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준 선물

2020년 1월 19일 미국 최초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보도되었다. 그 후 2월 11일 코로나바이러스 병은 COVID-19이라고 공식적으로 병명이 정해졌다. 바이러스의 이름은 SARS Coronavirus 2 (SARS-CoV-2)이다. 2003년 있었던 사스 균과 공유하는 유전 정보가 많아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 2 가 되었다.

예방약이나 특수 치료제가 없다보니 빠른 전파를 막는 최선의 방법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행정법으로 채택하고 세계는 엄격히 이것을 준수해 오고 있다. 미디어는 하루도 걸르지 않고 변해가는 사태를 보도해 주어 고맙다. 오늘은 칩거규제 완화를 암시한 기사가 있었다. 또 의학적, 과학적인 새로운 내용들도 계속 업데이트 되어 실리고 있다. 임팩트 팩터가 제일 높은 미국의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 (NEJM)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그동안 우리들은 미디어와 저널들을 통해서 많은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고 이루어져야 하는 변화에 대해서 고심하고 있다. 다수의 생명을 잃은 것은 슬프지만, 이 사태로 인해서 인류는 많은 선물도 받았다고 생각된다.

위에 말한 ‘임팩트 팩터’란 한국말로 ‘충격계수’인데 이에 대한 설명이 약간 필요하다. 이것은 학술지의 우수성 순위를 매기는 방법중의 하나로 보면 된다. 주로 최근 2년 동안 새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할 때 과거의 논문과 이를 실은 학술지 인용의 빈도에 따라 계산된다. 학술지의 명망은 의학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나누는데에 있다. 이미 발표된 내용을 새 것인 것처럼 도용, 발표해서는 안되는 잉겔핑거 법칙을 준수해야 한다. NEJM 이 제일 높은 점수 70 점이고 다른 두 학술지,JAMA 와 Lancet 은 50점 대이다.

오늘은 이 NEJM 학술지를 통해서 발표된 내용 중 몇가지를 나누고 싶다. 첫 발병자에 대한 상세한 치병 과정을 1월 30일 발표한 후, 4월 첫 주에는 바이러스 학 이외에도 이 병이 주는 사회적 영향에 대한 분석 내용도 있었다. 예를 들면 랜드 연구기관 연구학자들인 스탠포드 대학 멜로 교수, 미시간 대학 하파지 교수가 발표한 “ 글로벌적 생각, 지방주의적 치료’ 라는 논문이다. 지식의 빠른 세계적 공유와 질병 대치에 대한 협조의 중요함에 대한 것이었다.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국가적 관심의 촉구도 좋은 내용이었다. 미국에 있는 2 백 2십 만 명의 수감자들을 방관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들의 50%는 적어도 한 가지의 만성병을 앓고 있다. 81,600명 (3.7%)가 60세 이상이다. 이들의 ‘사회적 거리’ 두기는 실제로 불가능하다. 코로나 감염이 발발할 경우의 심각성은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받은 선물들이 있다. 평소 기껏해야 서너시간 가족들과 마주대하던 바쁜 삶을 접고 하루 24시간을 집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지나면서 서로를 다시 알아가고, 관심과 배려의 방식을 익히고 있다. 외로울 수 있는 지인들에게 마음을 전한다. 물질주의를 멀리하고, 삶의 목표를 재조정 중이다. 정부는 그들의 리더십에 대해서 고민한다. 불필요한 외출이 줄어든 뉴 노멀로 트래픽이 없고, 공기는 맑아졌다. 여러 방면에서 규제를 받아 지체되어 온 원거리 진료와 치료가 디지털 전략으로 실행이 가능하고 타당하게 된 것은 큰 선물이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의료계의 디지털 혁명은 가정 생활의 새 방식 미니멀리즘과 절제를 받아들인 범사회적 혁신과 더불어 우리에게 주어진 귀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밀린 숙제를 한다

“왜 모자들을 쓰지 않았지요?” 6 피트 정도 떨어져 앞에 서 있던 내 나이 또래의 할머니가 돌아서며 말을 붙인다. 모자를 쓴 할머니는 마스크에 핑크색 비닐장갑도 끼고 있다. 마스크 하는 것은 권장해도 모자는 쓸 필요 없다고 대답했더니, 할머니는 미장원이 닫혀서 여자들은 당연히 어수선한 머리를 가리기 위해서 모자를 쓸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모자를 쓰던, 머리 짜르는 방법을 개발해서 스스로 삭발을 하던 자가격리 때문에 생긴 이 뉴 노멀,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장점 중의 하나로 마음에 든다.

어제 아침 7시 시니어 시간에 마추어 동네 마켓에 갔을 때의 일이다. 도착해 보니 이미 18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가 쇼핑 할 수 있는 사람 숫자는 적절한 사회적 거리를 두고 쇼핑 할 수 있게끔 결정해서 그들 방침대로 운영하는 모양이었다. 처음에 7명에서 짜르더니, 세번째 팀에 끼어 나도 들어 갈 수 있었다.

COVID-19 팬대믹이 삶의 우선순위와 진정한 의미를 재고하게 한다. 아마도 우리들의 행동 과학(Behavioral Science)의 정상치도 변하게 될 것이다. 외출을 줄이고 집에서 원거리 비지니스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행운이다. 그럴 수 없는 비지니스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을 자제하고 그로서리 숍핑도 최소한 줄이는 것은 마땅하다. 나도 재고품목을 쓰고, 먹으면서 지나고 있다. 조금도 아쉽지 않다. 그래도 야채는 어쩔 수 없이 구해 와야한다.

이미 전 세계 확진자 수가 백 만을 돌파하였다. 무증상 감염자와 감염 여부 테스트를 받지 않은 인구를 감안 할 때 감염자는 백 만 이상일 것이다. COVID-19 판대믹으로 인해 생긴 뉴 노멀인 ‘사회적 거리두기’ 는 치료제가 없는 이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예방하는데 효과적이다.

원격으로 학교생활 대신 학과목 수강, 비지니스, 그외의 활동이 진행 유지되고 있다.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원격 소통으로 흔히 스카입(Skype) 과 줌(Zoom)이 쓰인다. 코로나 판대믹 사태를 전후해서, 스카입(Skype)은 하루에 약 74% 증가한 4천만 명이, 줌(Zoom)은 20배가 뛴 2억 명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원거리로 비지니스가 운영되고 있다 해도 미국인들의 실업 상황은 역사상 최악이다. 노동청은 3월 28일자로 실업자 수당 신청이 3백 3십만에서 6백6십만으로 뛰었다고 발표했다.

우리 모두는 어려운 상황 안에 있다. 어려움을 사기고 이 때를 기회 삼아 삶에 보탬이 될 수 있게 하는 일이나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정답은 없다. 그래서 나는 밀린 숙제를 하려 한다. 나의 숙제는 반세기 동안 의사생활에 바빠 뒤로 밀어 놓은 쌓여 있는 과거를 들여다 보고, 버려 주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하지 못한 숙제는 있을 것이다. 숙제를 끝내고 나면 홀가분 해 질 것이다.

또 가족들은 계획하지 않은, 여행을 떠날 수도 없는 휴가 아닌 휴가이지만, 이 기회에 서로 시간을 나누면서 밀렸던 대화도 하고, 요리나 청소도 함께 하면서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나날을 가진다면 좋은 휴가가 될 것이다. 만약 풀지 못 한 숙제, 그 문제가 가족간의 불화나 불통이었다면 이 참에 긴장을 내려 놓고 대화로 풀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대믹과 동반한 보육, 가정경제 문제

나는 큰 딸네 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학교가 닫혔고 여섯 살, 여덟 살, 열 살 손주들은 하루를 함께 할 어른이 필요하다. 모든 의료계의 종사자들이 그렇듯이 환자들은 딸과 사위에게 여러 면에서 아이들 보다 우선 순위가 높다.

손주들은 집에서 일정 시간에 학교가 마련한 온라인 클래스에 참여하여야 한다. 아침 9시가 되니 아이들은 각각의 컴퓨터에 로그 인 해서 학교 수업에 참여한다. 일 학년인 막내의 컴퓨터 수업이 제일 시끄럽다. 일 학년 꼬마들은 학우들, 담임 선생님을 영상으로나마 보니 반가운 모양이다. 오늘의 과제는 ‘내가 중요한 사람인 이유’, ‘만약 내가 뒷마당에서 레프리콘을 발견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라는 두 토픽을 갖고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오늘이 성 패트릭 데이라서 두 번 째 질문을 만든 모양이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COVID 19) 로 인한 판데믹은 지금부터 102년 전, 일차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측되는 ‘스페인 독감’, 2009 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돼지 독감’ 에 이어 세 번 째 이다. 사이 사이 이름 붙여진 독감이 있기는 했다. 독감이 박테리아가 아닌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 1930년 이었고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체 서열을 완벽하게 알아낸 것이 2005년이다. 인체 쌤플은 알라스카 얼음층에서 발굴한 시체에서 얻었다고 한다.

이번 사태로 처음에는 마스크 품절로, 몇 주가 흐른 지금은 일상용품 축적 경쟁으로 혼란스럽다. 이 중에 어린이들의 보육이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학교가 쉬고,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들을 거두기 위해서 직장을 쉬어야 하는 부모들, 그로 인해 흔들리는 가정경제, 비록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영업을 접어야 하는 서비스업계, 자영업자들이 겪어내야 하는 경제적 하향 조정등 사태는 미국 뿐 아니라, 많은 나라의 실질적인 과제로 닥아왔다. 연준이 이자율을 두 번이나 내렸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분명하지 않다.

마스크에 대해서 좀 알고 지나갈 필요가 있다. 외과용 마스크는 세 겹으로 되어 있다. 제일 안쪽과 바깥 쪽은 물을 잘 흡수하는 친수성으로 되어 있고 중간은 필터로 되어 있어서 필터의 정전기로 이물질을 잡아준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공 모양인데 지름이 120-160 나노미터 (nm=1/십억 미터) 로 작지 않은 RNA 바이러스이다. 암세포 보다는 크고 박테리아보다는 작다.

대부분의 마스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차단하지 못하지만 5-10 마이크로밀리 (5000-10000 나노미터)의 침방울과 합해져서 기침이나 재채기 할 때는 입 밖을 튀어 나와 이동할 때 쉽게 마스크에 걸릴 수 있다. 한 겹의 헝겊이나 커피 필터로 만든 자가 마스크는 바이러스를 막을 수 없고 먼지나 페인트 같은 큰 이물질을 잡아 줄 수는 있다.

인플렌자를 예방하는데 중요한 사항은 군중과의 격리, 병자 격리 뿐 아니라 의료계가 추천하는 마스크의 적절한 착용과 더불어 위생관념의 준수, 특히 손을 자주 씻어 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마스크만 사용하는 것은 효과가 없음을 임상실험이 밝힌 바 있다.

휴교로 인한 어린이들의 보육, 보육을 위해 직장을 쉬어야 하는 부모들의 경제적 고충, 정규직이 아닌 임시직들의 실직으로 인한 타격, 불황기로 접어드는 세계 경제가 우리를 무겁게 누르고 있다. 하지만 이 시련은 우리 아이들이 물질주의에서 탈피하며 자라게 할 것이고, 가정은 협조하면서 화목해 지고, 세계는 전쟁보다 건강과 평화의 중요함을 위해 더 노력하게 될 것으로 믿고 싶다.

이제, 나는 딸과 사위로 부터 나를 보호해야 하므로, 이젠 손주들을 보아 줄 수 없겠다. 무슨 방도를 찾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마친다.

‘여성 역사의 달’에 한국 여성 리더들을 생각하다

 

1988년 로널드 레건 대통령 재임 때 ‘여성 역사의 달’ 이라 선포된 3월이 왔다. 올해 3월은 과거 세상사가 남성 위주였다는 인식을 뒤 돌아 보려는 노력이 두드러게 보인다. 가려졌던 여성들의 공로를 찾아 보고 알리자는, 좀 색 다른 3월인 것 같다.

미국 2대 대통령의 아내이자 6대 대통령의 어머니인 아비게일 아담스는 여성들의 사회참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남편인 죤 아담스 대통령에게 상기시켰다. 그러나 여성 참정권이 부여된 1920년 까지 140여년이 걸렸다. ‘여성의 달’은 1988년 제정되었으니 거의 200년이 지난 셈이다. 여성의 참정권리 뿐 아니라 인권을 위해 싸워 왔던 많은 여성들, 그리고 남성들이 있다. 여성들은 백인도 있고 유색인종들도 있었다. 참고로 한국여성들의 투표권은 일제강점기가 끝난 1945년 부터 있었다. 한국은 그런 면에서 개화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1945년에 한국남성들도 처음으로 투표권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인권을 위해서 뿐 아니라 한국 같은 경우는 유관순 독립의사 같이 인권과 국권을 위해서 항쟁했던 위대한 여성들도 있다. 또 의료부분에서도 전례를 깨고 의과대학에 입학원서를 내고 당당히 첫 의대생이 된 이민자인 엘리사벳 블렉웰도 잊을 수 없다.

지난 주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이에 맞추어 타임(Time) 메거진은 ‘올해의 여성’이라는 제목을 붙여 과거 100년 동안을 회고하고 한 해에 한 명의 여자들을 선정해서 3월 호를 출판했다. 타임지는 1927년 ‘올해의 남성’이라는 칼럼을 만들었고 1999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 범위를 바꾼 후, 여성들도 뽑기는 했지만 72년 동안 많은 여성들을 놓쳤음을 인식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올해의 남성’이라는 칼럼은 메거진이 구태의연하고 활기를 잃어 가고 있을 때 새로운 도약의 도구로 구상해 내었던 것이었다 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대서양을 비행기로 최초 횡단했던 챨스 린드버그를 적당한 시기에 대서특필 하지 못한 실수 때문에 한 해를 마감하면서 공인하는 의미에서 만들었다고도 한다. 하여간 챨스 린드버그는 타임지의 첫 번째 ‘올해의 남성’이었다.

다시 여성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1920년 부터 2019년 까지 한 세기를 아우르는 세월 속에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힘든 일들을 해 낸 여성 참정권을 성공시킨 여인들 부터, 에이즈 바이러스를 발견한 프랑소아 바레-시누씨 (1983),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필리핀의 코라존 아퀴노,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여인 플로렌스 조이너, 인권 보호의 타이틀 나인(Title IX)을 통과시킨 하와이의 팻치 타케모도 밍크 하원의원, 그외에 가수, 작가, 여왕, 공주, 수상, 대통령, 대통령 영부인등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마담 마리 큐리는 보이지 않는다. 마담 큐리는 폴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화학자로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던 우리 같은 디아스포라였다. 물리와 화학의 두가지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과학자이며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다. 폴로니움과 레디움 동위원소를 발견한 여인으로 발견한 동위원소를 모국을 기리는 의미에서 폴로니움이라 명명했던 여성이다. 그녀의 공로로 현재 발암 환자의 약 50%는 완치목적 또는 증상완화 목적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

동양 나라 중에 중국, 일본, 필리핀, 인도 출신의 여성들은 있는데 한국 여성은 없다. 한국 여성들이 반열에 오를 때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 좋겠다.

‘여보’ 라는 말

‘여보’ 라는 말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 진다. 이 말은 특별한 뜻을 갖고 나에게
닥아 온다. 내가 세상에서 단 한 사람에게만 주는 이름, 또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는 부부끼리 ‘아무개 씨’하고 부르는 커플들이 있다. 우리 부부도 그렇게 세속
이름이나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개 씨’는 삼인칭 호칭이고, ‘여보’는 이인칭 호칭이다. 아주 가까운 관계 속의 이인칭의 부름이 여보라는 것일게다.

내가 밥과 빵을 질력 내지 않고 좋아하는 것이나, 바크의 음악을 들으며 평화의 싸이클로
들어가는 것도 비슷한 의미를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의미 한 것 같기도 하고, 평범한 것 같으며, 때로는 지루한 것 같은데, 없으면 찾고, 먹을 수록 들을 수록 편하고 좋다.
안심하고 편안하게 나를 내어주고 접할 수 있기 때문인가 보다.

‘여보’란 말은 평범한 단어 안에 깊고 맑은 사랑의 샘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여보’란
평범한 말이 아닌 것 같다. 세상에서 한 사람만 빼고 나를 ‘여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나를 ‘아무개 씨’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 한 사람만 빼고 전부라도 과언은 아닐게다.

‘여보’라는 말.
처음 만났을 때 가졌던 차갑고 예리했던 이성도, 뜨겁고 부풀었던 열정도, 사랑하므로
느꼈던 아픔도 이제는 내가 매일 먹는 밥 처럼, 그렇다-.

그러나 그 ‘여보’라는 말은 소망을 갖고 언제나 나를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 ‘여보’는 연륜이 지어준 편안한 주름, 희끗 희끗한 반백의 머리칼, 여전히 깊고도 차가운 듯 싶은 눈으로
소망을 함께 하자고 말 없이 말한다.

 

***오래 전에 썻던 글을 줄여서 올립니다. 중앙일보에는 ‘김영률’ 이라는 이름으로 나갔지요. 제 어머니의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