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계급론과 우크라이나

코비드 19사태는 끝날 듯, 끝날 듯하면서도 지속 되고 있다. 될 수 있으면 외출을 금하다 보니, 나날이 새로운 양상으로 틀을 잡고 있다. 평소에는 안 하던 체조도 하고, TV를 보거나, 유튜브를 통해서 요리하는 법을 보고, 때로는 용기를 내어서, 조리 실험도 해 본다.

TV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젠 넷플릭스 고객이 되었다. 한국 드라마에 맛 들이고 있다. 아름다운 시골 경치, 두바이를 능가하는 화려한 서울의 하이라이즈들, 서울의 야경 등에 감탄한다. 다인종 가족과 성 소수자를 포용하는 종류의 드라마 내용은 참신해 보인다.

그런데, 가끔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는 외국어, 한국어와 영어를 합친 신조어들이 TV와 신문에 등장하곤 한다. 때로는 합성 후 몇 글자를 생략한 예도 있다.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고 자꾸 한국말이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해서 안타깝다. 내 노파심만은 아닐 것이다.

생소하기도 하고, 자주 쓰이는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 이 말은 프랑스 말인데,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채 한국에서, 그리고 영어로 번역되지 않은 채 영어권 나라인 미국에서 자연스레 쓰이고 있다. 프랑스가 유럽에서 오랫동안 패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말과 프랑스 문화가 영국의 상류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이 단어도 그냥 쓰이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원래대로 살아 남아있다.

‘노블레스’는 영어로는 ‘노블(noble)’이고, 귀하다는 뜻이다. ‘오블리주’는 ‘obligation’으로 책임이라는 뜻이다. 복합단어의 의미를 풀이하여보면, 귀족 층은 일반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리면서 살기 때문에, 그 특권에는 의무가 따른다는 뜻이다. 알고 보면 멋진 말이다. 이 멋진 뜻은 기원전 600 년 경, 호머의 ‘일리아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외국어와 외국어+한국어 병합 신조어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순수한 한국어로 ‘수저’에 관한 단어들이 사회 계급층을 지칭하는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나무 수저, 흙수저. 수저 타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새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수저 계급제도가 새로운 한국인의 신분질서로 부상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저계급론은 경제적인 수직적 관계를 지칭하는 뉘앙스가 진하다.

계급과 신분이 우리들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계급이란 신분이나, 재산, 직업, 교육 정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드는 것이 집단이라고 하는 정의를 읽었다. 그런데 한국에는 계급제도가 없지 않은가? 계급제도는 일본강점기 때에 한번 말살되었고, 육이오 한국전쟁을 치루면서 완전히 바닥으로 허물어져 없어졌던 것이 아닌가?

계급이나 신분은 사실상 불평등을 의미하는 단어로써, 계급은 법제적으로 정해진 사회의 불평등이고, 신분이란 법제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의식적 불평등이라고 한다. 미국이나 한국은 법적인 불평등은 없지만,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불평등의 관념이 아직도 몸 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수저 계급제도가 그것이다. 수저계급론의 시초는 미국이다. 아무개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는 표현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과연 어느 수저 계급에 속할까? 어디에 속하던지 상관없이, 나는 동수저가 좋다. 동(銅)은 광물질 브라스(brass) 또는 커퍼(cupper)를 뜻하는데, 여기서 한국 사회에서 쓰는 동수저라는 말 속의 동은 스테인리스 스틸을 뜻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인류가 발견하고, 발전시킨 물질 중 가장 획기적인 물질이다. 약 110년 전에 영국인 헤리 브리얼리(Harry Brearley)가 녹슬지 않고 단단한 총기를 만들려고 우연히 크로미움(동위원소 Cr)을 철에 섞으면서 발명된 것이다. 철은 기원전 고(古)시대부터 쓰였던 것으로 오래 쓰면 녹이 쓴다. 여기에 약 11% 분량의 크롬을 섞으면 녹 쓰는 것도 방지하고, 단단하고, 오래갈 뿐 아니라, 섭씨 1200도 정도까지의 고열을 견디며, 값도 무척 싸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물질이 무척 위생적이라는 것이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의학기구, 쿡킹용기, 오븐, 자동차 부속품, 건축자제로 다양하게 쓰인다. 그 뿐 아니라 스테인리스 스틸은 맥주 발효 통, 비행기, 잠수 TV, 세탁기 등 어떤 물질을 장시간 동안 저장해도 부식하지 않는 유용하고 좋은 물건이다. 무엇보다도 의학기구의 대부분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다. 그 예로 자궁암 근접치료를 하기 위해 자궁과 자궁경부에 넣는 기구를 들 수 있다. 오랫동안 수 천 명의 환자들을 위해서 사용하고, 고열 소독을 한 후에도 휘지 않고, 견고하며 위생적이다. 이 물질은 발명되자마자부터 의학 기구를 만드는데 쓰였다. 현재 중국이 최대 스테인리스 스틸 생성국가(1,000 million)로 2위인 인도보다 10배를 만든다.

귀족 계급이 없어진지 오래되지만 의식적 불평등 속에서 살고있는 지금, 어떤 사람들과 계층이 노블레스에 속할까? 여기에 나의 모국인들이 즐겨 쓰는 수저계급론을 접목해서 생각해 본다. 이들 중에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수저 계급은 누구일까? 금수저와 은수저까지일 것 같고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만, 동 수저급, 나무 수저 계급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얼마든지 실천하면서 살수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경제적으로 나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도울수 있으면 의무의 완수가 될 것이다.

한국전쟁을 겪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미국에 사는 한국인 교민들은 우크라이나를 돕는 데 적극적이다. 일부에서는 우크라이나에 사는 한국 교민들을 돕고, 나의 모교 고등학교 동문회는 크게 작게 성금을 모아서 미국에 유학중인 우크라이나 출신 학생들에게 생활보조금을 모아 주면서 돕고 있다. 많지도 않고,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72년 전, 육이오 전쟁으로, 공부할 시기를 놓치고 대학 진학이 불가능했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미국 유학의 길을 열어 주었던 미국의 시민들이 실행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다. 그들은 거부가 아닌 우리들처럼, 평범한 미국 시민들이었다.

임신중절과 우울증 ( Roe vs Wade)

‘내가 벌을 받아서 유방암에 걸린 것 같아요.’

서른 대 후반인 백인 환자는 ‘벌 받다(punished)’라는 단어를 썼다.

‘무슨 뜻이에요?’

‘몇 달 전에, 아이를 지웠어요.’

임신중절을 하고 나서, 깊은 우울함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던 때에, 그녀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나에게 의뢰되었다. 낙태 수술의 ‘죗값’, 아이를 포기한 벌(罰)이 유방암으로 업보(業報)가 되어 되돌아왔다고 말하던 그녀는, 행복할 수 없게 되는 보속(補贖)을 받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고 말했다.

중병이나 불상사가 있으면, 인과응보라고 여기고 자신을 탓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동서양이 비슷하다. 불교의 가르침, 또는 죄의식을 일깨우는 기독교의 가르침 가운데 형성된 사회성이 아닌가 싶다.

유방암 발병과 임신중절은 관련이 없다. 그러나 그녀의 죄책감은 의외로 무거웠다. 인위적 유산을 한 여인들의 자살률은 일반인들보다 세 배나 높다. 십 대인 경우는 자살 시도율이 10배나 높고, 자살 성공률이 4배에 달한다고 한다. 인위적 유산을 한 경험이 있는 성인 중, 약 30%는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마약 또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도 된다고 한다. 어쩌면 그러한 성향의 사람들이 유산의 결단을 쉽게 내리는 것은 아닌지, 거꾸로 생각을 해 본다.

미국은 지금, 여성의 낙태권을 없애자는 대법원의 임시 결정을 놓고, 49년 전에 낙태권을 인정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찬반의 의견들로 양분되어 있다. 결국, 낙태를 결정할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 것이며, 왜 낙태를 하려는 것인가, 낙태를 당하는 태아는 인간인가, 아닌가 등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으려 분투 중이라고 할까?

49년 전, 미국 낙태의 역사적인 판례를 불러온 제인 로 ((Jane Roe: 본명 Norma McCorvey)의 삶은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들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그녀는 이혼한 부모 중, 알코올 중독자이었던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10살 때, 삼촌 벌 친척에게서 강간을 당했다. 16세에 첫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즉시 입양되었다. 로 vs 웨이드 (Roe vs Wade)의 역사적 판례를 만든 세 번째 임신은 그녀가 원했던 낙태로 끝내지 못하였다. 세 번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역시 입양으로 마감되었다.

로(Roe) vs 웨이드 (Wade)를 정리해 본다. 당시 낙태와 소도미(Sodomy:항교)가 불법이었던 텍사스주(州)에서 소도미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즉 미국인이면 누구나 가지는 기본권리이므로, 불법이 아니라는 판례가 내렸다. 입양 전문 변호사 자격으로 제인 로(Roe)의 세 번째 임신중인 아이의 입양 절차를 도와주고 있던 게이(gay) 남자 변호사는 두 젊은 동료 여성 변호사들에게 그 내용을 알리게 된다. 그들은 제인 로(Roe)의 세 번째 임신을 ‘프라이버시’라는 이유를 붙여 합법적인 낙태로 처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파산 전문 변호사이며 레즈비언인 린다 커피(Linda Coffee) 변호사와 임신중절이 불법인 미국을 피해서 멕시코로 가서 소파 수술을 받았던 사라 웨딩턴(Sarah Weddington) 변호사이다.

린다 커피와 사라 웨딩턴 변호사는 $15 달러를 들여 제인 로(Roe)의 케이스를 법원에 접수한 원고였고 당시 지역대표 변호사, 헨리 웨이드(Henry Wade)가 피고였다. 그렇게 미국 역사상 제일 유명한 재판, 로(Roe) vs 웨이드(Wade)는 대법원까지 항소 되었다.

제인 로(Roe)는 이 판례로 미디어의 여왕이 되었다. 세 권의 책 출판에 관여하고, 돈도 많이 벌었다. 이 과정 중에 프로-라이프, 프로-초이스를 오가면서, 여러 번 말을 번복했다고 한다.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교계, 보수파, 진보파, 때로는 미디어의 센세이셜리즘의 이용된 꼭두각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낙태가 불법으로 판결된다면, 낙태 이외에 생식의학에 동반되는 여러 이슈를 재고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보면, 불임환자를 위한 체외수정이다. 시험관에서 정자와 난자를 결합시켜서 배아를 만든다. 실패를 우려해서 대략 4개 정도의 배아를 만들고 그중 가장 건강해 보이는 배아를 난자를 제공한 엄마나, 또는 대리 여인의 자궁에 정착시킨다. 쓰이지 않는 세 개의 배아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배아가 사람이라고 보는 지역에서는, 배아를 버리는 것은 범죄가 될 수 있다.

매년 태어나는 세계의 일억 4천만 새 생명의 반 정도인 7천 3백만 명의 태아들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낙태된다. 임신중절 때문에 사라진 생명과 이 길을 선택했던 여인들이 5차원 세계에서 만나, 서로를 치유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는 뒷북을 치지 말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차세대들과 일찍 생식학을 함께 공부하고, 알맞은 성교육을 시켜주어야 한다. 계획 없는 임신, 준비되지 않은 성생활로 파생되는 부작용을 예방하는 것처럼 더 중요한 교육은 없을 것이다.

거짓 정보가 판치는 세상/한글이 UN 공용어로 채택되었다고?

한국에 있는 친구가 ‘축하해! 한국어가 유엔 공영어로 채택되었데. 한국어 클래스를 정규학교에 집어넣느라 애써온 한국어진흥재단의 노력이 보탬이 된 것 같구나!’라는 메시지와 함께 한글이 유엔 공용어로 추가되었다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보내왔다. 들뜬 마음에 재빨리 동영상을 열었다. 남자 아나운서의 말투와 소식의 전개 방식에 전문성이 없었다. 한 시간 안에 또 다른 지인들이 같은 영상을 올렸다. 가짜 뉴스였다.

가짜 뉴스, 거짓 정보가 요즘처럼 난무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홍수가 되어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쉽게 정보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기구들이 있고, 수신인은 진실성에 대한 분별력이 높아지고 있어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 나도 친구가 보내 준 유튜브 영상이 가짜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퍼졌던 한국어에 대한 가짜 뉴스는 유엔에 공식 언어가 6개 있다는 것을 언급했다. 그 말은 맞다. 유엔은 공식 언어와 활용언어를 구별한 적이 있었다. 1945년 초창기의 유엔은 국제연합 헌장에서 5개의 공식 언어로 중국어,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를 채택했는데, 그 후 아랍어가 더해져서 여섯 개로 굳혀졌다. 유엔 총회가 있을 때, 연설의 내용이 이 여섯 개의 언어로 동시 통역되고, 문서로도 만들어진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처럼, 공용어 이외의 말이 사용되는 경우는 6개 중 하나의 언어로 미리 번역하여 제출하게 되어있다고 한다.

다시 가짜 뉴스 문제로 돌아가 보자. 놀랍게도 기자들조차 거짓 정보 보도 방법을 공식적으로 훈련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미국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한 설문 조사에서 보고되었다(Statistica 1월, Amy Watson). ‘보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법적 해석의 가능성 때문에 정부나 기관이 이를 쉽게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이슈는 거짓 소식인 줄 빤히 알면서도, 그것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거짓 뉴스, 정보를 강력히 막고 우선 정정해야 하는 분야는 의료 관련 쪽이다. 증명되지 않은 거짓 의학이 사기꾼과 돌팔이 의사들을 부추기고, 용감하게 순진한 시민들에게 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생명을 잃게 되기도 한다.

최근에 있었던 코비드 19 판대믹이 시작되면서 횡행했던 거짓 정보, 특히 백신에 대한 유언비어가 좋은 예이다. 백신을 거부했던 유명인사 중에는 코비드로 죽은 사람도 있다. 내가 경험했던 슬픈 어린 환자의 사연도 있다. 키모테라피는 부작용이 많기는 하지만 백혈병을 완치시킨다. 한 젊은 부부가 백혈병에 걸린 네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왔다. 키로테라피로 하는 정통적 치료를 거부하고, 그들은 아이에게 레아트릴 (laetrile) 치료를 받게 하겠다고 아이를 멕시코로 데리고 갔던 일이다. 레아트릴은 1845년 러시아에서 처음 썼던 것으로 미국에는 1920년대에 알려졌다. 미국의 식품 의약청(FDA)에서는 이 약물 안에는 사이안화물이 들어 있으므로 일찌감치 사용을 금지한 바 있었다. 소아암 전문의사가 법원에서 레아트릴 치료 금지 명령까지 받아내었지만, 아이는 효과 없는 레아트릴 치료를 받다가 악화된 백혈병으로 사망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젊은 부부가 당시 어디에서 정보를 얻었는지 알 수 없다. 요즘은 신문, 라디오, TV 이외에도 인기 좋은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북, 트위터, 틱톡, 핀테레스트, 스냅샷, 링크드인, 레딧, 홧쯔합 등 통신망(SNS)이 있다. 정보의 정확도를 가늠하는 것은 아직은 독자와 사용자들의 몫이기에,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귀찮고 힘들어도 시간을 내어서 꼼꼼히 내용을 살펴보기를 권하고 싶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나는 학생 시절, 인권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의학 연구를 세계 어느 나라 보다 앞장서서 진행하는 미국을 동경했다. 베이비붐 세대들 (1946~1964년 출생)이 활발히 활동하던 1970년대에 도미했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앓고 있던 미국을 이제야 본다.

넘쳐나는 자유와 부유함이 다져지지 못한 기반 위에 지어진 가정을 좀 먹고 있었던 것을 그 때는 인지하지 못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번쩍이는 허상을 쫓고 있었던 것일까.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참신한 시민이 되도록 차세대를 뒷받침하고 인도하지 못했기에, 이론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총기 사건이, 성스러워야 할 배움의 마당 안에서 연발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사건들은 우리 기존 세대를 향해서 부모로서의 자격은 미달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무기가 자동차 운전면허도 받을 수도 없는 연령대의 소년의 손에 쥐어지고, 소년은 이 무기의 방아쇠를 당기었다. 총알은 세상 밖을 나와, 동료 학생의 머리를, 허파를, 심장을 통과했다. 지난달, 미시간주(州)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총기 살인 사건이다. 14살, 16살 그리고 두명의 17살 학생이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하였다. 그들의 빼앗긴 삶을 누가 보상할 것인가?

뉴욕 타임스는 이 사건의 뒷이야기를 12월 6일에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총을 쏜 15세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총기 쇼핑을 갔다고 한다. 총기를 구입한 아버지는 소년에게 그 총을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네었다고 한다. 이 아버지는 무엇을 하라고 그 총기를 아이에게 선물한 것일까. 더더욱 끔찍한 것은, 이 소년이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엄마가 아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난 너에게 화나지 않았어.’, ‘너는 걸려들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해.’라는.

인간이 무기를 만든 것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초등학교 때에 배웠다. 이때의 무기란 화살이나 칼을 두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 같다. 애초에는 동물이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만들었을 것이다. 정말 무기가 생계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나 하는 의심이 많이 든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화살은 양궁 (archery) 이라는 하나의 운동 종목에서 볼 뿐,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시대의 변천과 합당한(?) 최첨단 살생(殺生)기구들은 사람을 성공적으로 죽였고, 다치게 했다. 죽이는 면허를 어디에서인가 받아서 대량학살을 한 사건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전쟁이 그것이고, 민간인 대량학살이 그것이다. 이 미국에서는 자유로이 총기 구매가 가능하고, 소유가 가능하다 보니, 그야말로 정신병자의 손에 의해서 총격 사건이 발생하고,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기소유 금지법을 만들기란 불가능했고, 총기사건의 예방도 지금으로서는 불완전하다.

미국 인구를 약 3억 3천만 명으로 칠 때, 미국 내에 존재하는 무기는 사람 숫자보다 많은 3억 9천만 개라고 한다. 인구 100명당 120개의 무기가 있는 셈이다. 미국, 멕시코, 과테말라에서는 일반 시민이 총을 소유하는 것이 합법적 기본 권리(constitution)로 되어있다. 총기 폭력은 하루에 대략 300여 건이 있고 이 중에 약 100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일 년에 약 38,000명이 죽는다. 이 숫자는 1950년에서 1953년 사이에 한국전(韓國戰)에서 전사한 미국 군인 33,686 명 보다 더 많은 숫자이다. 1/3은 의도적인 총기 폭력이고 ~20%는 총기에 의한 자살이다. 실수로 인한 경우는 1%도 되지 않는다.

GAO(Goverment Accountability Office 정부회계사무소) 는 일 년에 10억 불을 총기에 의한 일차적 치료에 썼다고 올해 7월에 발표했다. 이 금액은 재입원, 장기간 관리, 의사에게 따로 지불하는 금액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보험이 없는 경우라 치고 계산을 해 보면, 미국인 한 사람이 $250 정도를 이들의 치료에 지급해야 하는 금액이다. 응급치료 후, 장기간 동안 재활에 들여야 하는 나날, 찾아야 하는 적절한 치료방법, 치료 기구, 담당 전문의가 쏟아야 하는 시간, 피해자의 실업등을 계산해 보는 것은 우매한 일일까 싶기도 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소설로 우리에게 친밀한 종군기자 출신으로 반전(反戰) 작가였고 노벨상과 퓰리처상 수상자였던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생을 권총 자살로 마감했다. 만약 그가 총을 소유할 수 없는 나라에 살았더라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생을 끝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총은 그와 함께, 너무나 가까이 있었다.

***edit 된 글이 2021년 12월 미주 중앙일보 [오픈 업] 칼럼에 기재되었음.

못 쓸 선물 대신 자선으로 시작하는 새해가 되기를…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들어오니, 선물 생각에 마음이 어수선하다. 그뿐 아니라 친척, 친구들과 만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부담스럽다. 코비드-19 판대믹으로 조심스러운 때라, 달갑지 않다. 그렇지만 크리스마스 캐럴과 구세군 모금 종소리가 명쾌해서 좋다.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11월 말경부터 새해 1월 초까지 계속된다. 한국 풍속은 크리스마스에 이어서 신정, 구정, 대보름으로 겨울 축제가 이어지고, 어떤 경우는 음력 역법에 따라 2월까지 계속될 때가 있다. 우리나라 명절뿐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의 명절들은 주로 농업과 관계되는 축제이다.

또 한 나라의 역사적인 기념일도 있고, 이름이 붙여진 종교적인 축제도 많다. 이름이 붙여진 축제는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시작된 전통인데, 이것은 기독교 달력에서 시작되었다. 동방정교,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인이 죽은 날을 기념하여 축일을 지낸다. 미국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일과 성 니콜라스가 죽은 날을 각각 다른 시점에서 기념하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크리스마스 축일로 자리매김하였다. 미국이 청교도 정신에 따라서 개국 초부터 한동안 크리스마스를 배척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19세기 초,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이라는 소설이 발간되고, 이 책에서 디킨스가 보여준 인류애가 크리스마스를 재생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870년 연방 공휴일로 제정될 때까지 약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면서 미국에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크리스마스 카드 보내기, 선물 주기 등, 미국 특유의 크리스마스 전통이 생겼다.

크리스마스가 상업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천이었다. 1940년 이후, 크리스마스 아이디어로, 썰매를 타고 공중을 나르는 산타, 굴뚝으로 올라갔다가 굴뚝 속으로 선물을 주려고 내려오는 산타도 만들어졌다. 코가 빨갛고 반짝이는 아홉 번째 사슴 ‘루돌프’는 몽고메리 워드 백화점 (1872-2001)의 광고 표절 전문가로 고용되었던 로버트 매이라는 사람이 고객 유치차 쓴 동화인데, 로버트 매이의 매부인 자니 막스가 이 이야기에 곡을 붙여 크리스마스 캐럴로 만들었다. 이 크리스마스 캐럴이 담긴 레코드가 3천만 장이나 팔렸다고 한다.

인구의 약 70%가 크리스천인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연방 공휴일이다. 이 명절에 쓰는 돈도 엄청나다. Personal Counselor 통계에 의하면, 미국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는데 약 6십억 불을 소비한다. 부모들은 평균 276불을 아이들 선물을 사는 데 쓴다고 한다. 15세 아들에게 총기를 사 주어 동료를 죽이고, 상처를 입히게 한 미시건주(州) 부모는 총을 사는 데 얼마를 소비했을지 궁금하다. 2020년에 7천 9백억 불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데 쓴 미국이다.

2021년에는 조금 더 많이 소비했을 것이라는 추측이고, 이 중 1백 5십억 불 값어치의 선물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품목이 될 것이라 하니, 입이 닫히지 않는다.

파인터(finder.com) 설문조사에 의하면 61% 가 한 가지 이상의 원치 않는 선물을 받았고, 43%는 싫어하는 선물을 받았는데, 흥미롭게도 친구, 시가, 처가에서 온 선물들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싫어하는 물건의 운명은 어떤지 들여다보자. 약 30%는 싫지만, 그냥 갖고 있고, 30%는 다른 사람에게 주고, 20%는 가서 바꾸고, 7%는 팔고, 4%는 각각 되돌려 주거나, 버린다고 한다.

행복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축제가 지속되고 있고, 선물을 사려는 예산이 초과하고, 받은 물건들은 버리고 있는 우리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에는 8천 2백만의 피난민( UNHCR 통계: UN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1천 5백 만의 노숙자가 힘들게 나날을 연명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1십 6억(Habitat for Hummanity 2015년 보고)명이 집 같지 않은 집, 열악한 공간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세계 인구의 2%가 노숙자다. 인도에는 천 8백만 명의 노숙자 어린이가 있고, 인도의 대도시 뉴델리에는 3백 만 명의 어른들이 거리에서 살고 있다. 이 홈리스 어른의 숫자는 카나다의 30개 선거구의 숫자와 맞먹는다.

찰스 디킨스가 보았던 빈곤, 어린이 강제노동, 묵살된 인권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 살아있다. 우리는 보지 못한다. 미국에서 넘쳐나는 쓸모없는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우리들의 시야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가 될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대신 노숙자를 돌보고, 집 없는 가정에 집을 지어 주는 고마운 시민들과 함께 하는 새해가 되어 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 본다.

20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