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한 권의 책

‘나를 만든 한 권의 책’이라는 칼럼에 ‘데미안’을 선정한다. ‘데미안’의 주역인 에밀 싱클래어가 사회생활의 시작인 초등학교 입학의 문으로 들어서면서 부터 겪어내야 했던 이야기이다. 자신을 찾아가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어려움은 단순히 그의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헤세는 ‘왕따’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군중의 일원이 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일원이 되려 노력하는 아이러니,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어릿광대가 되어 자학하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가 표현했던 자기를 찾고 만들어 가는 과정은 안이하고 편안하고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 의존하는 나(自我)의 반쪽과, 불편하고 어둡고, 세상이 알고는 있지만 인정하지 않는 또 다른 나의 반쪽과의 싸움이었다.

궁극적으로 어느 한가지가 아닌, 복합체로 재확인 된 나(自我) 라는 존재가 아프고 힘들게, 온갖 힘을 다해서 스스로 자신의 껍질을 깨고 부화하는 새 처럼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의 아프고 긴 여정이 밖으로 부터, 즉 데미안이라는 친구로 부터, 더 이상 특별한 해답을 듣지 못하고 끝을 맺어 주는 것이 아쉽지만 고마웠다. 그 때, 그들은 이미 성인이었다.

그러나 이 한 권의 책이 나를 만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십대에 처음 ‘데미안’을 읽었다. 한국말 번역본이었다. 그 후 1985년 마이크 로로프, 마이클 레벡이 독일어를 공동 번역한 영역본으로 하퍼 앤드 로우 출판사 발행본을 읽었다. 참고로 최초 영역본은 1923년 출판되었고 그 후 1965년 하퍼 앤드 로우 출판사가 카피라이트를 갖게 된다. 그때 부터 1985년 까지 33번 영역본이 프린팅 되었다.

나는 책을 사면 산 날짜, 당시의 삶의 상황을 첫 페이지 바인딩 안쪽에 적어 놓곤 한다. 이번에 ‘데미안’ 책을 다시 읽으려고 정돈되지 않는 책장을 훑으면서 1986년, 1994년이라 적혀있는 두권을 발견했다. 아뿔사! 정돈되지 않았던 책장에서 1986년에 샀던 책을 찾지 못해 1994년에 다시 구입했던 모양이다. 1986년에는 큰 아이가 십 대일 때 였고, 1994년은 작은 아이가 십 대일 때로, 그 애들이 ‘데미안’을 읽을 때 나도 함께 읽은 것이었다.

1994년도에 샀던 책에는 영어로 ‘손길이 닿았던 모두를 잃다. 큰아이(이름을 썼다) H 대학 신입생, 작은아이 M 고교 재학중’ 이라고 써 있다. ‘손길이 닿았던 모두…를 잃다’는 무슨 뜻으로 쓴 것이었을까? 다시 읽은 ‘데미안’에서 이 구절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 책은 조선에 삼일운동이 있었던 1919년에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판되었다. 헤세는 정규 고등교육을 받지 못 했던 사람이다. 그는 신학교를 자퇴했고, 정신분석을 받은 적도 있으며,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일차 대전, 이차 대전, 나치의 민족주의, 심각한 인권유린이 난무하던 때 살았던 사람이다. ‘유리알 유희’가 그의 마지막 소설이었다. 이로 1946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중앙 2018 12월

세종대왕님, 음력설에 부칩니다!

세종대왕님, 음력설이 곧 옵니다. 세배 받으세요! 이 미국에서도 음력설을 축하하면서 주로 극동 출신의 이민자나 그들의 후손들이 행사를 합니다. 섭섭한 것은 미국주류 사회에서는 이날을 ‘중국인의 새해’ 라고 부른답니다. 저는 될 수 있으면 ‘음력설’이라는 단어로 그들의 표현을 고쳐주곤 합니다.

한국 전통음식을 요리해서 서로 나누고 어르신들에게 세배도 하지요. 저는 전통을 조금 변화시켜서 딸들, 조카들 부부끼리도 세배 하도록 하고, 손주들은 서로 마주보고 맞절을 하도록 합니다. 깊이 절하면서 서로를 향한 사랑과 존경심을 마음으로 깊이 새기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을 저의 집에서는 ‘새배 세리모니’ 라고 부르지요.

이민자인 저희들이 타국에서 한국말을 하고, 한글을 쓰면서 차세대들에게 전통 음식을 함께 만들고, 영어가 본어인 이 사회에서 한글을 가르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저희에게는 무척이나 자연스런 노력입니다. 그애들도 후손들에게 저희처럼 그리하리라 믿습니다. 저희들에게 한국말은 ‘소울 언어(soul language)’ 이고 한식은 ‘소울 푸드(soul food)’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봉사하여 오고 있는 한국어진흥재단이 외국에서 한글을 진흥하고 나아가서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므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일반시민단체) 대사처럼 일 해 온 것에 대한 공로로 지난 해 모국 대통령으로 부터 572돌 한글날을 기념해서 포상받았습니다. 저는 재단의 대표로서 시상식에 참여했습니다. 다녀 온 후, 한글에 대한 경외심에서 당신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은 두번 째의 편지를 띄우려 합니다. 제가 여쭙고자 하는 제안은 당신의 크신 아량과 허락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는 우리말이 중국의 그것과 다르므로 한글이 필요하다 말씀하셨습니다. 한글의 과학성과 효율성으로 글이 없는 나라에 한글이 쓰여 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한글이 세계적으로 지금보다 더 잘 받아들여지려면, 몇가지 보충해 주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3년 6개월 전에 쓴 바 있습니다.

외국말 중에 우리 글로 구별되어 쓸 수 없는 F, TH, R, L, V가 있습니다. 한편 영어에는 우리 말의 된(센) 소리, 즉 쌍시옷, 쌍기억등이 없습니다. 당시 제가 예로 들었던 단어들은 아버지 (father), 쌀(rice), 머리에 끼는 기생충 이(lice) 등이었지요. 지금 형편상 아버지를 ‘파저’라고 쓴다면 이의 발음은 원어와 무척 멀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발음상의 주의할 점에 대한 교육은 외국어를 섞어서 쓰고 있는 또는 외국어를 많이 써야 하는 직업을 가진 저희 모든 한국민에게 필요한 사항입니다.

한글은 글 하나를 네모 난 사각형 박스 안에 넣은 것 처럼 보이는 단정한 모습입니다. 모음의 위, 오른쪽, 아래에다 자음을 붙여 하나의 말이 탄생하는데 왼쪽은 항상 비어 있고 우리는 오른쪽 방향으로 글을 써 갑니다.

비어있는 모음 왼쪽에 저희 글에 없는 외국어 발음이 필요한 곳에 표시를 해 주는 것입니다. “•ㅍ / •ㄹ/ •ㄷ/ •ㅂ” 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또는 이런 “~”식의 표시도 괜찮겠지요.

이왕 사태가 이리 흘러가고 있으니, 깔끔하게 우리 모국의 젊은이들이 외국어를 하고, 세계 어디에서나 언어 때문에 경쟁에 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시 한번 여러 학자들이 모여 ‘더 좋고 쉬운 표기법 제안을 공모시합 (•씽크탱크 Think Tank) 으로 수렴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다시 듭니다. 그리고 당신의 허락을 청합니다.

중앙 2018

궁극적인 삶의 찬양

‘오, 야아~~!’
여인은 둘 째 줄, 오른 쪽에 서서 열창하고 있다. 그 녀는 금방 눈에 띄었다. 몇 안되는 백인 중 하나, 또 노인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꼽슬꼽슬한 빨간 머리카락에 뚱뚱한 몸매이지만 그녀가 환호하는 모습은 어느 누구도 닮지 않은 바로 그녀 자신의 것이었다. 흔드는 두 팔 중, 왼쪽 팔과 손이 통통하게 부어 있는 것이 보인다. 유방암 치료로 인한 림프 부종 합병증 때문이다. 합창단은 복음 성가를 째즈 스타일로 부르고 있었다.

나에게는 환자였으나, 그 녀는 검은 법복을 입으면 판사였다. 유대인인 그녀는 맥시코 출신 남자와 결혼했고 사회정의에 혼신하는 장성한 아들이 있다. 몇 년 전부터 합창단에 들어가서 일주일에 한번씩 연습을 해 오던 것을 안다. 유대인인 그 녀가 가톨릭인 멕시칸 남자와 결혼하고 기독교 복음성가단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희안한 일이다. 그 녀는 삶의 아름다움, 삶의 승리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노래하면서 맑고 강해지는 자신의 영(靈) 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들은 ‘셀라’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합창단으로 올해 공연의 테마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예요!’ 이었다. 참고로 ‘셀라’라는 단어는 성서 시편과 하바꾹에 나오는데 정확한 의미는 알려진 바 없다. 여러 의미 중에, ‘멈추어 뜻을 생각하라’ 라는 해석과 아랍사람들의 ‘진실을 보존 저장한다’는 설명이 내 맘에 제일 든다.

성탄절, 새해를 앞두고 음악회가 많이 열린다. 겨울방학을 맞이하는 초중고 학생들 또는 음악 전공자들은 준비해 놓은 곡들을 이 때 선 보인다. 아무리 세상이 무신론자로 채워져 간다 해도, 겨울 음악회의 테마는 크리스마스이다. 전능하신 분의 고귀한 희생의 삶을 바라 보면서, 나 또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신에게로 귀화하는 내 자신의 여정을 찬양해야 한다.

일 주일 후, 로스 안젤레스 대성당에서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의 ‘메시아’ 공연이 있었다. 영광의 주님 뿐 아니라, 인간들의 죄의 보속을 위한 고통, 죽음 그리고 부활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합창단이 장엄하게 노래했다. 유래가 어떻든 간에 ‘할렐루야’를 부를 때, 참석한 시청자 모두는 전통에 따라 기립했다.

56세의 헨델은 친구로부터 시편이 중심으로 된 기도집과 성서를 건네 받고, 1741년 여름에 ‘메시아’를 작곡한다. 겨우 24일 걸렸다. 헨델은 무서운 집중력으로 짧은 시간에 작곡을 끝내는 습관이 있었다 한다. 자신이나 친지들의 작품의 일부를 빌려다가 자신의 새로운 곡에 ‘빌려’ 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요즘엔 표절이라고 난리가 났을 만 한데 말이다. ‘메시아’에도 그런 부분이 몇 군데 있다고 한다.

첫공연은 1742년 3월, 그 곡이 쓰여진지 6개월 만에 아이어랜드 더블린에서 자선 음악회 형식으로 행해졌다. 두개의 트럼펫, 2개의 오보에등 악기와 26명의 소년, 5명의 남성 합창단원들이 협연했다고 한다. 런던이 ‘메시아’ 공연을 본 것은 그로 부터 일 년 후의 일이다. 독일 태생 헨델은27세에 영국으로 이주 했고, 74세에 런던에서 죽을 때 까지 존경받고 부유하게 살았다.

내일이면 나는 또 다른 음악회에 갈 것이다. 손주, 손녀들이 차렷 자세로 똑바로 서서 크리스마스와 하누카,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새해 노래를 부를 것이다. 판사환자의, 대성당의 음악회 못지 않게, 희망 찬, 사랑의 선물을 배달 받을 것이다.

피라미드 정상에 오른다는 것

대학입시 준비를 놓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 에 대한 이야기를 친우에게서 듣고 비디오 가게에서 CD를 빌려다 보았다.

서울시 강남구 주택지에 병원이 제공하는 맨숀에서 사는 가정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정형외과 과장 아들이 서울의대 입학허가를 받게 된 것을 축하하는 파티 장면으로 드라마는 시작된다. 사중주 생음악이 연주되고, 격식 차린 테이블 쎗팅이 멋있다. 포도주 잔만 해도 두개, 물 컵, 크고 작은 포크와 칼등 상위층 살림을 부각시키고 있다. 파티 다음 날 아들은 여행을 빙자해 가출하고, 완벽한 입학 준비를 시켰던 성공의 롤모델 여인은 자살한다.

이야기는 또 다른 한 가정의 하바드대학 유학이 조작이었다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대학입시 코디의 코치를 받으면서 서울의대를 목표로 공부시키던 드라마 주역격인 가정은 시험지 유출 사건, 완벽했던 사모님의 신분세탁 과거사, 숨겨졌던 딸의 살해사건으로 이야기가 복잡히 얽힌다. 완벽주의, 일등병(一等病)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짜집기 그림이다.

이 드라마에서 사회는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라는 관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 피라미드의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급우는 함께 공부하고 함께 노는 붕우(朋友)가 아니라 경쟁자이여야 함을 강요한다. 부모들은 부정, 부패, 거액의 투자도 감수하고 아이들을 세뇌하지만, 결국 실패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드라마는 1989년 뉴잉글랜드 지방 어느 남학생 보딩스쿨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Dead Poet’s Society(죽은 시인들의 모임)’ 를 연상시킨다. 이 영화를 쓴 탐 슐만은 시나리오 부분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내용은 그가 경험했던 고교시절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주연배우 로빈 윌리암스의 연기도 기록될만 했다. 이 영화 역시 부모의 꿈과 계획을 살아내기 위해 남학생들이 겪어야 하는 집단좌절을 표현했다. 꿈을 나누던 비밀스런 통로 ‘죽은 시인들의 모임’ 이라는 동아리활동에서 옛 시인들의 시를 읽고, 자신들의 작품도 나눈다.

이 드라마와 그 영화는 30년의 나이 차이가 있고, 동양과 서양의 배경도 다르지만 높은 교육열로 인한 부모와 자녀간의 불협화음, 상하조직 체제 안에서 보이는 흔들리는 힘의 균형, 교육을 빙자한 사교육의 치부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결국 커다란 파도에 헛개비는 밀리고 허물어진다. 귀한 것들을 잃은 뒤, 빈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에도 영리 목적을 가진 대학 카운슬러들이 있다. 1976년에 공인된 IECA(Independent Educational Consultants Association)라는 코디들의 협회는 코디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한다. 코디는 학생이 원하는 것, 희망사항, 관심사, 선호하는 것들에 준해서 첫 단계 역할인 대학의 리스트를 뽑아 준다는 것이다. 긍국적으로 자신이 갈 학교를 결정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이다. 이 협의회의 자체 보도에 의하면 일 년에 십6만의 학생들이 사립 코디를 고용한다고 한다. 약 4백만의 대학입시생들이 있는 미국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4%에 지나지 않는다.
거대한 미국, 미용학교로부터 하바드 대학까지 7천 여 개의 대학이 있고, 학연이나 인연에 연연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미국 학생들은 복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완벽한 SAT 시험 성적을 내기 위해서 여름방학 동안 한국에 있는 학원으로 원정 과외공부를 보내는 학부형들이 있다는 소식은 괴롭고 또 슬프다. 좋은 씨스템을 최대한 알아내고 활용하며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좋은 모범을 보이는 부모로서 밥상머리 교육을 할 때 차세대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며 살아 갈 것이다.

그리고 실상 우리 문화에서는 행해지지 않고 있는 ‘성인식’ 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해 줌으로써, 그들이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자아를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과 함께 기뻐 할 수 있는 심적, 영적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영원을 향한 체념

어디에선가 보았던 눈빛이다. 나의 앞에 선 소녀는 감정을 덜어 내어 버리고, 나를 지나 멀리를 보고 있다. 소녀는 말한다. ‘마담, 곧 강에 도달하면 나는 다시 마을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후회했다. 버스에서 내려 나룻터를 향해 걷기 시작할 때 부터 떨쳐지지 않았던 소녀였다. 소녀가 팔아야만 했던 작은 북을 사기로 마음먹게 될 때 까지는 산등성이를 넘고 평지를 지나 냇가에 도달할 때 까지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후회했다. 일찌감치 사 줄 것을….

소녀는 이디오피아 산악지대에서 만났던 청소년 상꾼 중의 하나였다. 열네살은 되어 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색, 깡마른 몸매에 남루한 옷,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는 창이 얇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하루에 몇 십리를 걸으면서 행상을 하는 이 아이들은 하루에 몇 개의 상품을 팔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소녀의 눈빛. 내가 젊었을 때 보았던 그 눈빛이었다. 재발한 백혈병을 더 이상 고칠 수 없다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었던 그 백인 소녀환자의 눈도… 그랬다. 소녀도 나를 지나 머난 먼 곳을, 그리고 억만년의 지나간 세월을 나를 뛰어 넘어 보고 있는 듯 했다. 5살 때 백혈병을 앓았고 완치 되었었다. 이 소녀가 세상을 등지고 난 후, 의학계에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 지금 같았으면, 여러 방법을 써서 소녀의 생명을 연장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아 백혈병은 90%가 완치된다. 어린이에게 오는 암의 빈도가 지난 40년 동안 증가 추세이다. 십만명 중 13명의 빈도가 19명으로 늘었지만 치사율은 90%에서 10%로 줄었다. 끈임없는 연구, 새로운 약의 개발, 몰랐던DNA 구조에 대한 이해등, 의학계는 장족의 발전을 했다. 미국에서 약 4500명의 어린이가 매년 발암한다. 암은 어린이 사망의 이유중 제일 큰 이유이다. 대부분 백혈병과 뇌암을 말한다. 쉽게 이야기 해 보면, 8명 발암 소아 중에 한 명은 죽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통계는 지금 약 40만명의 소아암에서 완치된 성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60% 정도는 치료로 인한 만성 부작용으로 힘들어 할 수 있지만 이것은 견뎌낼 수 있지 않은가 싶다. 떠나간 생명은 다시 불러 올 수 없지만 부작용은 견딜 수 있으므로, 함께 참아 내자고 부모와 아이를 이해시키고 미리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의사들의 임무이다. 다른 종류의 암을 발생할 수 있고, 암 치료로 인한 근육질환 또는 불임 같은 것이 장기 부작용 중의 하나이다.

올 해도 4만여명의 어린이들이 암치료를 받게 될 것이다. 성공리에 치료를 마치지 못한 아동을 보내야만 하는 아이의 부모, 형제 그리고 주치의들이 또 아파하겠지. 첫 키모치료로 완치됐지만, 재발한 병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 간 그 소녀 환자가 유난히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디오피아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산등성이를 따라 걷던 소구를 팔던 소녀의 빈곤이, 그 아이의 체념이 채우고 있었다. 시바여왕의 성터라는 허허 벌판은 억겁을 살아 온 바람소리가 삶의 무상함을 깨우쳐 주고 있었다.

(작가 주: 이디오피아는 가난해도 긴 역사를 가진 고대 문명발상지로 40% 이상이 크리스챤임.)

중앙 오픈 업 3월