 아프다면, 이젠 충분한 리소스를 알려주고, 그중에서 가정방문 호스피스 서비스와 전문 상담 서비스를 추천해 줄 것이다. 그가 편안히, 아파하지 않고, 자신이 자랐던 집에서, 그리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편안한 마감을 할 수 있게 말이다.
몇 주 전에 한국을 다녀 왔다. 1가·2가·3가·4가…충무로·청계로·삼일대로…. 길 이름이 쓰여진 깨끗한 표시판들이 신호등과 함께 친절하게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그런데도 어떤 때는 묵고 있는 호텔을 멀리 돌아서 찾아가기도 했다. 금방 눈에 띄고, 쉬이 보여야 할 반짝이는 하이라이즈 호텔이 내 눈에는 금방 보이지 않는 적이 많았다. 나의 인지도가 낮아진 것일까. 서울이 너무 번화해져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두 가지 이유 모두 때문이었을까.
청계천 흐르는 물은 바닥이 보일 만큼 맑고, 깨끗했다. 주위의 조경이 아름다웠다. 청계천을 따라 산책로를 만든 것은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았다. 청계천과 평행하는 인도(人道)로 올라와서 길을 따라 걷다가 ‘베를린 광장’이라는 곳에 다다랐다. 세 개의 시멘트 판 ‘베를린 장벽’과 독일을 상징하는 곰, 100여 년 된 독일 전통의 가로등이 함께 비치되어 있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전시품이 두 개의 큰 길이 가로지르는 코너에 있었다.
화려한 한국 서울의 도심지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약간 더럽고 지저분해 보이는 오래된 시멘트 판으로 어른 키의 두 배 정도로, 폭은 1.2m, 두께는 0.4m로 바닥이 L자형이었다. 둔탁했다. 미국 국무부 보고에 의하면, 원본의 어떤 부분은 5m 정도로 높다고 한다. 독일이 통일되었을 때, 길이 165Km 장벽을 잘라서 여러 나라에 선물로 보내거나 팔았다. 미국에는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Diplomacy)과 로스 안젤레스 카운티 박물관 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어느 호텔의 남자 화장실에도 있는데, 왜 화장실에 중요한 역사 물품이 비치되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베를린 장벽’은 이차대전 이후, 연방 소비에트가 관할하는 동독일(東獨逸)과 미국, 영국, 프랑스가 관할하던 민주주의 서독일로 양분되면서 생기게 되었다. 베를린 시(巿)는 동독 지역에 있는 큰 브란덴부르크주(州) 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연방 소비에트의 독재가 시작되자, 약 3백 5십만 명의 동베를린 주민들이 서독으로 이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1961년부터 1980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서 시멘트 200만 톤과 강철 70만 톤을 부어 이중(二重)의 ‘베를린 장벽’을 세워서 탈출을 막았다. 두 벽 사이는 장갑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나는 ‘베를린 장벽’을 두 번 보았다. 5년 전에 ‘브란덴부르크 개선문’을 보러 갔다가 처음으로 개선문 옆에 설치된 장벽을 보았고, 이번에는 서울을 방문했을 때, 청계천 근방에 있는 ‘베를린 광장’이라는 곳에서 본 것이다.
함께 자리한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개선문’과 ‘베를린 장벽’의 일부는 역사적으로 관련이 없다. 분단의 극복과 평화통일의 염원을 상징하는 두 역사적인 전시물들은 각각 다른 세기에 세워졌다. 양분된 독일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레오나르도 번스타인은 베토벤 심포니 9번을 그곳에서 연주했다. 케네디 대통령, 레간 대통령, 고르바체프 러시아 수석등이 냉전 시기에 이곳에서 역사적인 연설도 했다. 이러한 분단의 세상이 올 줄 모르고 JS 바흐는 ‘브란덴부르크 콘체르토’를 작곡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서독 쪽 벽면에는 분단되어 못 보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또는 평화를 염원하는 그라피디 낙서 메세지가 가득했다. 그러나 동독 쪽은 아무런 낙서 없이 깨끗한 벽면으로 남아 있었다.
한국에 기증된 ‘베를린 장벽’을 페인트 스프레이로 훼손한 사건이 있었다. 삼류 의류 회사 창업주라 했다. 이 행위가 과연 표현의 자유라고 볼 수 없다는 판례를 읽어 보았다. 요즘 환경보호단체가 루브르 박물관,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이외에도 호주, 독일 등 유명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명화에 음식을 끼얹어 세상의 관심을 얻고자 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는 아니다.
‘브란덴부르크 콘체르토’를 쓴 JS Bach는 뭐라 말할까. ‘이건 아니지~~~!’ 할 것 같다.

한국 서울시 명동에 있는 베를린 광장: 그곳에 서 있는 세 쪽의 시멘트 벽, 독일의 오래된 가로등, 그리고 곰

슬픈데,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네
슬픈데
사진으로도 찍을 수 없네
슬픈데
눈에 보이지도 않네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네
내 영혼 처럼
기억 속의 사람들,
기억 속의 동물들,
메말라 죽어간 플랜트들,
가슴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