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나는 학생 시절, 인권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의학 연구를 세계 어느 나라 보다 앞장서서 진행하는 미국을 동경했다. 베이비붐 세대들 (1946~1964년 출생)이 활발히 활동하던 1970년대에 도미했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앓고 있던 미국을 이제야 본다.

넘쳐나는 자유와 부유함이 다져지지 못한 기반 위에 지어진 가정을 좀 먹고 있었던 것을 그 때는 인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번쩍이는 허상을 쫓고 있었던 것일까.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참신한 시민이 되도록 차세대를 뒷받침하고 인도하지 못했기에, 이론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총기 사건이, 성스러워야 할 배움의 마당 안에서 연발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사건들은 우리 기존 세대를 향해서 부모로서의 자격은 미달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무기가 자동차 운전면허도 받을 수도 없는 연령대의 소년의 손에 쥐어지고, 소년은 이 무기의 방아쇠를 당기었다. 총알은 세상 밖을 나와, 동료 학생의 머리를, 허파를, 심장을 통과했다. 지난달, 미시간주(州)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총기 살인 사건이다. 14살, 16살 그리고 두명의 17살 학생이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하였다. 그들의 빼앗긴 삶을 누가 보상할 것인가?

뉴욕 타임스는 이 사건의 뒷이야기를 12월 6일에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총을 쏜 15세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총기 쇼핑을 갔다고 한다. 총기를 구입한 아버지는 소년에게 그 총을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네었다고 한다. 이 아버지는 무엇을 하라고 그 총기를 아이에게 선물한 것일까. 더더욱 끔찍한 것은, 이 소년이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엄마가 아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난 너에게 화나지 않았어.’, ‘너는 걸려들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해.’라는.

인간이 무기를 만든 것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초등학교 때에 배웠다. 이때의 무기란 화살이나 칼을 두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 같다. 애초에는 동물이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만들었을 것이다. 정말 무기가 생계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나 하는 의심이 많이 든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화살은 양궁 (archery) 이라는 하나의 운동 종목에서 볼 뿐,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시대의 변천과 합당한(?) 최첨단 살생(殺生)기구들은 사람을 성공적으로 죽였고, 다치게 했다. 죽이는 면허를 어디에서인가 받아서 대량학살을 한 사건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전쟁이 그것이고, 민간인 대량학살이 그것이다. 이 미국에서는 자유로이 총기 구매가 가능하고, 소유가 가능하다 보니, 그야말로 정신병자의 손에 의해서 총격 사건이 발생하고,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기소유 금지법을 만들기란 불가능했고, 총기사건의 예방도 지금으로서는 불완전하다.

미국 인구를 약 3억 3천만 명으로 칠 때, 미국 내에 존재하는 무기는 사람 숫자보다 많은 3억 9천만 개라고 한다. 인구 100명당 120개의 무기가 있는 셈이다. 미국, 멕시코, 과테말라에서는 일반 시민이 총을 소유하는 것이 합법적 기본 권리(constitution)로 되어있다. 총기 폭력은 하루에 대략 300여 건이 있고 이 중에 약 100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일 년에 약 38,000명이 죽는다. 이 숫자는 1950년에서 1953년 사이에 한국전(韓國戰)에서 전사한 미국 군인 33,686 명 보다 더 많은 숫자이다. 1/3은 의도적인 총기 폭력이고 ~20%는 총기에 의한 자살이다. 실수로 인한 경우는 1%도 되지 않는다.

GAO(Goverment Accountability Office 정부회계사무소) 는 일 년에 10억 불을 총기에 의한 일차적 치료에 썼다고 올해 7월에 발표했다. 이 금액은 재입원, 장기간 관리, 의사에게 따로 지불하는 금액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보험이 없는 경우라 치고 계산을 해 보면, 미국인 한 사람이 $250 정도를 이들의 치료에 지급해야 하는 금액이다. 응급치료 후, 장기간 동안 재활에 들여야 하는 나날, 찾아야 하는 적절한 치료방법, 치료 기구, 담당 전문의가 쏟아야 하는 시간, 피해자의 실업등을 계산해 보는 것은 우매한 일일까 싶기도 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친밀한 종군기자 출신으로 반전(反戰) 작가였고 노벨상과 퓰리처상 수상자였던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생을 권총 자살로 마감했다. 만약 그가 총을 소유할 수 없는 나라에 살았더라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생을 끝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총은 그와 함께, 너무나 가까이 있었다.

***edit 된 글이 2021년 12월 미주 중앙일보 [오픈 업] 칼럼에 기재되었음.

못 쓸 선물 대신 자선으로 시작하는 새해가 되기를…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들어오니, 선물 생각에 마음이 어수선하다. 그뿐 아니라 친척, 친구들과 만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부담스럽다. 코비드-19 판대믹으로 조심스러운 때라, 달갑지 않다. 그렇지만 크리스마스 캐럴과 구세군 모금 종소리가 명쾌해서 좋다.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11월 말경부터 새해 1월 초까지 계속된다. 한국 풍속은 크리스마스에 이어서 신정, 구정, 대보름으로 겨울 축제가 이어지고, 어떤 경우는 음력 역법에 따라 2월까지 계속될 때가 있다. 우리나라 명절뿐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의 명절들은 주로 농업과 관계되는 축제이다.

또 한 나라의 역사적인 기념일도 있고, 이름이 붙여진 종교적인 축제도 많다. 이름이 붙여진 축제는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시작된 전통인데, 이것은 기독교 달력에서 시작되었다. 동방정교,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인이 죽은 날을 기념하여 축일을 지낸다. 미국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일과 성 니콜라스가 죽은 날을 각각 다른 시점에서 기념하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크리스마스 축일로 자리매김하였다. 미국이 청교도 정신에 따라서 개국 초부터 한동안 크리스마스를 배척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19세기 초,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이라는 소설이 발간되고, 이 책에서 디킨스가 보여준 인류애가 크리스마스를 재생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870년 연방 공휴일로 제정될 때까지 약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면서 미국에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크리스마스 카드 보내기, 선물 주기 등, 미국 특유의 크리스마스 전통이 생겼다.

크리스마스가 상업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천이었다. 1940년 이후, 크리스마스 아이디어로, 썰매를 타고 공중을 나르는 산타, 굴뚝으로 올라갔다가 굴뚝 속으로 선물을 주려고 내려오는 산타도 만들어졌다. 코가 빨갛고 반짝이는 아홉 번째 사슴 ‘루돌프’는 몽고메리 워드 백화점 (1872-2001)의 광고 표절 전문가로 고용되었던 로버트 매이라는 사람이 고객 유치차 쓴 동화인데, 로버트 매이의 매부인 자니 막스가 이 이야기에 곡을 붙여 크리스마스 캐럴로 만들었다. 이 크리스마스 캐럴이 담긴 레코드가 3천만 장이나 팔렸다고 한다.

인구의 약 70%가 크리스천인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연방 공휴일이다. 이 명절에 쓰는 돈도 엄청나다. Personal Counselor 통계에 의하면, 미국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는데 약 6십억 불을 소비한다. 부모들은 평균 276불을 아이들 선물을 사는 데 쓴다고 한다. 15세 아들에게 총기를 사 주어 동료를 죽이고, 상처를 입히게 한 미시건주(州) 부모는 총을 사는 데 얼마를 소비했을지 궁금하다. 2020년에 7천 9백억 불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데 쓴 미국이다.

2021년에는 조금 더 많이 소비했을 것이라는 추측이고, 이 중 1백 5십억 불 값어치의 선물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품목이 될 것이라 하니, 입이 닫히지 않는다.

파인터(finder.com) 설문조사에 의하면 61% 가 한 가지 이상의 원치 않는 선물을 받았고, 43%는 싫어하는 선물을 받았는데, 흥미롭게도 친구, 시가, 처가에서 온 선물들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싫어하는 물건의 운명은 어떤지 들여다보자. 약 30%는 싫지만, 그냥 갖고 있고, 30%는 다른 사람에게 주고, 20%는 가서 바꾸고, 7%는 팔고, 4%는 각각 되돌려 주거나, 버린다고 한다.

행복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축제가 지속되고 있고, 선물을 사려는 예산이 초과하고, 받은 물건들은 버리고 있는 우리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에는 8천 2백만의 피난민( UNHCR 통계: UN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1천 5백 만의 노숙자가 힘들게 나날을 연명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1십 6억(Habitat for Hummanity 2015년 보고)명이 집 같지 않은 집, 열악한 공간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세계 인구의 2%가 노숙자다. 인도에는 천 8백만 명의 노숙자 어린이가 있고, 인도의 대도시 뉴델리에는 3백 만 명의 어른들이 거리에서 살고 있다. 이 홈리스 어른의 숫자는 카나다의 30개 선거구의 숫자와 맞먹는다.

찰스 디킨스가 보았던 빈곤, 어린이 강제노동, 묵살된 인권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 살아있다. 우리는 보지 못한다. 미국에서 넘쳐나는 쓸모없는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우리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가 될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대신 노숙자를 돌보고, 집 없는 가정에 집을 지어 주는 고마운 시민들과 함께 하는 새해가 되어 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 본다.

2021.12

사고사를 생각하는 여름

원격 수업에서 벗어난 엘에이 학생들은 잠깐의 대면 수업을 끝내고, 여름 방학을 맞게 되었다. 휴가철이 된 것이다. 코비드 19로 인한 판대믹 사태가 시작되었을 때, 캠핑용 자동차(RV:recreational vehicle의 약자)를 구매한 큰 딸네와 함께 오리건 주(州)를 다녀왔다. 손주들의 자전거를 자동차 뒤에 매달고, 간이 호텔 방이 이동한 셈이다. 자동차에는 냉장고가 있어서, 원할 때마다 저장해 온 음료수, 과일등을 꺼내어 먹을 수 있었다. 오리건주까지 열네 시간 이상을 운전해 가야 했다. 세 번의 끼니를 충족하는 플랜을 짜고 집을 떠났다. 때에 맞추어, 프리웨이 쉼터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서둘지 않고 하던 식사는 의외로 맛났다. 대 가족이 경제적인 방법으로 휴가를 지날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을 코비드 19 덕분에 알게 된 셈이다.

프리웨이에는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RV가 보였다. 이미 몇 달 된 소식이기는 하지만 텍사스주(州)에 본사가 있는 캠핑 전문 차량회사, 아웃도어시(Outdoorsy) 판매량이 2020년 4월부터 10월 사이에 4600% 성장했다고 폭스뉴스가 보도했다. 이것은 판대믹으로 모든 국민의 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호텔을 사용하지 않고, 안전하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여행할 수 있는 주목받는 여행방법이 되었다고 부속 설명을 했다. 젊은 가족들이나 밀레니얼 세대 (Y 세대: 대충 1981년~1996년생)이 가장 많이 RV를 렌트 하거나 사들인다고 했다.

워낙 거대한 나라 미국이기에, 달리는 차의 창문을 통해서 보게 된 지역들은 서로 다른 지질적인 특징을 보여 주었다. 숨 쉬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사막지대가 있고, 푸른 고목이 울창한 곳 또는 채소를 재배하는 초록색 밭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펼쳐져 있는 농장지대도 보였다.

그런데 가끔 프리웨이 가장자리 빈터, 주로 오른쪽 쇼울더(shoulder)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빛바랜 꽃다발과 십자가가 눈에 띄곤 했다. 꽃이 놓인 자리 근처에서 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친척이나 친구를 기리는 뜻으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CDC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뜻하지 않은 사고사(事故死) 즉 우리 한국 사람들이 흔히 표현하는 ‘제명에 죽지 못한’ 경우가 미국인 사망 원인 중, 심장병(655,381명), 암(599,274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고 보고했다. 2018년 한 해 동안 167,127명에 달했다고 한다. 독물중독, 차 사고, 낙상이 사고사의 3대 원인이다. 여기에 뽑히지는 않았지만, 여름철에 흔한 익사(溺死)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하루에 약 10명이, 세계적으로 일 년에 약 50만 명이 익사한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다. 세계 통계에는 홍수로 죽은 사람들이 포함된 숫자이다.

한 살부터 44세 나이대의 사망 원인 중에는 사고사(事故死)가 제일 많다. 많은 경우, 이 ‘뜻하지 않은 사고’는 예방이 가능하다. 사고사 이외의 10대 사망 원인이 되는 다른 질병들도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사망은 예방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보면, 폐 질환, 뇌졸중, 당뇨, 자살등이 그렇다. 군 복무 중에 적군에 의한 죽음과 사고사는 구별되어 기록된다. 참고로 코비드 19에 대한 통계는 집결되지 않았고, 현재 보고되는 숫자는 충분한 리뷰를 거쳐서 재확인되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사고 즉 전쟁에 의한 것이나, 실생활 중에 일어나는 위험한 상황은 국가를 중심으로 체제적인 안전규범을 체계적으로 강화해서 예방할 수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는 사고와 질병 예방에 대해서 교육의 뜻을 갖고 실행하고, 필요하면 훈련, 강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몰두했던 여행이었다. 캠핑 자동차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시작한 여름이다. 차세대들과 했던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이었다.

2021.7. 중앙일보 오픈 업 원고

법과 의료: 맺어저서는 안 될 때가 있다.

간호사는 유방암 치료를 위해 의뢰되어 온 환자를 진찰실에 안내하고 가족력, 과거력 확인 후, 혈압, 몸무게를 기록하고 나서 나에게 귀띔해 주었다. 그 유방암 환자는 트렌스젠더라고 말이다.

환자는 작은 체구에 숱 많은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남자였다. 젊잖아 보였다. 여자였다던 그에게 남장이 잘 어울렸다. 와이프라고 소개하는 여인이 함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원해서 남자로 살고 있었다. 그 환자는 유전자형(遺傳子型, genotype)으로는 여자였다. 여성은 선천적으로 난소, 자궁, 질, 유방을 갖고 태어난다. 이 여인은 여자를 여자답게 만드는 기관들을 수술로 없애지 않고 남성 호르몬을 투입해서 그 기관들의 기능을 죽여왔다. 그래서 밖에서 보기에(表現型, phenotype) 그는 남자였다.

남성 호르몬 투여로 수염이 자랐고, 목소리가 굵어졌다. 그에게 남아 있던 유방과 난소는 기능을 잃었지만, 남성 호르몬은 그에게 남자 성기(性器)를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성기는 수술로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그녀는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남아 있던 유방 세포에서 암세포들이 만들어지고, 자랐다.

우리는 성 정체성에 대해서 별생각 없이 산다. 성 정체성은 태어날 때 여자 또는 남자라고 주어지는 종목이다. 그런데 인구의 약 2% (0.05-1.7%) 정도는 육체적으로 애매한 성기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를 인터섹스 (간성 間性)라고 부른다. 조금 설명을 해 보자면, 밖으로 보이는 남자/여자의 특성이 염색체나 생식기관 또는 성기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이다. 간성인 사람은 남자, 여자, 둘 다 또는 둘 다 아니라고 자신을 내세울 수 있다. 유방암 치료를 위해서 나를 찾아왔던 그 남자환자는 간성이 아니고 유전자형으로는 여자이었던 성 소수자 트렌스젠더였다. 간성과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는 서로 관계가 없다.

캘리포니아 법안 중에 간성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의 생식기관이나 성기를 교정하는 수술 시점을 두고 법안이 몇 번 상정되었다. 번번이 기각되었다. 최근 것은 12살이 될 때까지 수술로 교정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올해 5월에 발안 되었는데, 보류상태이다. 정치인들의 발안 내용이 의료인들의 의견과 환자 또는 환자 가족들이 겪은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서, 오해의 여지를 많이 주고, 환자들에게 도움보다는 해를 끼칠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자신이 남자 혹은 여자가 되기를 원하는지가 제일 중요할 것이다. 본인의 뜻에 맞게 해 주어야 한다면, 어린이가 몇 살이나 되었을 때,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을 것인가를 숙고해 보아야 한다. 환자는 확신이 필요하다. 또 부모와 소아 성(性) 수술 전문의사들에게는 단순할 수 없는 과정을 함께 이해해 가면서, 아이가 결정하는 시점에 도달해야 한다.

정의로운 법처럼 좋은 것이 있으랴 싶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법과 정치가 충분한 연구와 고찰을 통하지 않고 의료에 개입되었을 때, 인류는 고통을 겪었다. 때로는 목숨을 타의에 의해서 잃기도 하고, 자유를 박탈당했으며, 깊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좋은 예가 19세기 말에 시작되었던 ‘우생학 운동(Eugenics Movement)’이다.

우생학이란 생물학적으로 좋은 종류의 사람들만 남기고, 열등하다고 판정되는 사람들의 번식을 막는 법이었다. 이 법이 시행되도록 한 사람들이 많지만, 미국의 우생학 방법을 나치 히틀러에게 전수시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핸리 러글린과 콘플레이크 시리얼을 만들어 낸 존 하비 켈로그 의사가 선두 주자였다. 미국에서 19세기 말부터 1940년대까지 시행되었고 1927년 대법원의 인가를 받았던 이 법 때문에 7만여 명의 미국인들이 강제로 피임 수술(정관수술, 난소관 수술)을 받았거나, 생식이 가능한 나이 동안 강제 집단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다.

그 당시 열등 인간으로 간주하였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들여다보자. 지적장애인, 신체장애인, 간질병이나 정신질환 등이 있는 사람들, 유색인종, 혼합 결혼자 (타 인종끼리의 결혼)들이었다. 백인 중에는 동유럽, 남유럽인이 해당하였다고 한다.

역사를 배우면서 인간이 만든 부조리한 법, 인간이 행한 정치의 횡포를 본다.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1909년부터 1979년 사이에 강제 피임 수술을 받았던 사람들과 1979년 이후에 감옥에서 역시 강제 피임을 당한 사람들의 후손에게 보상금을 주기로 책정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는 우생학 비리에 앞장섰던 주(州)이다.

인터섹스로 인한 선천적 결함이나 LGBTQ 성 소수자들이 택한 길을 정상, 비정상의 잣대로 재어서 가두어 놓지 말자. 내 눈 속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는 우리들의 우매함을 일깨우는 성서 구절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2021.8 중앙일보 오픈업 원고

홈리스 고양이가 인도한 한국어 진흥으로 향한 길

무얼 사러 들렸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근무처 병원 근처에 있는 가전용 철물, 꽃, 정원 도구를 파는 홈디포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 주차장에서 까만 홈리스 고양이를 보았다. 주위를 경계하는 듯, 두리번거리면서 잽싸게 움직이던 마른 모습이 마음에 걸려, 며칠 후 퇴근길에 다시 들렸다. 어떤 타 인종 아줌마가 나무 사이 덤불 밑에 고양이 먹이를 놓아주고 있었다. 그 아줌마는 TNR(trap-neuter-return: 덫-피임 수술-반환)을 하는 봉사단체 일원이었다.

TNR이란, 말 그대로 (길고양이를) 포획하고, 피임 수술을 시킨 후에 워낙 살던 동네에 다시 놓아준다는 뜻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미국에는 6천만에서 일억 마리나 되는 홈리스 고양이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 년에 약 백만 마리가 안락사를 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까만 홈리스 고양이 구출 작전(?)을 암 치료 테크니션 도나와 세웠다. 성공적으로 입양도 되었다. 이 과정에서 UCLA 대학 문 애리 사회학 교수를 만났다. 고양이 구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알게 된 문 교수는 자기의 전공 사회학과 상관없는 한국어 진흥을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특이한 학자였다. 문 교수는 나를 한국어진흥재단으로 인도했고 그곳에서 차세대를 위해 한국어가 세계 언어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를 해온 이사들을 만났다.

누가 그랬던가?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세웠던 계획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배운 것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 삶이 흥미로운지도 모르겠다. 나야말로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던 것이었다.

나는 한국어 교육에 대해서 문외한이었지만, 문화적 자극이 없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는 청소년이 한가지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사회경제적으로 뒤지지 않는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논문을 통해 알고 있었다. 가난하다고 머리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생계유지 때문에 부모들이 함께하는 시간이 적은 아이들은 정신적, 문화적 자극이 결핍되기 쉽다. 어린 시기에 학교에서 제공하는 외국어를 배울 때, 뇌의 표면적은 넓어지고, 이는 지능지수를 높인다.

이 나라에서 외국어라면 영어 이외의 세계 언어들이 다 포함될 것이다. 한국어가 공립학교의 선택과목으로 인정된 것은 겨우 20여 년 전의 일이다. SAT II 한국어의 등재였다. 그러나 지난 1월에 SAT II 과목 전체가 폐지되면서 SAT II 한국어 시험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SAT II보다 높은 차별화 된 최고 과정은 AP이다. AP란 Advanced Placement의 약자로, 대학교 학점을 고등학교에서 취득하는 제도이다. 38개의 과목이 선정되어 있고, 이 38개 과목 중에 일본어, 중국어는 포함되어 있어도 한국어는 없다.

SAT II 한국어를 등재 시키는 것에 한몫했던 한국어진흥재단은 칼리지 보드가 AP 한국어를 짧은 시일 내에 출시하도록 그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칼리포니아 주민들의 협동으로 2016년 프로포지션 58을 통화시켜 공립학교에서 이중언어 프로그램을 재생시킨 것 처럼, 학생, 학부모, 한국 커뮤니티, 단체가 함께 하면 성공한다. 12기관이 동참했다. 이 협동심은 ‘AP 한국어 개발 서명운동 (supportapkorean.org)’을 통해서 주민들이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3주가 되어가는데 서명한 분들이 약 20,000명에 육박한다. 비 한국계 시민들과 한국 거주민들도 참여하고 있다. K-Food, K-Beauty, K-Culture, 등 ‘K’의 상징은 힘이 있다. ‘K-Language’ 한국어는 우리의 자랑이고 힘이다. 칼리지 보드를 찾을 계획은 잘 준비되어가고 있다.

길고양이가 인도한 낯선 곳에서, 외국어 교육의 의학적인 의미를 깨달았던 것이 새삼 뜻깊다. 덧붙여, 외국어를 터득함으로써 얻게 되는 능력이 우리 아이들의 삶을 더 좋고, 의미 깊게 한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미국의 차세대가 한국어를 통해서 글로벌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은 공상이 아니다. 독자들도 ‘supportapkorean.org’ 에 서명하시고, ‘가보지 않은 길’로 보일지 모르지만,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 함께 하는 희망은 ‘K-Power’이기 때문이다.

2021.5. 미주 중앙일보 오픈업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