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사를 생각하는 여름

원격 수업에서 벗어난 엘에이 학생들은 잠깐의 대면 수업을 끝내고, 여름 방학을 맞게 되었다. 휴가철이 된 것이다. 코비드 19로 인한 판대믹 사태가 시작되었을 때, 캠핑용 자동차(RV:recreational vehicle의 약자)를 구매한 큰 딸네와 함께 오리건 주(州)를 다녀왔다. 손주들의 자전거를 자동차 뒤에 매달고, 간이 호텔 방이 이동한 셈이다. 자동차에는 냉장고가 있어서, 원할 때마다 저장해 온 음료수, 과일등을 꺼내어 먹을 수 있었다. 오리건주까지 열네 시간 이상을 운전해 가야 했다. 세 번의 끼니를 충족하는 플랜을 짜고 집을 떠났다. 때에 맞추어, 프리웨이 쉼터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서둘지 않고 하던 식사는 의외로 맛났다. 대 가족이 경제적인 방법으로 휴가를 지날 수 있는 좋은 해결책을 코비드 19 덕분에 알게 된 셈이다.

프리웨이에는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RV가 보였다. 이미 몇 달 된 소식이기는 하지만 텍사스주(州)에 본사가 있는 캠핑 전문 차량회사, 아웃도어시(Outdoorsy) 판매량이 2020년 4월부터 10월 사이에 4600% 성장했다고 폭스뉴스가 보도했다. 이것은 판대믹으로 모든 국민의 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호텔을 사용하지 않고, 안전하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여행할 수 있는 주목받는 여행방법이 되었다고 부속 설명을 했다. 젊은 가족들이나 밀레니얼 세대 (Y 세대: 대충 1981년~1996년생)이 가장 많이 RV를 렌트 하거나 사들인다고 했다.

워낙 거대한 나라 미국이기에, 달리는 차의 창문을 통해서 보게 된 지역들은 서로 다른 지질적인 특징을 보여 주었다. 숨 쉬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사막지대가 있고, 푸른 고목이 울창한 곳 또는 채소를 재배하는 초록색 밭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펼쳐져 있는 농장지대도 보였다.

그런데 가끔 프리웨이 가장자리 빈터, 주로 오른쪽 쇼울더(shoulder)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빛바랜 꽃다발과 십자가가 눈에 띄곤 했다. 꽃이 놓인 자리 근처에서 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친척이나 친구를 기리는 뜻으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CDC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뜻하지 않은 사고사(事故死) 즉 우리 한국 사람들이 흔히 표현하는 ‘제명에 죽지 못한’ 경우가 미국인 사망 원인 중, 심장병(655,381명), 암(599,274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고 보고했다. 2018년 한 해 동안 167,127명에 달했다고 한다. 독물중독, 차 사고, 낙상이 사고사의 3대 원인이다. 여기에 뽑히지는 않았지만, 여름철에 흔한 익사(溺死)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하루에 약 10명이, 세계적으로 일 년에 약 50만 명이 익사한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다. 세계 통계에는 홍수로 죽은 사람들이 포함된 숫자이다.

한 살부터 44세 나이대의 사망 원인 중에는 사고사(事故死)가 제일 많다. 많은 경우, 이 ‘뜻하지 않은 사고’는 예방이 가능하다. 사고사 이외의 10대 사망 원인이 되는 다른 질병들도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사망은 예방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보면, 폐 질환, 뇌졸중, 당뇨, 자살등이 그렇다. 군 복무 중에 적군에 의한 죽음과 사고사는 구별되어 기록된다. 참고로 코비드 19에 대한 통계는 집결되지 않았고, 현재 보고되는 숫자는 충분한 리뷰를 거쳐서 재확인되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사고 즉 전쟁에 의한 것이나, 실생활 중에 일어나는 위험한 상황은 국가를 중심으로 체제적인 안전규범을 체계적으로 강화해서 예방할 수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는 사고와 질병 예방에 대해서 교육의 뜻을 갖고 실행하고, 필요하면 훈련, 강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몰두했던 여행이었다. 캠핑 자동차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시작한 여름이다. 차세대들과 했던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이었다.

2021.7. 중앙일보 오픈 업 원고

법과 의료: 맺어저서는 안 될 때가 있다.

간호사는 유방암 치료를 위해 의뢰되어 온 환자를 진찰실에 안내하고 가족력, 과거력 확인 후, 혈압, 몸무게를 기록하고 나서 나에게 귀띔해 주었다. 그 유방암 환자는 트렌스젠더라고 말이다.

환자는 작은 체구에 숱 많은 턱수염을 기르고 있는 남자였다. 젊잖아 보였다. 여자였다던 그에게 남장이 잘 어울렸다. 와이프라고 소개하는 여인이 함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원해서 남자로 살고 있었다. 그 환자는 유전자형(遺傳子型, genotype)으로는 여자였다. 여성은 선천적으로 난소, 자궁, 질, 유방을 갖고 태어난다. 이 여인은 여자를 여자답게 만드는 기관들을 수술로 없애지 않고 남성 호르몬을 투입해서 그 기관들의 기능을 죽여왔다. 그래서 밖에서 보기에(表現型, phenotype) 그는 남자였다.

남성 호르몬 투여로 수염이 자랐고, 목소리가 굵어졌다. 그에게 남아 있던 유방과 난소는 기능을 잃었지만, 남성 호르몬은 그에게 남자 성기(性器)를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성기는 수술로 만들어 주어야 하는데, 그녀는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남아 있던 유방 세포에서 암세포들이 만들어지고, 자랐다.

우리는 성 정체성에 대해서 별생각 없이 산다. 성 정체성은 태어날 때 여자 또는 남자라고 주어지는 종목이다. 그런데 인구의 약 2% (0.05-1.7%) 정도는 육체적으로 애매한 성기를 갖고 태어나는데 이를 인터섹스 (간성 間性)라고 부른다. 조금 설명을 해 보자면, 밖으로 보이는 남자/여자의 특성이 염색체나 생식기관 또는 성기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이다. 간성인 사람은 남자, 여자, 둘 다 또는 둘 다 아니라고 자신을 내세울 수 있다. 유방암 치료를 위해서 나를 찾아왔던 그 남자환자는 간성이 아니고 유전자형으로는 여자이었던 성 소수자 트렌스젠더였다. 간성과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는 서로 관계가 없다.

캘리포니아 법안 중에 간성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의 생식기관이나 성기를 교정하는 수술 시점을 두고 법안이 몇 번 상정되었다. 번번이 기각되었다. 최근 것은 12살이 될 때까지 수술로 교정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올해 5월에 발안 되었는데, 보류상태이다. 정치인들의 발안 내용이 의료인들의 의견과 환자 또는 환자 가족들이 겪은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서, 오해의 여지를 많이 주고, 환자들에게 도움보다는 해를 끼칠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자신이 남자 혹은 여자가 되기를 원하는지가 제일 중요할 것이다. 본인의 뜻에 맞게 해 주어야 한다면, 어린이가 몇 살이나 되었을 때,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을 것인가를 숙고해 보아야 한다. 환자는 확신이 필요하다. 또 부모와 소아 성(性) 수술 전문의사들에게는 단순할 수 없는 과정을 함께 이해해 가면서, 아이가 결정하는 시점에 도달해야 한다.

정의로운 법처럼 좋은 것이 있으랴 싶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법과 정치가 충분한 연구와 고찰을 통하지 않고 의료에 개입되었을 때, 인류는 고통을 겪었다. 때로는 목숨을 타의에 의해서 잃기도 하고, 자유를 박탈당했으며, 깊은 상처를 입기도 했다. 좋은 예가 19세기 말에 시작되었던 ‘우생학 운동(Eugenics Movement)’이다.

우생학이란 생물학적으로 좋은 종류의 사람들만 남기고, 열등하다고 판정되는 사람들의 번식을 막는 법이었다. 이 법이 시행되도록 한 사람들이 많지만, 미국의 우생학 방법을 나치 히틀러에게 전수시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핸리 러글린과 콘플레이크 시리얼을 만들어 낸 존 하비 켈로그 의사가 선두 주자였다. 미국에서 19세기 말부터 1940년대까지 시행되었고 1927년 대법원의 인가를 받았던 이 법 때문에 7만여 명의 미국인들이 강제로 피임 수술(정관수술, 난소관 수술)을 받았거나, 생식이 가능한 나이 동안 강제 집단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다.

그 당시 열등 인간으로 간주하였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들여다보자. 지적장애인, 신체장애인, 간질병이나 정신질환 등이 있는 사람들, 유색인종, 혼합 결혼자 (타 인종끼리의 결혼)들이었다. 백인 중에는 동유럽, 남유럽인이 해당하였다고 한다.

역사를 배우면서 인간이 만든 부조리한 법, 인간이 행한 정치의 횡포를 본다.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1909년부터 1979년 사이에 강제 피임 수술을 받았던 사람들과 1979년 이후에 감옥에서 역시 강제 피임을 당한 사람들의 후손에게 보상금을 주기로 책정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는 우생학 비리에 앞장섰던 주(州)이다.

인터섹스로 인한 선천적 결함이나 LGBTQ 성 소수자들이 택한 길을 정상, 비정상의 잣대로 재어서 가두어 놓지 말자. 내 눈 속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는 우리들의 우매함을 일깨우는 성서 구절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2021.8 중앙일보 오픈업 원고

홈리스 고양이가 인도한 한국어 진흥으로 향한 길

무얼 사러 들렸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근무처 병원 근처에 있는 가전용 철물, 꽃, 정원 도구를 파는 홈디포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 주차장에서 까만 홈리스 고양이를 보았다. 주위를 경계하는 듯, 두리번거리면서 잽싸게 움직이던 마른 모습이 마음에 걸려, 며칠 후 퇴근길에 다시 들렸다. 어떤 타 인종 아줌마가 나무 사이 덤불 밑에 고양이 먹이를 놓아주고 있었다. 그 아줌마는 TNR(trap-neuter-return: 덫-피임 수술-반환)을 하는 봉사단체 일원이었다.

TNR이란, 말 그대로 (길고양이를) 포획하고, 피임 수술을 시킨 후에 워낙 살던 동네에 다시 놓아준다는 뜻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미국에는 6천만에서 일억 마리나 되는 홈리스 고양이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 년에 약 백만 마리가 안락사를 당한다고 알려져 있다.

까만 홈리스 고양이 구출 작전(?)을 암 치료 테크니션 도나와 세웠다. 성공적으로 입양도 되었다. 이 과정에서 UCLA 대학 문 애리 사회학 교수를 만났다. 고양이 구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알게 된 문 교수는 자기의 전공 사회학과 상관없는 한국어 진흥을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는 특이한 학자였다. 문 교수는 나를 한국어진흥재단으로 인도했고 그곳에서 차세대를 위해 한국어가 세계 언어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를 해온 이사들을 만났다.

누가 그랬던가?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세웠던 계획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배운 것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 삶이 흥미로운지도 모르겠다. 나야말로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던 것이었다.

나는 한국어 교육에 대해서 문외한이었지만, 문화적 자극이 없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는 청소년이 한가지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사회경제적으로 뒤지지 않는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논문을 통해 알고 있었다. 가난하다고 머리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생계유지 때문에 부모들이 함께하는 시간이 적은 아이들은 정신적, 문화적 자극이 결핍되기 쉽다. 어린 시기에 학교에서 제공하는 외국어를 배울 때, 뇌의 표면적은 넓어지고, 이는 지능지수를 높인다.

이 나라에서 외국어라면 영어 이외의 세계 언어들이 다 포함될 것이다. 한국어가 공립학교의 선택과목으로 인정된 것은 겨우 20여 년 전의 일이다. SAT II 한국어의 등재였다. 그러나 지난 1월에 SAT II 과목 전체가 폐지되면서 SAT II 한국어 시험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SAT II보다 높은 차별화 된 최고 과정은 AP이다. AP란 Advanced Placement의 약자로, 대학교 학점을 고등학교에서 취득하는 제도이다. 38개의 과목이 선정되어 있고, 이 38개 과목 중에 일본어, 중국어는 포함되어 있어도 한국어는 없다.

SAT II 한국어를 등재 시키는 것에 한몫했던 한국어진흥재단은 칼리지 보드가 AP 한국어를 짧은 시일 내에 출시하도록 그 준비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칼리포니아 주민들의 협동으로 2016년 프로포지션 58을 통화시켜 공립학교에서 이중언어 프로그램을 재생시킨 것 처럼, 학생, 학부모, 한국 커뮤니티, 단체가 함께 하면 성공한다. 12기관이 동참했다. 이 협동심은 ‘AP 한국어 개발 서명운동 (supportapkorean.org)’을 통해서 주민들이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3주가 되어가는데 서명한 분들이 약 20,000명에 육박한다. 비 한국계 시민들과 한국 거주민들도 참여하고 있다. K-Food, K-Beauty, K-Culture, 등 ‘K’의 상징은 힘이 있다. ‘K-Language’ 한국어는 우리의 자랑이고 힘이다. 칼리지 보드를 찾을 계획은 잘 준비되어가고 있다.

길고양이가 인도한 낯선 곳에서, 외국어 교육의 의학적인 의미를 깨달았던 것이 새삼 뜻깊다. 덧붙여, 외국어를 터득함으로써 얻게 되는 능력이 우리 아이들의 삶을 더 좋고, 의미 깊게 한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미국의 차세대가 한국어를 통해서 글로벌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은 공상이 아니다. 독자들도 ‘supportapkorean.org’ 에 서명하시고, ‘가보지 않은 길’로 보일지 모르지만,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 함께 하는 희망은 ‘K-Power’이기 때문이다.

2021.5. 미주 중앙일보 오픈업 원고

타향살이 추수감사절

11월도 저물고 있다. 11월 추수감사절로 시작해서, 미국은 달포 이상의 홀리데이 시즌으로 들어간다.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하는 따뜻하고 즐거운 시절이다. 한 해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감할 수 있다면 더더욱 은혜로울 것이다. 행여 코비드-19 사태로 경제상태와 건강이 악화되어 어렵다면, 마음을 가다듬고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작은 보석이 어딘가 숨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찾아내어, 가족들과 나누면 좋겠다.

어제 우리 부부는 홀로 있는 조카, 다른 주에서 이날을 함께 하려고 온 사위의 부모님들과 함께 큰 딸네 가족과 지났다. 내가 젊었을 때는 큰오빠와 언니네가, 내가 중년이 되었을 때는 내가, 추수감사절 상을 차렸었다. 몇 년 전부터, 이 축제의 의무가 자연스럽게 큰딸에게로 넘어갔다. 추수감사절 상 준비에 딸 내외, 손주들, 조카, 사돈들이 투자한 시간과 노동은 엄청나다. 11 살짜리 손녀는 사과 파이, 호박파이, 피칸 파이, 로즈머리 빵을 굽느라 온종일 일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 손녀는 요리와 빵 굽는 것에 흥미가 많아서 불평이 없다. 간혹 국적이 애매한 음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는 이때가 되면, 갓난아이 큰 딸과 우리 부부가 맞이했던 미국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이 생각난다. 남편과 나는 거의 반세기 전에, 미국 의과대학에서 수련 과정을 이수하고 싶어서 도미했다. 매칭프로그램으로 첫 번째 파견된 병원이 실망스럽게도 뉴욕 주에 있는 존슨 시티라는 시골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란 도시 출신인 나에게 미국의 시골 생활은 상상했던 멋진 미국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또 친구나 친지가 가까이 없었다. 지식으로 잘 알고 있었던 추수감사절이었지만, 칠면조고기, 호박파이는 만들 줄도 몰랐고, 덩그러니 우리 식구 셋이 맞이했던 첫 추수감사절은 서러울 정도로 쓸쓸했다. 그때 경험한 타향살이의 외로움은 뼛속 깊이까지 골을 팠던 것 같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노숙자들에게 칠면조고기와 으깬 감자 요리를 제공하는 기관이 많다. 그러나, 길에 나 앉지는 않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또는 가족 없이 홀로 살기 때문에 명절 음식을 함께 만들고, 또 나누면서 지나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명절 때 오는 외로움은 타향살이 이민자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부류에게 많다. 우리 가족 중에도 객지(!)에 나가 있는 조카네와 둘째 딸네가 타향살이 중이다. 마음에 걸렸다. 이들과 함께 지내려 추수감사절 이전에 더블린과 바셀로나를 다녀왔다. 코비드 상태가 염려되는 여행이었다. 아일랜드와 스페인 코비드 감염 정도는 미국보다 약 0.5% 가 낮은 인구의 10% 정도이기는 하였다.

두 곳을 방문하기 위해서, 미국 출발 전, 더블린에서 바셀로나로 가기 전, 바셀로나에서 귀국하기 전, 이렇게 세 번 코비드 테스트를 받았다. 의외로 국제 여행객이 많았다. 비행기는 거의 만원이었다. 마스크를 하고 있어도, 비행기 안에서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어렵다. 접종 증명서를 여권과 함께 보여 주어야 하는 것 이외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행객들은 이동하는 것 같았다.

더블린을 방문했을 때, ‘EPIC’이라는 뮤지엄에 들렸다. 이민역사를 테마로 만든 곳인데, 내가 봉사하고 있는 한국어진흥재단이 새로 만든 이중언어(영어와 한국어) 교과서 이름과 같아서 반가웠다. 괜스레 우연 같지는 않았다. 이 방문 중에, 더더욱 놀란 것은 더블린 정규학교에 한국어 클래스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어 반을 이끌고 계시는 교사 선생님을 만나 뵈었다. 7개의 정규학교에서 400여명에게 한국어를 세계언어로서 가르치고 계셨다. 참으로 한국인들은 어디에서든지 우뚝 서는 기상이 있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라가 힘을 잃고, 속국이 될 때, 지배국이 속국의 말과 글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통상이다. 말과 글은 민족의 얼이기 때문에 말과 글을 말살시키면 얼은 빠지고 허수아비가 된다. 자체성은 흔들리고, 지배국의 통제는 쉬워진다. 한국민은 일제 강점기 때 이에 저항해서 참 끈질기게 싸워왔다. 광복 이후 우리는 우리의 글과 말을 자유로이 쓰고 발전시키면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지금은 한글을 세계화할 때이다. 이 미국에 있는 디아스포라들의 노력은 정규학교에 한국어 클래스를 넣는 일이다.

유럽에서 타향살이하는 가운데,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한민족의 언어도 습득해야 한다는 테스크를 안고 있는 그들이지만, 이민 일세들이 칠면조 굽는 문화를 익혔던 것보다, 더 쉽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혈통 언어, 한국어를 습득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아일랜드에서, 스페인에서 외로워 하는 것 같지 않았다.

2021년 11월 추수감사절에.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하는 선입관

‘미시즈 미치밀러는 나를 싫어해요!’

‘정말? 왜 그렇게 생각해?’

‘나는 투명 인간인가 봐요. 그 선생님은 질문에 답하려고 손을 들어도, 나를 시키는 적이 없어요. 남학생을 더 좋아한대요.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요.’

개학한 둘째 손녀가 들려준 선생님이 남학생을 선호한다는 가십(gossip), 선생님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편견이 마음에 걸렸다. 둘 다 ‘선입관’에 연관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이다. 데자부(déjà vu) 이다. 언젠가 비슷한 이슈를 갖고 이 아이의 엄마인 큰딸과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난다. 딸이 초등학교 시절, 동네에 살던 딸의 친구가 딸의 새 담임이 될 선생님은 ‘불공평’하고, ‘아주 무시무시한 사람이다.’라고 전했다. 딸의 친구는 딸보다는 한 살이 많아, 한 학년이 높았고, 바로 그 선생님 반에서 학년을 마칠 예정이었다. 이 말을 들은 딸은 걱정이 지나쳐서 불안해했다.

우리들은 선입관 때문에 갖는 편견으로 많은 실수를 하게 되고, 또 손해를 본다. 이에 대한 예를 들어 본다. 인종, 성, 나이, 출신 지방, 경제상태에 대한 차별등 얼마나 많은가. 미국에 이주해 온 한국인을 위시한 동양인들이 겪은 인종차별의 트라우마를 우리는 잘 알고, 또 겪었으며, 지금도 겪고 있다. 이처럼 선입관은 공정한 판단을 방해해서 편견을 갖게 하고, 편견은 평정의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해자, 피해자 모두 다치기 쉽다. 불행한 일이다.

환자들이 선입관, 편견 때문에 갖는 피해는 생각보다 많고 때로는 심각하다. 암 진단을 받고, 이에 적합한 치료가 처방될 때, 누군가에게서 받은 정확하지 않은 정보 때문에 흔들리는 환자들, 때로는 그런 이유로 입증된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들도 있다. 정보의 출처를 물어보면 어처구니없게도 경험에서 나온 충고가 아니고, 여러 다리를 거친, 누군가가 처음 시작하고, 제공된 허위 정보인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오보의 제보자들이 암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놀랍다. 그런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믿는 환자들도 한심하다.

환자들의 경우, 정리된 상담이 필수적이고, 그 외의 대중적인 편견은 체제를 갖춘 집단교육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지면 관계로 환자들의 경우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자신이 발병한 병이 무엇이며, 입증된 치료방법이 무엇인지 환자가 우선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중요한 치료에는 크고 작은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점도 집고 지나가야 한다. 치료로 생길 수도 있는 부작용을 설명할 때, 솔직한 것이 가장 좋다. 의사마다 접근 방법이 다르긴 하다. 확률을 놓고 환자를 이해시킬 때, 의사나 간호사의 인생관이 동전의 양면처럼, ‘빛과 그림자’ 중, 강조하는 부분에 차이가 있다. 또 듣는 환자와 가족들도 같은 말을 들었지만, 이해의 색깔이 다를 수 있다.

영어로 선입관이라면 미리 입력된(preconceived), 미리 차지한(preoccupied), 미리 판단된 (prejudice) 라는 단어를 포괄적으로 쓴다. 앞에 ‘pre-’ 라는 부사가 붙어 있다. 우리들이 흔히 쓰는 단어 프리스쿨이 좋은 예이다. 정식 초등학교 과정 이전에 다니는 학교라는 뜻처럼, 프리(pre-)란 ‘이전’, ‘먼저’, ‘미리’라는 뜻이다.

딸은 어렸을 때, 편견에 대해서 이해했다. 지금 나 처럼 종양 방사선학 전문의사로 자기처럼 편견을 가진 환자들이 왔을 때, 그들의 편견을 바로 잡아주고, 타당한 치료를 처방하면서 나날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딸의 딸을 위한 편견 소탕 작전은 진행 중이다. 우리가 진취적이고, 바른 삶, 또 뜻하는 바를 이루면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하는 밑에 깔려 있는 선입관을 인지하고, 이로 인한 편견을 물리치는 능력을 연마하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