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표창 한국어진흥재단 모니카 류 이사장 인터뷰

[LA중앙일보] 발행 2018/10/25 미주판 9면 기사입력 2018/10/24 19:28

지난 9일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열린 572돌 한글날 경축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왼쪽)가 모니카 류 이사장과 문애리 부이사장에게 대통령 표창증을 전달하고 있다.
“한글의 위대함을 느낀 자리였습니다. 후손들에게 더 열심히 한글을 가르쳐야죠.”

지난 9일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한 ‘한글발전 유공자’로 선정돼 문애리 부이사장과 함께 대통령 표창을 받고 돌아온 한국어진흥재단의 모니카 류(사진) 이사장은 “앞서 노력해주신 모든 이사진과 한인 커뮤니티가 합심해 노력한 덕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 후 한글박물관을 방문해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자세히 배우고 왔다는 류 이사장은 “배울수록 한글은 참 위대한 문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재단이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한국어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올해로 설립 30주년을 맞은 한국어진흥재단에 따르면 현재 가주의 공립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곳은 초등학교를 포함해 61개교다. 애리조나, 텍사스, 워싱턴 등 미 전역까지 포함하면 120여곳이 넘는다. 이들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 수만 1만5000명이 넘는다. 이중 절반 이상은 타인종이다.

류 이사장은 “상을 받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내년이면 SAT 한국어시험이 개설된 지 25년이 된다. 아직까지 한국어반 규모는 적지만 AP(대학학점인정 고교선수과목) 한국어 코스는 학생들이 한국어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만큼 AP반이 꼭 개설될 수 있도록 치열하게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류 이사장은 이어 “후손들과 타인종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려면 우수한 교사가 많이 필요하다”며 “한인으로 국한하지 않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타인종 교사도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교사 양성과정을 다양화하고 또 현재 진행 중인 교재 편찬 작업도 잘 마무리짓겠다”고 덧붙였다.

임시정부 창립 100주년과 나의 모교, 경기여고

지난 달 4월 19일 USC 에서 ‘ Commemorating The Centennial: Spring 1919,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And The Digitized Archives’ 이라는 제목으로 conference 가 있었다.  USC 에 재직하고 있는 한국계 역사학 교수, 동아시아학 교수들과 비혈통계 타 대학 석학들이 한국의 삼일운동, 임시정부를 주제로 그들이 찾아내고, 연구해 온 자료들을 갖고 발표를 했다. 대표적 발표자는 Indiana University 석좌교수 Michael Robinson, Rikkyo University 교수 Mark Caprio, Richard Kim UC Davis 교수들이었고 commentary 를  Sunyoung Park,  David Yoo, Kristine Dennehy 교수들이 하였다.

이 학회는 한 나절 정도 걸리게 프로그램이 짜여 있었다. 오랫만에 방문한 USC 캠퍼스는  아름다웠다. 잘 가꾸어진 정원, 오래된 나무들, 유서 깊어 보이는 빌딩들, 여유있어 보이는 학생들이 잘 어울려 있었다고나 할까. 학회는 Doheny Memorial Library 에서 있었고 참석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쉬웠다.

그곳에서 예전에 몰랐던, 어쩌면 배웠지만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정보들이 논의 되었다. 삼일운동과 상해임시정부는 자연스레 같은 때에 일어났고, 설립되었다는 것과 1918년 발표되었던 당시 미국대통령 W. Wilson 의 ‘Fourteen Points’ 는 유럽의 평화적인 나라 설립 또는 재설립에 관한 것이었지 식민지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징병되어간 많은 조선학병들,  전범죄인으로 사형된 한국인들도 있었다는 것을 지나가며 강의하는 것을 들었다. 이것이 학회의 focus 가 아니었기 때문에 간단한 언급이 있었던 것이다.

Wilson 대통령은 석학들을 고용하여 연구해서  ‘Fourteen Points’를 발표했던 것이라는 것을 학회가 끝난 다음 내가 찾아 본 결과 알아낸 것이었다.

삼일운동은 고종황제 장례식을 기해 곳곳에서 한국민들이 붕기한 독립운동이었다. 고종황제는 1월에 타계했는데, 절차상 장례식 까지 시간이 걸렸고, 당시는 음력을 쓰고 있었기에 약간의 착오는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정보는 학회에서 얻은 것이 아니다. 어떻든 일본인에 의한 동양인들의 학살은 5백만 전후이고, 일본군대로 징병되어 죽어간 젊은청년들, 생체실험의 희생자, 위안부 희생자에 대한 잔혹함은 독일인의 유대인 학살에 대하여 세계가, 유대인들이 focus 를 두어 조명했던 것과는 강도를 달리한다.

되돌아 보면 나는 제대로 역사과목을 배운 적이 없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현대사를 배우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밥상머리 교육과 사회정의 실현

코비드-19 전염을 방지하기 위한 활동 감금 정도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오랜만에 어제 작은딸네 식구가 다녀갔다. 뒷 마당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에 준해서 떨어져 앉아 이른 저녁을 먹었다. 딸은 한국토종이고 사위는 백인이다. 이 딸네 부부는 밀레니엄 세대에 속한다. 밀레니엄 세대 젊은이들은 ‘공동체’ 중심의 사고방식이나 활동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알려져 있다. 명품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남의 눈치 보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세대이다.

딸네 식구는 작은 전기차를 타고 우리 집에 왔다. 주홍색 차의 세 면에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 ‘침묵은 폭력이다(Silence Is Violence)’, ‘어떤 한 곳에서 행해지는 부당함은 모든 곳의 정의를 협박한다(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 라고 큰 종이에 마커로 쓴 구호가 붙어 있었다. 그 애다운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애는 대학 시절 반전 데모를 한다고 보스턴에서 버스를 타고 뉴욕 유엔본부까지 간 적이 있다. 나의 심경을 불편하게 했던 일이다. 이번 사회적인 문제에도 정의를 위해서 제 방식대로 참여하고 있어 보인다.
지금 미국에는 ‘완벽한 두 개의 태풍’이 불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판대믹과 도마 위에 오른 경찰의 월권행위 이슈이다. 그사이 잠수하고 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문제는 금방 풀리 것 들이 아니다. 또 정답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 과제들도 있다. 이슈들은 모두 사회정의와 연결된다.
코비드-19 판대믹이 ‘사회정의와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고 생각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인종이나 나이를 차별하지 않고 공기 속에서 자유롭게 떠돌면서 감염시키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옳은 말이다. 하지만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 건강보험이 없는 저소득층 시민들이 시립병원에 도착하기까지, 또 도착 후에 의사를 볼 때까지, 의사의 진찰을 받고 입원이 될 때까지 그들이 넘어야 하는 산은 높고 많다. 또 저소득층은 평소 건강 관리하기가 힘들다. 성인병에 대한 관리가 잘 안 되어 있는 중에 코비드-19에 걸리는 경우 사망률이 더 높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 저소득층과 성인병은 함께 가는 문제이다.
경찰의 월권행위로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이 목이 졸려 부당하게 목숨을 잃었다. 무릎으로 조지의 목을 누른 경찰은 백인이었다. 이 백인 경찰은 백인우월주의자라서 용의자가 흑인이니까 더 심하고 긴 시간 동안 목을 누른 것인지, 아니면 숨어있는 성격적 장애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하여간 흑인사회가 들고일어났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 라는 시민단체가 주동이 되어 시작된 시위는 흑인이라는 인종을 넘어 백인, 황인종, 노인, 아이들, 시위대를 막으러 나온 경찰들도 참여하고 있다. 구태여 이 단체 이름을 번역해 본다면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 라는 뜻이겠다.
이 단체에 대해서 조금 짚고 지나가 보는 것이 좋겠다. 2012년 트레이본 마틴이라는 17세 흑인 소년은 경찰이 쏜 총상으로 죽었다. 일 년 후 가해자 조지 짐머만 경찰관은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다. 짐머만은 독일계 백인과 히스패닉 사이의 혼혈이라고 알려져 있다. 세대를 이어가며 반복되는 흑인들을 향한 불평등하고 편파적인 법의 시행, 반대로 항상 보호받는 백인들을 보면서 사회정의는 없다고 결론을 내린 흑인 지도자급 여성 세 명, 페트리스 칸-쿨로스(Patrisse Kahn-Cullors), 알리시아 가자(Alicia Gaza), 오팔 토메티(Opal Tometi) 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흑인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사회적인 홍보, 흑인의 질적인 삶을 향상 또는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금은 미국뿐 아니라 영국, 캐나다에도 지부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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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 노예로 부려졌던 세월이 대략 250년, 인종차별을 당하고 살아온 것이 100년이라고 본다. 그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체제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행정을 수행하는 대다수는 백인이고 그 백인들은 변하지 않았다. 인종과 인권에 대하여 제대로 된 가정교육이 주어지지 못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즉 개화되지 못한 그러나 특권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의로운 세상은 언제나 올까? 우리 모두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는 것은 의무이며 정의로운 세상을 사는 것은 권리라는 것을 이해했다면 이러한 일들은 반복되어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은 사회정의로 귀의하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생각하고 있다.
또 사회정의를 향한 교육은 지극히 개인적인 단계에서 일찍 제공 될 수록 효과적이다. 바로 밥상머리 교육이다. 교육의 결실은 빈부 차이를 보게 하는 힘을 길러주고, 격차를 없애는 것에 참여하는 활동력을 준다. 결국, 교육의 종점은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것일 거다.

파코미아 수녀님!!!

(1957.10.5 출생/ 1980.3.6. 입회/ 1984 2. 첫 서원/ 1988.8 종신서원/ 2020. 4.5 선종)

이 글은 김 선미 파코미아 수녀님 선종 후, 남가주 신문사에 알리기 위해 쓴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변변하지 못한 카톨릭 신자인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내가 몸 담고 있는 벨리지역 ‘성요셉 한인 성당’ 신부님이 교우들에게 일 년 반 전에 내어 주신 신약성서 옮겨쓰기를 반 년이나 지각하면서 끝내었습니다. 나를 돌아보며, 겸손하게 한 또 하나의 프로젝트였습니다.

40년의 수도 생활의 대부분을 이곳 로스안젤레스 교민들을 위해서 봉사해 왔던 김선미 파코미아 수녀가 2020년 4월 5일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에서 선종하였다. 향년 67세로 영문학 전공하고, 대학 졸업 후 입회한 수녀는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에서 사목신학을 전공한 석사이다. 남가주에서는 다우니의 성 라파엘 성당, 한인타운 성 그레고리오 성당, 밸리의 성요셉 성당과 노뜨 할리우드의 성정하상 성당에서 사목하였다.

항상 가난하고 소외되고 냉담한 신자들을 찾었던 수녀이다. 자신은 늘 가난하게 살았다. 수녀의 부친은 목사이었고 목사 아버지의 권고로 세 딸 모두가 수도생활을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파코미아 수녀는 2015년 서울 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의 특별 요청으로 대북지원사업의 모니터링을 위해 여러번 방북하였다. 하느님이나 어떠한 ‘신’도 믿지 않는 공산체제 관계자들은 수녀와 쉽게 친해졌고 평복을 입어야 했던 수녀를 ‘김선미 선생’이라 부르며 가까이 했다 한다.

파코미아 수녀가 소속해 있던 성 베네딕트 여자 수도회에 대해서 약간 나눈다. 5세기 이탈리아 출신 성 베네딕트의 영성 ‘기도하면서 일하라!(Ora et Labora)’ 라는 가르침을 따라 1884년 창설된 남자 수도회에 이어 1885년 만들어진 여성 수도회이다. 툿찡은 독일의 지명이다. 일본 강점기 시절 1925년 네 명의 수녀들이 독일에서 함경남도 원산으로 파견되어 시작된 이 여성 수녀원은 1949년 공산화로 폐쇄되면서 한국계 수녀들은 추방되고, 독일 수녀들과 독일 수사, 신부들은 평안북도 강계에서 5년 동안 복역하고 1954년 독일로 송환되었다한다. 육이오 전쟁이 있었을 때 한국 수녀들이 대구에서 다시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파코미아 수녀는 발암 후, 아픈 몸으로 드디어 한국으로 귀향할 수 있었다. 2년 동안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투병 중에도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항상 수녀원 이층에 있는 성당에서 꼿꼿한 자세로 기도와 성체조배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류 모니카 정리

전 성 요셉 한인 성당 사목회장

노블리스 오블리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판대믹 사태로 미국내에서는 제일 처음 캘리포니아가 ‘사회적 거리두기’와 공공장소 제재를 행정명령으로 시작한지 한 달 하고도 반이 지났다. 이로인해 생긴 뉴 노멀에 익숙해졌다.

새로운 스케쥴에 따라 하루를 서두르지 않고 보낸다. 미루었던 책 정리, 박스 박스 쌓여 있는 나를 대변하는 내용들을 들여다 보고 폐기한다. 하지 못했던 집안 살림도 배운다. 새 메뉴를 찾아내어 남편과 함께 요리법을 읽어보고 서로 가르치면서 요리도 한다. 혼자 하지 않고 함께 일을 하면 삶이 수월하고 즐겁다는 이론을 실행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무거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 신종 코로나 판대믹으로 직장이 닫히고 따라서 수입이 없어진 젊은층이 걱정되었다. 가장 큰 우려는 질병으로 인한 생명의 손실이지만, 은퇴 인구들과 달리 젊은 층이 겪어야 하는 실직, 학교를 갈 수 없는 자녀들을 온라인 홈•스쿨링에 참여시키고 자신들도 참여해야 하는 새로운 의무를 이해하니 마음이 더 답답했다.

우리들이 지금 겪고 있는 판대믹 같은 사태로 경제적 하향 변동이 있을 때는 정부지원 이외에도 자선(charity)활동과 구호사업(philanthropy)의 역할이 세상을 회복의 싸이클로 이끄는 힘이 된다. 보통 ‘자선활동’은 개인이나 단체, 기업들이 급한 곳에 도움을 주는 활동이다. ‘구호사업’은 문화 교육 예술 분야를 체계적으로 돕는 사회사업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국가 즉 행정부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이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도움의 절차가 복잡해서 어려운 곳까지 인도적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희망의 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판대믹으로 인한 사태는 중간층의 시민들, 특히 젊은이들의 가정을 빈곤층으로 끌어내렸다. 이들이 평소에는 주는 편에 있었지만 이번에는 받는 쪽에 서게 된 것이다.

이김에 자선과 구호사업이라는 말과 함께 짚어보고 싶은 단어가 있다. 자주 등장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단어이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단어가 지금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명사로 쓰인다. 워낙은 ‘nobility(귀족)’ 은 ‘obligates (의무가 있다)’ 라는 하나의 문장이었다. 즉 귀족들에게는 사회적인 의무가 있다는 뜻의 문구이었는데 19세기에 영어권에서 ‘귀족의 의무(nobles oblige)’ 즉 귀족의 불문화된 의무라는 뜻의 명사로 전환하여 쓰이게 됬다. 귀족제도가 거의 없는 지금, 현대의 귀족은 누구일까 생각해 본다면 ‘셀레브리티’ 가 가장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배우, 정치가, 돈 많은 기업가들 정도가 이 카테고리에 들어 갈 수 있지 않을가 싶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현대에는 다른 사람들 보다 나은 경제상태, 또 위치에 있다면 또 원한다면 누구나 기부하는 도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념을 실행하는 개인, 단체들이 생각보다 많다.

캘리포니아 사회적 거리두기 제재 한 달 후에 남가주에 있는 고교 동문회는 750여명의 동문중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특히 젊은 후배 다섯 가정과 동포들이 운영하는 자선단체 네 곳과 엘에이교육구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펀딩’을 돕는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갖고 있는 기금에서 우선 기부금을 전달하였다. 물론 도움을 줄 동문들의 이름은 비밀로 하였고, 받는 단체들에 대해서는 내용을 알렸다. 앞으로 기금이 더 모이면 또 도울 예정이다.

많은 동문들이 참여해 주었다. 우리들은 ‘오블리제’를 한 현대의 ‘노블리스’ 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